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2

고구려 탄생과 '주몽'이야기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2

ㅡ 고구려 탄생과 '주몽'이야기 ㅡ


<고구려!>


만주 벌판을 내달리던 그 웅장한 기상!


중국 중원까지 넘나들던 광활한 영토!


이 엄청난 나라를 세운 <주몽>

그가 세운 '고구려'는 그냥 신화 속 한 장면에 불과할까?


'고구려'는 단지 옛 지명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있는 우리 민족 웅장함을 내 보이는 정체성이다.


<KOREA!>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명 ‘코리아’가 어디서 나왔을까?


바로 <고려>이다. 그리고 이 '고려'는 '고구려'에서부터 시작됐다.


‘고구려’라는 이름은 중국 '반고'가 쓴 '한서지리지'에 처음 등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는 우리가 아는 '고구려'가 아니다.


한사군 중 ‘현도군’에 속한 '고구려현' (高句驪縣)이다.

여기서 말하는 '고구려'는

‘높은 언덕 위의 마을’이란 뜻인데,

이게 '주몽'이 세운 '고구려'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주몽 고구려가 건국되기 전부터 이 지명은 있었다.


그래서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고구려를 공격했다”는 이상한 문장이 등장한다. 같은 이름, 다른 지역을 말했다. 그러다 결국 둘은

후에 주몽 아들 '유리왕'이 정복해 흡수한다.


여기서 부터 우리가 알고있는 '고구려'(高句麗)가 시작된다.


초기에는 ‘구려’라고 불리다가

점차 ‘고’를 붙여 ‘고구려’가 되었다.


‘구려(句麗)’는 원래 부족명 또는 지역이름을 뜻 했다. '아름답다'는 뜻도 있다한다.


고구려(高句麗)의 '고'(高)는 시조 주몽 성씨에서 온 것이라는 설과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성씨를 '해'씨에서 '고'씨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


즉, “고구려는 '고'씨(주몽)의 아름다운 '구려'(나라)”라는 뜻이다.


재미있는 건 '고구려'가 한때 ‘고려’로도 불렸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그냥 잠깐 불렸던 게 아니라, 아예 4세기 장수왕 때 부터 국호가 ‘고려’로 정착됐고,

5세기쯤 되면 ‘고구려’라는 이름 자체가 거의 사라진다.


그런데 다시 '고구려'가 등장하게 된 것은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나서 부터 '고려'와 구분짓기 위해 '고구려'를 되살린 것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적으로는 ‘고려’가 더 오래, 더 광범위하게 사용됐다.


주몽의 고구려. 대조영의 발해. 궁예의 후고구려. 왕건의 고려.

이름만 다르지, 사실 다 같은 국호였다. 당시 궁예 기분 따라 나라 이름을 바꾼 '태봉'만 예외다.


<고려!>


이쯤 되면 ‘고려’는 그냥 국호가 아니라, 한민족 국명 뿌리라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영어로는 'KOREA'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 보다 더 이전의 우리 민족 뿌리인 ‘고조선’이 있었다.


'고조선'이야 당연히 우리 민족 뿌리이지만 이성계가 세운 '조선' 은 좀 다르다.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는,

말 그대로 명나라에 고개 숙이고 받은 이름이다.


그것도 '화령'(이성계 고향지명)과 '조선' 두 개 중 고르라 했더니 명나라가 ‘조선’을 골라주었다.


'고려'가 멸망한 뒤 새 나라 이름 지어주라고 올린 이름인데, 중국 입장에선 왜 하필 ‘조선’을 택했을까?


'朝鮮'은 '아침의 고요함', 즉 ‘가만히 있는 동쪽 오랑캐’ 같아서 마음에 들어서였다는 설이있다.


또한 자기가 태어난 지명을 국호 로 하는 것은 중국황제에게나 해당되는 일 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명나라는 역사 연속성 운운하면서 '고조선'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름 이었으니, 중국 '한'나라가 고조선 침략하여 멸망시키고 '한산군'을 설치하여 식민지 삼았던 옛 기억 상기시키는 데도 딱이었다.


사실 명나라로 부터 그런 국호를 하사받았다는 것 자체가, 조선이 명나라와 외교 를 얼마나 중시 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철저히 사대외교에 기대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고조선'은 원래는 '조선'이라 불리어 졌다. 이성계 이씨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새로운 '조선'과 분리하기 위해 '고조선'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고조선과 조선을 분리해서 부르게 됐고, 자연스레 ‘고조선’은 아득한 신화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고려 국정역사서 '삼국사기'에는 아예 고조선 단군신화 조차 기록 하지도 않았다.


이와같이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주몽'이 세운 나라다.


지금의 북한과 만주, 동북부 중국 땅을 거느렸던 초강대국이었다.


'주몽'은 '동명성왕'이란 칭호로도 불린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시조

이름이 '주몽'(朱蒙), 혹은 '추모' (鄒牟), 또는 '중해'(衆解)라고 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비'에는 ‘추모’로 등장한다.


이 모든 이름은 사실 같은 사람 '주몽'의 이름이다. 단지 발음과 음차의 차이일 뿐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동명'과 '주몽'이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 한다.


702년에 작성된 '연남산묘지명'

보면, '동명'은 사천을 넘어 나라를 열었고, '주몽'은 해를 품고 수도를 열었다고 나온다.


두 사람이 다른 인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주몽'과 '동명'을 동일인물 로 보지만, 원래는 다른 인물 이었을 수도 있다.


혼선은 고려시대 이후 기록되어진

부여 '동명왕'과 고구려 '동명성왕' 설화가 너무 비슷해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 모든 건국설화가 하나같이 ‘난생설화’ 이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로 건국시조에게 신성성을 입히고, 시조의 권위를 절대화하는 것 이다.


영웅도 사람인데, 신처럼 만들고 싶은 욕망, 국가의 권위를 위해 시조를 신격화하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반복된다.


그런데 단군과는 다르게 주몽은 신화 속 인물로 여겨져도 실존 여부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박혁거세도, 김수로왕도, 부여의 동명왕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단군만 유독 실존을 의심받는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렇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단군 동상 머리가 잘렸고, 우상이라며 망치질 당했다.


그 망치 쥔 사람들, 대부분 극단적 개신교 신자들이었다.


사실, 종교를 떠나 역사적으로만 본다면 '야훼'는 유태인 시조이고,

'단군'은 한민족 시조이다. 그런데 타민족 시조를 섬기고자 자기 민족 시조를 외래 신 이름으로 우상으로 치부하고 때려 부수는 이 기묘한 풍경이 20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어떤 종교를 믿든, 최소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예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단군은 실존인물이었다.


다만, ‘2000년을 살았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신격화된 것 뿐이다.


구약성서는 더 심하지만...


‘단군’이란 호칭은 한 사람 이름이 아니라 당시 왕의 계보였다.


'환단고기'에는 단군 47명 계보가 기록되어 있다.


'환단고기'가 설령 위서라고 해도, 단군을 실존인물로 인정하는 흐름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은 고대 기록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


삼국시대 역사서들은 매우 사실적 이고, 구체적이다.


물론 건국설화는 다소 신화적 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고대인들 의식과 가치관을 본다.


다시, 고구려 시조 이야기로 돌아 간다.


부여의 동명왕과 고구려의 동명성왕, 이 두 건국신화가 너무 닮아 있다. 아니 거의 똑 같다.


도저히 우연이라고는 보기 힘들 만큼.


왜 그랬는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히 풀어보자.


이어서 ‘고주몽 탄생설화’ 편에서 계속됩니다.


– 초롱박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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