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시대 (889~936) 1 ㅡ후삼국시대 개막과 한민족 개념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107
ㅡ 후삼국시대 (889~936) 1 ㅡ
(후삼국시대 개막과 한민족 개념)
후삼국시대(後三國時代)는 7세기 삼국을 통일했던 신라 힘이 약해지면서 9세기말에서 10세기 초 사이 한반도에서 다시 삼국이 대치한 시기를 말한다.
크게 보면 <태봉 → 고려, 후백제, 신라>가 서로 맞서고 각지에서는 지방호족들이 난립하던 군웅할거 전국시대가 펼쳐졌다.
이 시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시대 못지않게 박진감 넘쳤고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부끄럽게 우리는 이 시기 역사에 대해 중국소설 '삼국지연의' 만큼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후삼국시대'를 소재로 한 소설이 존재하긴 한다. 박종화, 황석영, 송기숙 등이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일반대중 에게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후삼국시대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00년부터 2002년까지 KBS에서 방영된 대하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왕건'(877~943) 생애와 고려건국 과정, 후삼국 통일역사 다루며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궁예' 캐릭터가 인기를 끌었고, 궁예 ‘관심법’은 당시 유행하기도 했다.
1. 후삼국시대와 한민족 의식
일부 역사학자들은 한민족 개념이 어렴풋하게 형성된 시점을 고려 현종 시기, 즉 거란의 3차 침략 (1010~1018)을 막아낸 이후로 본다.
이를 ‘족내존외(族內尊外)’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족’을 내부와 외부로 나누고, 내부를 존중하며 외부를 배척하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고려가 거란과 3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내부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게 된 것이다.
즉, 민족의식 형성은 삼국통일 신라시기가 아니라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이후에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2. 고대민족개념과 단일민족신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시대 에는 현대적 의미의 '단일민족' 개념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주로 토지와 국가 소속을 기준으로 공동체를 인식했다.
‘한국인’, ‘중국인’, ‘거란인’과 같은 개념은 없었고, ‘고구려사람’, ‘백제사람’,‘고려사람’
등으로 불렸다.
현대적 민족개념은 18~19세기 유럽에서 산업혁명과 계몽사상,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형성됐다.
'민족주의'(Nationalism)는 하나의 언어, 문화, 역사, 경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단일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발전했다.
따라서 고대와 중세사람들에게는 부족, 씨족, 종교 공동체, 지역사회 소속감이 중심이었고, 현대적 의미 민족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3. 단일민족개념 함정과 역사인식
단일민족개념은 양날의 칼이다.
중국 ‘동북공정’처럼 역사와 영토를 민족중심으로 해석하면 현실과 맞지 않는 주장이 만들어진다.
후삼국시대, 고조선, 고구려, 발해 시대에도 한반도와 만주에는 다양한 북방민족이 함께 살아갔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단군으로부터 오천 년간 한 핏줄로만 이어져 온 것은 아니다. 이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시각이 필요하다.
4. 후삼국시대 명칭과 발해문제
'후삼국시대' 명칭에 대한 논란이 있다.
'발해'가 존재했으므로 ‘사국시대’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당시 '고려'와 '조선후기'까지 발해를 한반도 국가로 간주하지 않았고, 역사적 영향력도 제한적이었다.
삼국시대 명칭 역시 ‘고구려, 백제, 신라’만을 대상으로 하며, '가야'는 삼국통일 1세기 전인 560년대에 소멸했다. 그런 이유로 삼국시대 명칭도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나는 맞던 틀리던 지금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해 왔던 '후삼국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역사적 맥락에서 더 적절하다고 보고,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할 것이다.
5. 후삼국시대 연대와 사건
- 889년: 신라 진성여왕 시절, 원종·애노의 난 발생 → 후삼국시대 시작
- 900년: 견훤, 후백제 건국
- 901년: 궁예, 후고구려 건국
- 936년: 고려,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에 승리하며 통일
후삼국시대는 본격적으로 견훤과 궁예의 건국으로 시작되었고, 936년 고려통일로 마무리 되었다.
6. 결론
후삼국시대는 단순한 전쟁과 권력 투쟁만의 시대는 아니었다.
한반도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준 중요한 시기였다.
민족개념 형성, 국가공동체 의식, 외부세력과 충돌을 통해 고려 내부에서 ‘우리’와 ‘타자’를 구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단일민족 신화에 갇히지 않고, 당시와 지금 현실을 분리해 열린 시각으로 역사와 문화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후삼국시대를 이해할 때, 발해와 관계, 단일민족 개념, 현대적 민족주의와 국제정세까지 함께 고려해야만 역사적 사건과 의미를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어서 <견훤의 후백제 건국>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