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와 고조선시대 1
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3
ㅡ '단군신화'와 고조선시대 1ㅡ
우리 민족, 곧 한국인은 주로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기원지로 삼는다. 민족 뿌리와 계통에 관한 연구는 인류학·역사학·유전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진행되어 왔다.
한국인은 고조선(기원전 2333년 건국)을 첫 국가로 여긴다. 이후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 고대 국가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 뿌리를 내렸고, 오늘날 우리 민족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언어적으로는 한국어가 알타이계 언어와 연관이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독자적 언어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유전학적으로도 한국인은 동아시아 여러 민족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오랜 세월 독자적인 유전적 특성과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문화·관습·종교 역시 중국, 일본, 몽골 등 주변 민족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교류는 곧 우리 민족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고고학 발굴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고대 유적과 유물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으며, 이는 우리 기원과 발전을 이해하는 소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기록 역사에서 첫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단군 고조선> 이다.
고조선 시작은 곧 청동기 도입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청동기 생산이 쉽지 않아 신석기 시대 마제석기가 오래도록 병용 되었고, 철기 초기까지도 청동기 는 귀하게 쓰였다.
이 시기에는 청동기를 먼저 확보 한 부족이 지배세력으로 부상 했다. 신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집단은 주변 부족을 정복·통합 하며 세력을 넓혀갔고, 이 과정 에서 계급 분화와 제도· 규율이 필요해졌다. 집단이 커질수록 지도자의 권위는 신성한 이야기로 뒷받침될 필요가 있었고, 바로 그때 등장한 것이 각 민족윽 '건국신화'였다.
건국신화는 정치권력의 정당화 장치이자, 분열과 갈등을 달래며 대규모 국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구실을 했다.
우리 민족에게도 <단군신화>가 전해 내려오며 시조로 '단군왕검' 을 세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하늘 주재자 '환인'(桓因)아들 '환웅'(桓雄)과 곰 여인 '웅녀'(熊女)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단군'이다.
환웅은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서 신시(神市)를 열었고, 단군은 나라를 세워 조선(朝鮮)이라 불렀다.
여기서 ‘단군(檀君)’은 신성한 나무인 단나무와 군주를 합친 말이며, ‘왕검(王儉)’은 제사장을 뜻한다. 즉, 단군왕검은 정치와 제사의 권위를 함께 가진 통치자 였다.
단군 건국의 이념으로 제시된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고조선의 국가 운영 원리이자 한국사 핵심 정신으로 이어졌다.
홍익인간 사상은 공동체 이익을 우선하고 타인과 조화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교육·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을 점은, 당시 국호가 ‘고조선’이 아니라 단순히 ‘조선’이었다는 사실이다. 훗날 이성계가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면서, 구별을 위해 그 이전 조선을 ‘고조선’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단군신화 전문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으며, 고려 일연 스님이 정리하였다. 그러나 유적이나 유물로 확인된 것은 아직 없다.
우리나라 첫 정사인 '삼국사기 에는 단군에 대한 기록이 없다. 김부식이 고구려·신라 건국신화는 싣고 단군신화를 제외한 이유는 아마 깊은 고민 끝 선택이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신화 속 '환인'과 '환웅'은 청동기 문화를 지닌 북방계 이민족을, 곰·호랑이는 태백산 일대에서
토테미즘 신앙을 가진 원주민을 의미했을 가능성이 있다.
곰을 숭배한 부족은 화합의 길로, 호랑이를 숭배한 부족은 저항 끝에 배제되며, 이들의 융합과 갈등 속에서 고조선이 태동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현재 고조선 역사는 보통
2분법: 단군조선 – 위만조선
3분법: 단군조선 – 기자조선 – 위만조선으로 나눈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루겠다.
이어서 고조선 (2)가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