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가?)
초롱초롱 박철홍 지금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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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사형제도에 대한 깊은 고민 ㅡ
(인간이 인간을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가?)
얼마 전 내가 직접 경험 해 올린 ‘사형집행인’이라는 글에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 댓글 중 70% 이상은 사형제도 존속과 즉각적인 집행을 지지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이 없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 (de facto abolitionist count) 으로 분류되고 있다.
2007년부터 국회에 여러 차례 사형폐지 법안이 발의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논의가 계속되고는
있으나 아직 법적으로 폐지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형은 법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집행할 경우 생기는 정치적, 도덕적, 국제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유보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정부 입장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된 것이다.
즉, 형법상 사형을 유지함으로써 강력 범죄에 대한 억제 효과는 기대하면서도, 실제로 집행하지 않아 국내외 리스크는 최소화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최근 한국갤럽에서 시행한 사형제도 존폐 여부 여론조사에서 “유지해야 한다”는 70% 이상 차지하고 있다.
특히 ‘흉악범’ 사건들이 연달아 보도되면 언론 보도나 국민청원 쪽에서 사형집행 필요성 여론이 훨씬 커진다.
이처럼 흉악한 범죄 앞에서 분노하는 건 인간으로서 너무도 당연한 감정이다.
나 또한 “이런 인간들은 죽어 마땅 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얼마 전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전처를 잔인하게 살해한 남성의 뉴스가 보도됐다. 그의 친딸은 국민청원에 이렇게 썼다.
“제발 아버지를 사형시켜 주세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기에, 오죽 하면 친딸이 공개적으로 "죽여 달라"고 까지 청원할 정도였을까?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는, 집에선 폭군이자 악마였다 한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사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그런 극단적인 분노 뒤에 숨겨진 더 깊은 질문이다.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로 알려진 '화성연쇄살인' 사건.
그 진범이 '이춘재'라는 사실은 너무 늦게 밝혀졌다. 그로 인해, '윤성여' 씨는 무기징역 선고받고 20년 넘게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만약 그가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집행당했다면?
이 글을 읽는 우리는 지금, 윤성여 씨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윤성여씨 억울한 죽음은 그렇게 세월 속에 묻히고, 사라졌을 테니까.
사형제도 반대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다.
“백 명의 범죄자를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선 안 된다.”
사형은 단 한 번의 실수로 되돌릴 수 없는 결과 낳는다. '불가역적'인 상황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것이 사형제도가 가진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사형제도 반대 댓글 중 하나는 이런 통찰을 담고 있었다.
“사형제도가 잘못이 아니라, 풀어준 판사가 문제다.
사형보다 문제는, 판결이다. 우리는 배심원제가 필요하다.”
이는 사형제도를 단순히 도구로 보지 않고, 그 집행 주체인 ‘사법 시스템’ 전체를 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사법제도 수사와 판결은 과연 충분히 신뢰할 만한가?
윤성여 씨 같은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은 정말 ‘제로’인가?
판결이 정의롭지 않다면, 사형은 그저 공권력을 앞세운 또 하나의 살인일 뿐이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사회!
철학적인 질문으로 들어 가 보자!
“국가는, 인간이 인간을 합법적 으로 죽이도록 허락할 수 있는 가?”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죽음’을 선고하고, 제도적으로 집행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사형'은 국가가 합법적으로 행하는 유일한 ‘살인’이다.>
그 자체로 모순이며, 인간 존엄 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역사 속 위인들 중에는 억울하게 사형당한 이들이 많다. 사형 당하고 나서 훗날에야 비로소 재평가를 받았다.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외쳤다는 이유로 수많은 열사들이 '사형'이라는 이름 아래 국가로부터 합법적으로 살해 당했다.
또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처럼, 윤성여 씨와 같이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사례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또 다른 ‘윤성여’가 사형을 선고받고 있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모두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분노'로 '제도'를 설계할 수는 없다>
분명히 말하자.
범죄에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분노로 법과 제도를 결정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에서 항상 사형제도 찬성이 높게 나오는 이유는, 그만큼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분노가 크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도는 ‘감정’이 아니라, ‘이성’과 ‘철학’ 위에 서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정의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억울한 희생자가 없고 진짜 범인이 벌을 받는 사회!
그것이 진짜 정의다.
'사형제도'는 쉽게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극악한 범죄를 마주하면 우리는 분노하고, 그 분노는 ‘죽여야 한다’는 감정으로 흐른다.
하지만 그 감정을 넘어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사회는
<어떤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사회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형제도는 단지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에 대한, 깊은 철학적 고민이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