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3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 탄생설화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3

ㅡ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주몽) 탄생설화 ㅡ


주몽!


2006년, '주몽'이라는 81부작 KBS 대하역사드라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주몽’은 그저 고구려를 건국하고 활을 잘 쏘는 전설 속 인물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띄엄띄엄 일부만 보았을 뿐, 전체를 시청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줄거리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시조 ‘주몽’, 즉 ‘동명성왕(東明聖王)’ 탄생설화 에는 그의 신비한 출생 배경과 탁월한 능력이 잘 드러나 있다.


동명성왕의 탄생설화는 《광개토왕비문》을 비롯해 《모두루묘지》, 《위서》, 《삼국사기》, 《동국이상국집》, 《삼국유사》 등 여러 역사 기록에 자세히 전해진다.


기록된 원문 내용을 일부 살펴보자.


● 《광개토왕비문》의 일부


“옛날에 시조 추모(주몽)왕이 나라를 세웠다. 북부여에서 태어나셨는데,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딸이었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셨는데, 태어나시면서 성스러운 기운이 있었다.”


● 《위서》


“고구려는 부여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스스로 말하기를 선조는 주몽이라 한다. 주몽의 어머니는 하백의 딸로서 부여 왕에게 잡혀 방에 갇혀 있던 중 햇빛이 비추자 몸을 돌려 피했으나 햇빛이 따라와 다시 비추었다. 이후 잉태하여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들이만 하였다.

부여 왕이 그 알을 개에게 주었으나 개가 먹지 않았고,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다. 길에 버렸으나 소나 말들이 피해 다녔다. 들판에 버려두자 새들이 깃털로 그 알을 감쌌다.

부여 왕은 그 알을 깨뜨리려 하였으나 깨지지 않자 결국 어미에게 돌려주었다. 어미는 다른 물건으로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고, 마침내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다.”


●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명성왕 즉위조」


“나이 겨우 일곱 살 때부터 남달리 뛰어나,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말로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였기에 그 이름을 얻었다.

부여 왕 금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함께 놀았지만 기예와 능력 면에서 주몽을 따르지 못하였다.

맏아들 대소가 왕에게 아뢰었다.

‘주몽은 사람이 낳은 것이 아니고, 사람됨이 비범합니다. 만약 미리 대처하지 않으면 후환이 두렵습니다. 청컨대 그를 없애소서.’

왕은 이를 듣지 않고, 그에게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은 날랜 말을 알아보고 일부러 적게 먹여 마르게 했고, 둔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했다.

왕은 살찐 말을 자신이 타고, 마른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후에 들판에서 사냥할 때, 주몽은 활을 잘 쏘기에 화살을 적게 주었지만 많은 짐승을 잡았다.

왕자와 여러 신하들이 또다시 죽이려 하자, 주몽의 어머니가 이를 눈치채고 주몽에게 알렸다.”


이처럼 주몽의 신비한 탄생설화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상세한 기록이기 때문에, 81부작이라는 대하드라마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주몽의 탄생설화는 부여를 건국한 시조 ‘동명왕’ 탄생설화와 너무 흡사하다.


주몽이 부여에서 왕자로 살다가 분리되어 나온 만큼, 부여 시조 ‘동명왕’ 탄생설화를 고구려 시조 주몽이 그대로 차용하여, 고구려 정통성을 강화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부여 시조 동명왕의 탄생설화이다.


● 《논형》에 전하는 동명왕 설화


“북이(北夷) 탁리국(橐離國)의 임금, 영품리왕을 모시던 무수리(侍婢)가 임신했다.

임금이 그녀를 죽이려 하자 무수리는 아뢰었다.

‘달걀만한 기운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를 잉태했습니다.’

이후 아이를 낳자, 돼지우리(豬溷)에 버렸더니 돼지들이 입김을 불어 아이를 살렸다.

다시 마구간(馬欄)에 옮기자 말들도 입김을 불어 아이를 살렸다.

임금은 하늘의 아들이 아닐까 의심하며 어미에게 거두어 노비처럼 키우게 했다.

아이의 이름은 ‘동명’이라 하였고, 소와 말을 돌보게 하였다.

동명은 활을 잘 쏘았고, 임금은 그가 나라를 빼앗을까 두려워하여 죽이려 했다.

동명은 남쪽 엄수(掩水)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다리를 만들어주었다.

동명이 건너자 다리는 사라졌고, 추격병들은 건너지 못했다.

이후 그는 부여(夫餘)에 도읍을 정하고 임금이 되었다. 이것이 부여의 기원이다.”


이 설화는 중국 사서 《논형(論衡)》에 실려 있다.


《논형》은 한나라 시기의 학자 왕충(王充)이 쓴 백과사전급 저작으로, 단 한 명이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를 집대성한 방대한 역사서이다. 그 양이나 내용 면에서 세계 동양사학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는다.


물론 '논형 에 나오는 모든 기록이 팩트일 수는 없지만, 한반도와 만주에 관한 이야기까지 정성껏 기록한 것만으로도 역사학자들 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만약 '논형'에 동명왕 설화가 남아있지 않았다면, 주몽의 탄생설화는 독자적인 창작으로 오해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대에 이르러 고구려 초기 역사를 정비하면서, 부여 시조 동명왕 설화를 차용해 주몽 탄생설화로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동명왕을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로 대체하거나 각색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는 고구려 시조 주몽의 신성한 혈통을 강조하여 건국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구려 소수림왕은 어차피 베낄 거면 좀 더 교묘하게 각색할 수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원형 그대로 차용했다. 이는 고구려가 부여 후예임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 이며, 소수림왕 시대까지도 부여 영향력이 고구려에 여전히 존재 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주몽설화는 단순한 신화나 전설을 넘어, 고구려 정통성과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설화는 수많은 역사서, 문학작품, 드라마 등을 통해 꾸준히 다뤄졌으며, 특히 KBS 대하드라마 '주몽'의 인기로 인해 주몽은 더 이상 알에서 태어난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역사적 실존 인물처럼 다가오게 되었다.


반면, 아직 드라마로 다뤄지지 않은 동시대 인물들—예를 들어 '박혁거세', '김수로왕' 등도 주몽처럼 '난생설화'를 지닌 인물들이지만, 여전히 전설적 존재로 남아 있다.


주몽은 이후 졸본 지역에 도착해 고구려를 건국하고 스스로를 '동명성왕'이라 칭하게 된다.


고구려 발상지인 압록강 중류 지역은 요동지역과 동해안, 남쪽 대동강 유역, 북쪽의 송화강 유역 으로 통하는 교통 요충지였다.


특히 고구려 최초 발상지인 ‘졸본’ 지역(오늘날 중국 요녕성 환인)은 넓은 분지를 이루고 있으며, 중국 동북 지역 중에서도 가장 온난 하고 강수량도 풍부하여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다.


이처럼 주몽이 지리적 이점을 가진 지역에 고구려 터를 잡아서 고구려는 빠르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정치적 안정과 영토확장을 목표 삼았다.


초기에는 부여처럼 북방 유목민 영향을 받아 정복국가 성격을 띠었으며, 중국 낙랑 등 한나라 군현을 공격하며 세력을 확장 했다.


그러나 고구려는 단지 유목민적 정복국가에 머무르지 않고, 초기부터 농경사회 특성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주몽에게는 '소서노'라는 부인이 있었다.


사실 ‘소서노’라는 이름은 드라마 '주몽'이 방영되기 전까지는 대중 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름 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몰랐을 뿐, 역사적 으로 볼 때 소서노는 우리나라 역사 상 가장 강력한 여성이다.


‘소서노’는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 부인이자, 백제 건국 시조 '비류'와 '온조'의 어머니였다.


소서노는 직간접적으로 무려 세 나라(고구려, 비류백제, 온조백제) 건국에 깊이 관련된 인물이다. 단순히 관련되었다기보다, 이 세 나라를 실질적으로 건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이어가겠다.


ㅡ 초롱박철홍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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