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00

남북국 시대 11ㅡ(통일신라 말기 1)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00

ㅡ 남북국 시대 11ㅡ

(통일신라 말기 1)


통일신라는 668년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통일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약 267년 동안 지속되다가, 935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항복함으로써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사실 이 시기는 '장보고'와 '김헌창의 난'을 제외하면 약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외적으로 큰 침략이나 전쟁 없이 존속한 우리 역사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평화로운 시기 였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대외적 평화가 곧 백성들 삶의 안정과 풍요를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외적으로 나라가 평안하면 백성들 삶은 비교적 안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기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있다. 바로 내부 지배층 권력투쟁, 부패이다. 지배층들에 의한 백성들 착취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 백성들 삶은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조신의 꿈>이라는 설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이 이야기는 당시 백성들이 겪었던 현실의 고단함과 소박한 삶의 소망,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불교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설화 속 '조신'은 스님이지만 부와 출세, 한번 본 어여쁜 여자와 사는 것을 꿈꾼다. 어느 날 잠들어 꿈에 경험하는 결혼생활과 생계의 어려움, 가난과 끊임없는 노동은 당시 백성들 삶이 얼마나 힘겨웠는지를 보여 준다. 이는 통일신라 백성들 이 농업에 의존하며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동해야 했고, 개인 노력만 으로는 신분이나 삶의 조건을 바꾸는 현실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조신이 꿈을 통해 인간적 욕망의 허망함을 깨닫고 불도에 귀의하는 결말은 현실 고통을 현세적 해결보다는 불교적 깨달음과 내세 구원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 인식을 보여 준다. 이는 통일신라 사회에서 불교가 백성들 삶과 정신세계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통일신라는 오랜 기간 대외적 평화를 유지했지만, 그 이면에서 백성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이러한 장기간 대외적 평화는 우리 역사에서 매우 드문 사례로, 통일신라 이후로는 조선 건국 이후 임진왜란 이전까지 약 200년 정도가 그와 비교될 만한 시기로 꼽을 수 있다.


귀족사회를 지탱하던 골품제는 점차 붕괴되기 시작했다. 왕위 쟁탈전과 귀족 간 반란이 연이어 발생하며 극심한 내분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 시기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기억나는 역사적 인물을 꼽으라면 대부분 ‘장보고(張保皐)’일 것이다.


그 외에 떠올릴 수 있는 인물로는 <원효, 의상, 김대성, 최치원, 그리고 진성여왕> 정도이다.


그만큼 이 시기는 전쟁이나 국난이 없었던 대신 역사적 영웅 또한 잘 부각되지 않았다.


우리 역사는 외침이 잦았던 탓에 국난 극복형 영웅들이 대부분 주목받는데, 통일신라는 그런 영웅이 필요 없던 시대였던 것이다.


장보고 역시 국난을 극복한 영웅 이라기 보다는, 해상무역을 통해 중국과 일본에까지 이름을 떨친 국제적 인물이었다.


장보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


이 시기 왕들 또한 대부분 낯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시기 국왕들 상당수가 진골귀족 내부 권력투쟁 속에서 몇 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교적 기억에 남는 왕이라면 '신무왕' '진성여왕' 정도일 것이다.


나 역시 진성여왕을 가끔 '진덕여왕'과 혼동하곤 했다. 전혀 다른 여왕이다.


진성여왕은 우리에게 성적으로 타락한 여왕이라는 이미지로 회자되며 일부 남성들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진성여왕 시기는 후삼국 시대가 사실상 시작된 중요한 시점이라고 보는 견해가 다수설이다


진성여왕 편도 다음 한 편으로 상세히 다루겠다.


그 외에 장보고와 깊이 연관된 신무왕이다. 이 역시 장보고 편에서 다루겠다.


우리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동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잘 알고 있지만, 그 당나귀 귀 임금이 통일신라 시대 ‘경문왕’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경문왕(敬文王, 신라 제48대 왕, 재위 861~875년)은 진성여왕 아버지이다.


'원성왕' 이후 '진성여왕'에 이르기까지 약 80여 년 동안 무려 12명 왕이 재위했다. 이들의 평균 재위 기간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왕 재위 중 살해당한 왕이 있을 정도로 내부권력 투쟁이 심했다


통일신라 전반부 왕들, 즉 제38대 '원성왕' 까지는 앞편에서 간략하게 정리했었다.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왕들 시대를 훌쩍 건너뛰고 곧바로 진성여왕 시대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신라 왕위에 올랐던 인물들인데 <초롱초롱 박철홍 역사는 흐른다>에 이름 한 자 남기지 않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 또한 우리 역사 한 페이지이기에 오늘 이 한 편으로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본다.


조금 딱딱하고 재미는 없을 수 있으니 이해 바란다. ^^


1. 제39대 소성왕 (昭聖王, 재위 798~800년)


원성왕의 아들로 즉위했으나 재위 2년 만에 사망해 큰 업적은 없다.


2. 제40대 애장왕 (哀莊王, 재위 800~809년)


소성왕의 동생으로 즉위했다.

왕권 강화를 위해 친위 세력을 키우려 했으나 왕실 내 권력 다툼이 심화되었다.


이 시기 귀족 사회의 불안정성이 이후 대규모 반란배경이 되었다.


3. 제41대 헌덕왕 (憲德王, 재위 809~826년)


김주원 아들로 즉위하였다.

822년, 김주원 후손인 김헌창이 웅천주(현재 충청남도 공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김헌창은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정하고 독자적인 정권 수립을 선언했다. 이는 통일신라 하대 귀족반란 중 최대규모 사건이었다.


중앙군 신속한 대응으로 반란은 단기간에 진압되었고, 김헌창은 패배 후 자결했다.


헌덕왕은 이후 조세를 감면하고 지방세력을 견제하며 왕권강화를 시도했으나, 이미 지방세력은 상당히 성장한 상태였다.


4. 제42대 흥덕왕 (興德王, 재위 826~836년)


헌덕왕 동생이다.

828년 청해진을 설치하여 장보고로 하여금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무역을 주도하게 했다.


사치와 낭비를 금지하는 정책을 폈으나 귀족 반발로 실패했고, 대신 대외교류에 힘써 당나라· 일본과 외교관계를 강화했다.


통일신라 후기에서는 비교적 유능한 군주로 평가된다.


5. 제43대 희강왕 (僖康王, 재위 836~838년)


즉위 과정에서 왕위 다툼이 있었고, 재위 2년 만에 '김명의' 정변으로 피살되었다.


6. 제44대 민애왕 (閔哀王, 재위 838~839년)


희강왕을 몰아내고 즉위했으나 가혹한 정치로 귀족들 반발을 샀다.


결국 김우징(훗날 신무왕)이 장보고 지원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켰고 민애왕은 살해 되었다.


7. 제45대 신무왕 (神武王, 재위 839년, 약 3개월)


본명 김우징.

왕위쟁탈전에서 밀려 장보고 청해진으로 피신했고 장보고와 사돈관계를 약속하며 군사 지원을 받았다. '해신'이라는 드라마로 '신무왕' 보다는 '김우징'으로 더 유명해졌다.


장보고 병력 5천 명으로 경주에 진입해 '민애왕'을 몰아내고 즉위했으나 재위 3개월 만에 병사했다.


8. 제46대 문성왕 (文聖王, 재위 839~857년)


신무왕 아들이다.

아버지 유언에 따라 장보고 딸과 혼인하려 했으나, 신분문제로 진골귀족들 강한 반발을 받아 결국 무산되었다.


이에 반발한 장보고는 반란을 도모했고 문성왕은 846년 '염장'을 보내 장보고를 암살했다.


장보고 암살 문제도 장보고 편에서 상세히 다루겠다.


이후 문성왕은 지방 세력을 통제하며 내정 안정에 힘썼고, 불교를 적극 후원했다.

857년 숙부 '의정'에게 왕위를 잇게 하고 사망했다.


9. 제47대 헌안왕 (憲安王, 재위 857~861년)


신무왕의 친동생이다.

불교를 통해 지방세력을 회유하려 했고 흉년 시기 제방을 수리하고 농업을 장려했다.


병으로 인해 사위 '응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당시 진골귀족들은 근친혼을 했기에 사위라고 해도 가까운 왕족이라 즉위가 가능했다.


10. 제48대 경문왕 (景文王, 재위 861~875년)


본명 김응렴.

진골귀족들 반란과 지방봉기를 수습하려 애썼고 불교와 국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871년 황룡사 9층탑을 수축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 주인공으로 전해진다.


11. 제49대 헌강왕 (憲康王, 재위 875~886년)


경문왕 장남이다.

'금입택'으로 상징되는 신라 최후 화려함을 누렸으나 내부적으로는 모순이 극대화되고 지방호족세력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처용가’ 설화가 등장하며, 당시 신라 경주는 아랍 상인들까지 드나들던 국제 도시였다.


12. 제50대 정강왕 (定康王, 재위 886~887년)


경문왕 차남이다.

즉위 1년 만에 사망했으며 후사가 없었다.


죽으며 여동생 '만'(曼), 즉 '진성여왕'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불행히도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

여동생 만은 천성이 명민하니 선덕·진덕여왕의 예를 따르라.”


이 유언에 따라 마침내 진성여왕 이 왕위에 오른다.


즉위 당시 진성여왕 나이는 스무 살 안팎이었을 것이다.


진성여왕 시대부터 후삼국은 사실상 시작된다.


다음 편에서 상세히 다루겠다.


이어서 '해상왕 장보고 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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