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8

잊혀진 우리 고대국가, 부여 1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8

― 잊혀진 왕국들 2―

(잊혀진 우리 고대국가, 부여 1)


'고조선'은 무려 2000년 가까이 이어진 우리 민족 왕조 역사다. 하지만 우리는 '고조선'에 대해 너무 모른다. ‘단군왕검’은 사실 황제나 왕처럼 직책을 의미하는 호칭인데, 사람 이름으로 알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삼국유사' 단군신화에는 단군왕검이 한 인물로서 무려 1908살을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만주벌판을 이야기할 때 고구려 기상만 떠올린다. 말 달리던 고구려 선조들 모습은 쉽게 상상하지만, 그보다 2000년이나 앞서 존재했던 고조선은 거의 떠올리지 않는다.


더구나 고조선 못지않게 중요한 나라가 있었는데, 그 존재조차 잘 알지 못한다.


바로 <부여>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역사책 속 ‘부여’는 한사군, 동예, 옥저와 비슷한 수준 부족국가 정도로만 소개되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국사시험에 자주 등장했던 ‘영고'(迎鼓)라는 행사 이름 하나 전부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 기록에 따르면, “은력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온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여 연일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니 이를 ‘영고’라 한다. 이때 형벌, 옥사를 판결하고 죄수를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부여'를 중국사 한 축으로 편입해 버렸다. 우리가 아는 부여는 중국 사서에 단편적으로 기록된 내용과 '삼국사기', '삼국유사' 몇 줄이 전부이다.


이런 상태라면 중국 '동북공정'을 우리가 이겨내기 쉽지 않다.


사실 '부여'는 한나라 유방이 천하를 차지할 때부터, 우리가 너무나 익숙한 ‘삼국지’ 조조·유비

·손권 시대까지 이어진 나라였다.


그런데 우리는 유방과 항우, 조조· 유비·손권 같은 이름은 마치 친구 이름처럼 친근하게 알고 있지만, '부여' 왕 이름은 하나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 학창시절 국사교과서에서도 '부여'는 몇 줄 조차 되지 않는다.


‘초한지’나 ‘삼국지연의’를 보면 전쟁사와 실제역사가 촘촘히 기록 되어 있다.


반면 동시대였던 '부여', '고구려', '신라' 건국이야기는 알에서 사람 이 태어났다는 '건국신화'로 기록 되어 있다. 그것도 우리의 정사인 '삼국사기'에까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인들은 '중국 사서'와 '우리 기록' 중 과연 어느 쪽을 더 신뢰하겠는가?


다행히 근대 역사학의 문을 연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일찍이 <부여사>의 중요성을 주목했다.


신채호는 1908년 '독사신론'에서 기존의 <기자-마한-신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부정하고, <대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이어지는 '부여주족론'(扶餘主族論)을 제기했다.


신채호는 민족사 중심동력을 이끈 집단을 ‘주족’이라 규정하고, 부여족을 주족으로, 지나족· 말갈족·흉노족·오환족·일본족 등을 '객족'으로 보았다.


신채호는 확신에 차 말한다.


“우리 민족 4천년 역사는 곧 부여족 성쇠소장의 역사이다.”


실제로도 역사적 증거가 많다. 부여 중심은 지금의 중국 송화강 유역이었다. 이곳에서 '동부여'가 나오고, 동부여에서 고구려지배층 '주몽집단'(계루부 왕실)이 등장 한다. 주몽집단은 압록강 일대로 진출해 ‘졸본부여’, 즉 '고구려'를 세웠다.


압록강 유역에 살던 일부 집단 (비류·온조)은 다시 남하해 한강 유역에 '백제'를 세웠다.


고구려와 백제 모두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집단이었다.


또, '가야'가 있던 경남지역에서 발견된 청동 솥 등 북방 유목민 계통 부여유물들은 부여 영향력이 한반도 남동부까지 미쳤음을 보여 준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시조 '대조영'도 '발해'를 “부여, 옥저, 변한, 조선 땅과 바다 북쪽 여러 나라를 아우른 나라”라 하여 스스로 '부여' 후예임을 밝혔다.


송나라 시기 '무경총요' 또한 발해를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라고 기록한다. 고구려와 백제뿐 아니라 발해까지도 부여 뿌리를 이어받은 셈이다.


이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바로 '예맥족'이다.


우리는 흔히 오천년 단군민족,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지만, 실제 역사적으로는 단일민족이 아니었다는 점을 '예맥족'이 보여준다.


'예맥'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일대 살던 고대집단으로, 오늘 날 학계에서는 한민족 조상으로 평가 한다.


'예'와 '맥'을 따로 보기도 하는데, '예족'은 요동·요서에,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다가 고조선 말기에 합쳐졌다고 본다. 또 다른 견해는 애초에 같은 계통에서 갈라진 것 이라 보고, 사회·정치적으로만 구분했을 뿐 종족적으로는 동일 하다고 본다.


단군신화에서 곰 토템 맥족과 호랑이 토템 예족을 천신족이 복속시켜 고조선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결국 이런 맥락을 반영 한다.


이후 부여로 계승된 예맥족은 한반도 토착민과 어우러져 한민족 형성의 뿌리가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결국 부여는 고조선에 이은 우리 민족 핵심 고대국가였고, 고구려 못지않게 중요한 뿌리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아는 부여는 무엇이 있는가?


오래전 티브 드라마 '주몽'에서 조금 접했을 뿐이다. 그것마저도 역사서보다는 드라마적 상상력이 가미된 내용이었다.


그리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고조선이 멸망한 자리에 부여가 세워진 것도 아니고, 부여가 무너진 자리에 고구려가 바로 세워진 것도 아니다.


위만조선과 북부여, 초기 고구려 는 같은 시대에 공존하며 흥망을 거듭했다.


어쨌든 500년 이상 지속된 고대국가 부여에 대한 기록과 유물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나는 이번 기회에 부여사 를 인터넷 자료와 연구 성과들을 최대한 모아 정리해 보려 한다.


기대해 주시라.


이어서 부여 2편이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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