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와 '환빠'들
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4
ㅡ '단군신화'와 고조선시대 2 ㅡ
('환단고기'와 '환빠'들)
이제 우리 민족의 기록된 역사, 즉 '고조선' 이전 시기를 논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내가 '상고사'나 '고대사'를 다룰 때, 내 글에 대해 험한 비난을 넘어 심한 욕까지 쏟아내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그들은 흔히 ‘환단고기’ 신봉하는 이른바 ‘환빠’로 불리는 사람들로 보인다.
특히 내가 국사교과서 등에 실린 ‘삼국지도’를 올리면, 이들은 광분하며 일제식민사관에 오염된 일제가 만든 가짜지도를 올렸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의 한반도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백제’, ‘신라’, ‘가야’가 존재했고, 일부는 고조선 이전 상고사 시절 우리 민족이 아랍까지 진출해 '수메르'를 지배했다는 황당무계 이론까지 내세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사실과 무관하며 논증할 가치조차 없다.
사실, 당시에는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집단 구성 또한 단지 부족단위로만 형성되어 있었다.
환빠들 주장대로 한민족이 수메르 지배했다고 해도, 그것이 역사적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 시기 ‘한민족’은 어떤 집단을 의미하는가?
지금 한반도에 거주하는 집단을 말하는가?
역사적·과학적 연구 결과, 우리는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 된다. '한민족'은 대륙에서 유입된 북방계와 동남아 및 해상경로를 통해 들어온 남방계가 혼합된 집단이다.
고조선이나 고구려, 발해 역시 다민족국가였다.
예를 들어, 발해 주민 80% 이상은 거란·여진계였다. 발해 건국자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이었다는 것조차 명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 계승국이라 주장했고, 중국, 일본 기록에 발해를 ‘고려’라 부른 사례도 있다.
또한 발해 멸망후, 상당한 유민들 고려왕건에게 귀속되었으며, 왕건 역시 이들을 같은 민족으로 포용 했다.
이를 통해 발해는 역사적으로 우리 민족국가의 한 형태였음이 분명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반도 내 거주 종족이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희미하게나마 갖게 된 것은 통일신라 시대였을 것이다.
후삼국이 통일되면서 ‘한민족’ 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고, 결정적으로 고려시대 때 거란과 몽골침략을 겪으며 우리는 민족적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일부학자는 거란의 3차례 침략을 물리친 고려 '현종'을 ‘제2의 단군’ 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삼국시대나 그 이전에도 비슷한 동족의식은 존재했지만,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한민족’ 개념과 동일하지는 않았다.
현재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고, 발해 또한 중국사 일부로 보려는 '동북공정'은 이러한 역사적 모호성 때문이다.
일본은 발해를 한국사로 인정하는 편이며, 러시아는 중간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러시아 모호한 입장은 당시 발해 영토 일부가 현재 러시아 영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면, 수천 년 전 기록도 없고 단편적 지명만 근거로 ‘수메르 한민족 설’을 주장하는 것은 판타지를 넘어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이를 인정 하지 않으며, 국내역사학계에서도 ‘허황된 역사’로 치부된다.
환빠들의 논리 구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일제 식민사학에 오염되지 않은 진실을 알고 있다.”
“대중은 우매하며, 나는 이들을 계몽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인터넷 역사게시판을 돌아다니며 허황된 주장을 퍼뜨리고, 기록과 유물 검증 없이 지도와 설을 제시하며 논리를 강요한다.
그러나 역사란 단순한 주장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기록의 교차검증과 유물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은 오히려 중국의 '동북공정'에 좋은 미끼가 되어 중국 쪽 주장으로 뒤집힐 위험이 있다.
'환단고기'는 1911년 '계연수'가 집필한 책으로, 고대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을 잇는 ‘고대제국사’를 주장하지만, 학계에서는 이미 위서로 판명 되었다.
그럼에도 일부는 이를 ‘잃어버린 민족의 역사’라며 신봉하며, 이른바 ‘환빠’ 현상이 나타났다.
환빠현상은 1980~90년대 절정에 달했다. 당시 사회적 억압 속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 하려는 욕구가 배경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영웅주의적 대외팽창주의 사고 자체는 파시즘적 성격을 띠며, 사실 일제가 한국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이미 드러난 사상과 다르지 않다.
결국 환빠들은 일본 제국이 남긴 영웅적 대외팽창주의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현재의 교과서적 역사 연구가 문헌학, 인류학, 고고학 등 다양한 학문적 검증을 거쳐 나온 것임에도, 기성 역사학자들을 ‘역사 독점 카르텔’로 비난하며 일제 식민사관을 답습한다고 주장한다.
일제식민사관은 일부 사례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전체 역사관으로 확대해 자신들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은 문제다.
환빠들의 주장은 역사적 증거나 과학적 근거가 결여되어 있다. 그들의 지도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종종 막무가내식 비난만 돌아온다.
오히려 이들의 과도한 민족의식은 한국사가 지닌 세계사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왜곡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부정하는 파시스트적 대외팽창주의를 답습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환단고기'에 등장하는 ‘환국’과 ‘배달국’은 고대 어느 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실질적 역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교차사료 검증(corroboration through external sources) 등 외부사료 확인이 절대적으로 필요 하다.
우리 민족만의 주장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단군신화처럼 민족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역사적 신화는 필요 하지만, 지나친 신화적 과장은 단군신화마저 훼손할 수 있다.
우리는 고조선과 삼국이 쌓아온 실제 역사 속에서 충분히 자부심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일부 일제식민사관 음모론 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환빠들은 ‘진실을 숨긴 일제와 서양’이라는 프레임으로 기존 역사를 부정하지만, 현재 국내외 학계는 한국 고대사를 정당하게 평가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 오고 있다.
'환단고기'를 추종하며 비판 글을 허투루 받아들이는 분들은, 먼저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길 바란다.
“왜 전 세계 어디에도 환국의 흔적은 없을까?”
“진짜라면 세계학자들은 물론 우리나라 대다수 학자들이 왜 외면할까?”
나는 역사전문가는 아니므로, 독창적인 역사이론을 주장할 생각은 없다.
앞으로 상고사 글을 정리할 때도 현재 받아들여지는 주류 역사설을 토대로 정리할 예정이다.
오늘 글은 고조선 시작에 대한 내용을 준비하다가, 환빠 현상과 관련한 이야기가 길어져 덧붙이게 되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