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무제’에 의한 고조선 멸망과 ‘흉노’
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6
ㅡ '단군신화'와 고조선시대 (4)ㅡ
( '한무제’에 의한 고조선 멸망과 ‘흉노’)
본격적으로 '삼국시대'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이 있다.
바로 <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 설치> , 그리고 그와 맞물린 <삼한(마한·진한·변한)의 성장> 이다.
우리는 수·당의 고구려 침략은 잘 알지만, 정작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 한나라에 의한 고조선 멸망 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심지어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이번에 자료를 정리하며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동북공정’ 공세를 과연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번 글에서는 한나라가 왜 고조선을 침략했는지, 그 과정과 결과를 간략히 살펴보겠다.
고조선 멸망은 초한지의 주인공 '유방'이 세운 한나라 7대 황제, 한무제(漢武帝, 재위 B.C. 141 ~B.C. 87) 때 일어났다. 한무제 는 '당 태종', '청 강희제'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힌다.
한무제는 16세에 즉위하여 유학자 '동중서' 건의를 받아들여 유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았다. 또 '장건'을 서역에 파견해 실크로드 개척했고, 명장 '위청'과 '곽거병' 앞세워 '흉노'를 대대적으로 토벌 했다. 그리고 그 동방정책 일환 으로 고조선을 공격하게 된다.
사실 한나라 초대 황제 유방 때 부터 '흉노'는 큰 위협이었다. 유방은 흉노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고, 이후 매년 막대한 조공바치며 흉노 눈치를 보아야 했다. 심지어 딸을 흉노 선우(왕)후궁으로 보내기도 했다.
'흉노'는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 까지 북방초원을 지배한 유목 민족으로, 훗날 몽골·돌궐·거란 등 선조로 여겨진다.
원래 자신들을 ‘훈(Hun, 사람)’ 이라 불렀으나, 중국 한족은 이를 비틀어 ‘흉측하다’는 의미의 ‘흉노(凶奴)’라 부른 것이다.
한무제는 오랜 치욕을 씻고자 위청·곽거병을 앞세워 흉노를 공략했고, 그 결과 흉노는 동·서로 분열되었다. 서흉노는 유럽으로 이동해 ‘훈족’이 되었고, 동흉노는 몽골초원으로 밀려나 훗날 거란· 몽골족의 기원이 되었다.
이 무렵 흉노의 귀족 일부가 한나라에 귀부했고, 그 가운데 왕자 '김일제'(金日磾)는 한무제 로부터 ‘김(金)’ 씨를 하사받아 출세했다. 후대 신라왕실은 자신들을 김일제 후손이라 여겼다. 당시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를 명예롭게 여겼기 때문에, 신라가 박씨 왕통에서 김씨로 바뀔 때 이를 ‘흉노의 후예’ 라며 자랑스럽게 내세우기도 했다.
흉노를 몰아낸 한무제는 동쪽으로 눈을 돌렸다. 기원전 108년,
한무제는 대군을 파견해 고조선을 침략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흉노와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고조선을 제압해 국경을 안정시키려 했다.
2. 동쪽 영토 확장과 비옥한 땅· 철광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였다
3. 고조선이 남쪽 '진국'과 한나라 직접교역을 막고 중계무역을 독점한 것에 대한 불만이 컸다.
당시 고조선은 '위만'손자 '우거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고조선 우거왕은 한나라 요구를 거부하고, 사신 '섭하'를 죽이는 등 강경 대응을 했다. 이를 빌미로 한무제는 약 5만 7천 명의 군대를 파견했다.
전쟁 초기, 우거왕은 한군 공격을 잘 막아냈다. 그러나 장기전 속에 수도 '왕검성'이 포위되자 지배층 분열이 나타났다. 조선상, 이계상, 왕겹 등 고조선 대신들이 차례로 항복하거나 이탈했고, 결국 내부 자객에 의해 우거왕은 암살 당하고 만다.
끝까지 항전한 대신 '성기'마저 같은 방식으로 제거되자, 고조선 은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사기> '조선열전'에 기록된 대로, 고조선은 내부 분열 속에서 무너진 것이다.
한나라는 멸망한 고조선 땅에 <낙랑·임둔·현도·진번> ‘한사군’을 설치했다. 이는 한반도 북부를 중국이 직접 지배하게된 사건으로 우리 역사에서 뼈아픈 장면 이다.
많은 고조선 유민들은 남쪽으로 내려가 삼한사회 성장에 큰 영향 끼쳤다. 만약 고조선이 내분 없이 존속했다면, 한반도에는 더 이른 시기에 강력한 통일국가가 등장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고조선은 멸망해 사라지고, 한사군을 통해 중국 세력이 한반도 깊숙이 들어오게 된 것이다.
민족사학가 '신채효'나 '환단고기' 류에서는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중국대륙 깊숙히 있었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래도 현재까지는 정설로 인정받고 있고, 역사 교과서에도 나오는 한사군 지도의 위치대로
정리할 수밖에 없다.
다음 편은 신채효 '조선상고사'를 중심으로 이들의 논리도 살펴 보겠다.
이어서 ‘신채효와 조선상고사’ 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 박철홍 ㅡ
한무제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