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9

잊혀진 우리 고대국가, 부여 2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상고사도 흐른다. 9

― 잊혀진 왕국들 3 ―

(잊혀진 우리 고대국가, 부여 2)


고대사는 사실 재미있게 읽기 어렵습니다. 정설도 확립되지 않았고, 학계의 논쟁도 많습니다.


우리 안에서는 ‘환단고기’를 둘러싼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고, 밖으로는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같은 역사 왜곡 문제가 존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만 깊이 들어 가도 금세 학술논문 수준이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낯선 용어도 많아 한 번 읽고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전문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지금 쓰고 있는 고대사 연재 역시 여러자료 찾아보며 함께 공부한다는 마음 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보다 한 단계 위 내용을 담으려 노력하지만, 학술논문 수준까지는 가지 않으려 합니다.


제 글이 길다는 불평(?)도 많은데, 여기에 더 난해해지면 읽어주실 분이 거의 없을테니까요.^^


혹이나 역사 전문가분들이 댓글로 빠진 부분을 지적해 주실 때는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디까지나 제 글은 <읽기 쉽고, 재미있고, 머리에 쑥쑥 들어오는 정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글, 사실 정리하기가 가장 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잊혀진 고대국가 부여 2편’을 시작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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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여의 역사적 위치


부여 자체 독립적인 기록이 없기 때문에 역사를 재구성하기가 쉽지 않다.


건국 연대는 보통 ‘위만조선’과 비슷한 기원전 2~3세기 무렵 으로 추정된다.


당시 ‘위만조선’, ‘부여’, ‘고구려’가 나란히 존재했던 셈이다.


중국 사서에는 <북부여, 동부여, 남부여, 졸본부여, 갈사부여> 등 다양한 이름의 부여가 등장하는데 실체를 명확히 구분하긴 어렵다.


그 실체를 간략히 나마 살펴보자.


ㅡ 동부여 : 고구려 후기에 부여계 귀족들이 자신의 뿌리를 미화해 지어낸 신화적 존재라는 견해가 통설이다.


ㅡ 남부여 : 백제 성왕 시기에 일시적으로 사용한 국호이다.


ㅡ 졸본부여 : 고구려를 지칭한다.


ㅡ 갈사부여 : 부여왕족이 분리 되어 세운 갈사국을 일컷는다.


ㅡ 북부여 :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부여’로, 송화강과 눈강이 만나는 길림성일대 송눈평야 자리했다.


오늘 글에서 말하는 '부여'는 '북부여'를 말한다.


<북부여>는 전성기시절 8만호를 자랑하며, 3만호에 불과하던 '고구려'를 압도했다.


중국 '진서'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 동천왕 시절, 부여가 인구와 국력 에서 고구려를 크게 앞서서 압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농업 사회에서는 인구가 곧 국력이자 군사력과 직결되었으니 당연한 평가였다.


실제 중국사서 '위략'에서는


[부여는 예로부터 부유하고 풍성하여 파괴를 겪은 적이 없다(其國殷富, 自先世以來, 未嘗破壞)] 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2. 부여의 흥망


부여는 평야에 도읍했음에도 오랜 세월 도성을 보존했으나, 285년 선비족 '모용부' 침공으로 큰 타격 입고 쇠락기에 접어든다. 이후 수도를 '농안'지역으로 옮겼으나, 346년 '전연의 모용황' 대공격 으로 부여왕과 5만여명이 포로로 끌려가며 사실상 붕괴했다.


이보다 앞선 시기, 고구려 '미천왕' 대에 이미 '고구려'와 '전연'사이 에서 속국으로 전락한 것으로 보인다.


346년 멸망이후 부여 잔존세력은 '책성'일대에서 명맥을 이었으나, 410년 '광개토대왕' 동부여 원정 으로 마침내 끊기게 된다.


이후에도 '농안'지역 북부여가 간헐적으로 기록에 나타나지만, 결국 494년 '물길' 침공으로 도저히 국가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고구려 '문자명왕'에게 투항 한다.


일부 세력이 북방으로 이동해 ‘두막루’를 형성했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3. 건국설화와 난생신화


부여시조 '동명왕'과 고구려시조 '주몽'의 '건국설화'가 놀라울 정도 흡사하다.


우리 고대국가 대부분 ‘난생설화’ 즉 알에서 태어난 시조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데, 고조선과 백제만 예외이다.


고조선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 '천강족' 신화이다.


백제 경우는 더욱 현실적이다.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가 어머니 '소서노'와 함께 주몽 후계 권력다툼 끝에 한강유역으로 남하 해 나라를 세운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부여시조 '동명왕' 설화는 알, 돼지·말의 보호, 활 솜씨, 강 건너 도망가는 장면까지 주몽설화와 거의 같다.


이는 고구려가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사실을 반영하여, 부여 동명왕 신화를 차용·변형한 것 으로 보는 견해가 정설이다.


주몽을 천제의 아들 '해모수'로 연결시켜 권위를 강화하려 한 목적도 있었다.


4. 부여의 사회와 제도


국사시험 단골 주제라 간단히 정리해 두겠다.


특산물은 말, 모피, 주옥이 있었다.


사회 제도로는 '형사취수제'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맞이하는 제도)성적 의미보다는 과부 보호 목적의 여성 복지성격이었다. 이는 고구려로까지 이어졌다.


'사출도'는 부여 지방지배구조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나도 이번 처음 알았는데 아래설명을 보니 기억이 조금 있다. 고시같은 수준높은 시험에 자주 나온다 한다. 부여는 왕도를 중심으로 주변지역을 크게 4개의 지역단위로 나누어 지배했는데, 각 지역에 대한 통제권은 <마가·우가·구가·저가> 등 각기 수천 호 대부족집단을 다스리는 부족장에게 주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사출도'라 한다


'1책12법'은 부여시대 법이다.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전반의 사실을 전하는 '삼국지부여전'에 의하면, 당시 부여시대의 법이 엄하여서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으며, 도둑질한 자는 12배를 배상하도록 하였다


또한 부여는 '순장'을 하고 '옥갑' (왕이나 귀족들에게 입혔던 수의)도 했다.


아래는 '부여'와 비교하여 시험에 잘 나오니 참고하라 적어 놓는다.


ㅡ 동예 : 단궁, 과하마, 반어피 / 읍군·삼로


ㅡ 고구려 : 형사취수제, 서옥제, 약탈경제, 부경


ㅡ 옥저 : 민며느리제, 골장제, 거수·삼로 / 고구려에 공납


ㅡ 삼한 : 제정분리, 신지·읍차, 천군·소도


ㅡ 마한 : 목지국


ㅡ 변한 : 철 수출, 활발한 벼농사


학창시절 모두 외웠던 부분이다.


생소한 용어는 다음 기회에 더 풀어보겠다.


오늘 글은 길기도 하고 재미없는 대목이 많아 읽기에 힘드셨을 것이다.


그러나 국사시험에는 반드시 출제되는 부분이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다음 편은 ‘고구려와 한사군’으로 넘어가기 전에, 중국이 왜 ‘동북공정’을 벌이는지 그 배경과 목적부터 짚어보려 한다. 그리고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고대역사에 관한 이야기>도 두, 세편 덧 붙이겠다.


그걸 알고 나서 고대사를 보면 우리 역사를 보는 눈이 더 선명 해질 것이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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