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01

해상왕 장보고 1- 신라를 넘어 선 국제적 영웅)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01

ㅡ 남북국 시대 12 ㅡ

(해상왕 장보고 1- 신라를 넘어 선 국제적 영웅)


'장보고'(張保皐)!


이름부터 인상적이다.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고 어딘가 유머러스한 느낌까지 준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국사시간에 ‘장보고’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교실 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만큼 '장보고'라는 이름이 독특했고,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을 떠올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장보고'를 꼽을 것이다. 이러한 인지도는 이름 특이성 때문만은 아니다.


탤런트 최수종이 장보고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던 KBS 대하역사드라마 <해신> 역시 대중에게 장보고를 각인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장보고는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처럼 외침을 물리쳐 나라를 구한 전형적인 ‘국난극복형 영웅’과는 결이 다르다.


장보고는 해상무역을 기반으로 신라·당· 일본을 연결하며 활동한,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국제적 인물이었다.


장보고는 완도에 설치한 '청해진' 거점으로 신라와 당나라 간 해상 무역을 활성화했다. 일본까지 연결되는 교역망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해상교류는 이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당나라 입장에서도 장보고 활동은 해적과 왜구 위협을 줄이고, 해상 교역로 안전을 확보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특히 장보고가 중국 산둥반도 지역주민들 에게 끼친 영향은 상당했다. 당시 이 지역은 해적과 왜구 침입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 장보고 해상세력이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지주민들은 장보고 공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


현재 중국산둥성 웨이하이(威海)와 인근 영성(榮成) 지역에는 장보고를 기리는 사당과 기념 시설이 남아 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영성에 위치한 '적산법화원' 이다.


나 역시 직접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사당 규모가 상당했고, 바다를 내려다보는 입지 또한 인상적이었다. 장보고 전신동상 역시 매우 웅장하게 조성되어 있었다.(아래사진)


당시 현지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한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평소에도 중국인 방문객이 많은 유명 관광지라고 했다. 외국 출신 인물을 위해 세워진 사당이 중국 내에서 이처럼 널리 알려진 사례 매우 드물며 장보고는 그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장보고 명성은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그의 활동은 널리 알려졌다.


장보고는 해적에게 납치된 일본인 구출해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일본 측 사료와 연구에서는 그를 해상질서를 안정시킨 인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또한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은 일본에도 큰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신라를 통해 비단, 도자기, 귀금속 같은 귀한 물품이 일본으로 유입되었고, 일본 역시 철기, 목재, 금 등을 수출하며 교역혜택을 누렸다.


일본은 장보고가 보유한 강력한 해상군사력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그가 해상교역로를 안정화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신뢰와 존중을 보냈다.


이처럼 장보고는 단순한 상인이 아니라, 해상교역 중개자이자 해적을 소탕한 해상질서 수호자로 인식되었다.


한편, 장보고 세력이 커질수록 긴장 또한 높아졌다.


청해진은 단순한 무역기지가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을 갖춘 독자적 세력이었고, 이는 신라 조정으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했다.


당나라와 일본 역시 장보고 존재를 필요로 하면서도, 그 영향력을 예의주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해진 군사력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남아 있지 않지만, '삼국사기'에는 병력이 약 1만 명에 달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선박 수 역시 구체적으로 전해지지는 않으나, 최소 수십 척에서 많게는 백 척 이상을 동원할 수 있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 정도 장보고 군사력이면 신라조정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다음 편에 자세히 나오지만 장보고는 실제로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시키기도 한다


어쨌든 장보고 이 군사력은 청해진이 동아시아 해상교역 중심지이자, 동시에 강력한 해상 군사거점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기 장보고 활동을 동아시아 교류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다루고 있다.


일본에서도 그의 해상 네트워크와 역할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중·일 세 나라 모두에서 일정한 평가와 인지도를 동시에 지닌 인물은 매우 드물다.


장보고는 분명, 신라 장군을 넘어 동아시아 해상을 무대로 활동한 국제적 지도자였다.


다음 글에서는 장보고 성장과정, 정치적 갈등, 그리고 결국 맞이한 배신과 암살과정을 이어서 다루고자 한다.


― 초롱박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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