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광주항쟁,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by 초롱초롱 박철홍

초롱초롱 박철홍의 지금도 흐른다! 851

―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 ㅡ

(내가 겪은 광주항쟁,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다")


'한강' 작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처음 손에 든 건 서너 달 전, 해외여행을 떠나던 길 위였다. 책은 여행 한 중간쯤, 어귀에 다다랐을 때 절반 정도 읽다 덮였고, 그렇게 한동안 잊혔다. 그리고 얼마 전, 책장을 정리하다 다시 발견했고, 이번에야 끝까지 읽었다.


이 소설 주인공 ‘소년’은 ‘동호’다.


소설 속 동호는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중학교 2학년쯤으로 묘사된다.


동호가 다니는 학교는 소설 속에서는 ‘ㄷ중학교’라 표현되는데, 내가 졸업한 ‘광주동신중학교'

였다.


내가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 실제로 한강 작가 아버지이자 소설가인 '한승원' 선생님께서 국어교사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한승원 선생님은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첫 단편소설집 <앞산도첩첩하고>를 펴내셨다. 우리는 쥐꼬리만 한 용돈을 모아 몇 권을 단체로 구입해 돌려 읽었다. 우리에겐 단순한 독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쩌면 ‘문학’이라는 것이 손 닿을 수 있는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처음으로 실감케 했다. 책을 쓴 소설가가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그건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릴 적 기억이라 희미하지만, 그 책 속에는 선생님 고향인 장흥 바다와 산,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스며 있었다. 문장마다 짙은 바닷바람 염기와 산골 적막함이 배어 있었고, 그 풍경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끌어당겼다.


특히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대목이 하나 있다. 해변에 사는 한 청년이 말미잘을 가지고 무시로 ‘거시기'(?)하는 장면이었다.


그 시절 사춘기 중심에 서 있던 우리들은 그 장면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했다. 의미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키득거리며 손짓 흉내를 내고, 마치 거대한 비밀을 공유한 듯 한껏 들떠 있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되던 날, 나는 기쁜 마음에 SNS에 글을 올렸다.


"한강 작가의 아버지, 한승원 선생님이 내가 다닌 중학교에서 우리를 가르치셨다" 며 어깨를 으쓱했던 기억이 난다.


<소년이 온다> 속 동호는, 아버지가 교사로 있던 학교에 다니던 학생으로 설정되어 있다. 항쟁 당시 총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마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을 모델 삼아 창조된 인물일 것이다.


소설 속 동호는 나보다 대략 6~7년 후배쯤 된다.


실제로도, 1980년 광주항쟁 당시 광주 동신중학교 학생이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 학생의 이름은 ‘박기현’이었다.


당시 사망한 중학생 희생자는 다음과 같다.


김완봉 (14세, 무등중 3학년)


박기현 (14세, 동신중 3학년)


박창권 (14세, 숭의중 2학년)


그러나 소설 속에서 동호가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사망했다는 설정은 사실이 아니다.

그 부분은 한강 작가 상상력과 문학적 장치가 더해진 허구다.


당시 실제로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 의해 희생된 가장 어린 시민군은 만 16세 ‘문재학’ 열사였다. 그는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총에 맞아 숨졌다.


한강 작가는 ‘동신중’에 재학 중 숨진 박기현 군과,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킨 문재학 열사 삶을 조합해 ‘동호’라는 상징적 인물을 창조한 듯하다.


그렇기에 이 소설에서 동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광주항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어린 소년과 소녀들을 기리는 문학적 형상화이며, 국가폭력 참혹함을 절규하듯 드러내는 상징이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 희생된 청소년은 결코 적지 않다.

전두환 군부가 밝힌 공식 사망자 165명 중, 10대 청소년이 36명, 무려 21.8%에 달한다. 그들 평균 나이는 고작 16.7세였다.


소설은 동호 죽음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죽은 소년 동호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오월 그날의 광주, 나는 스물한 살 대학 2학년이었다. 광주 인근 담양에서 광주 소재 대학으로 통학하며 지냈고, 항쟁 기간엔 담양까지 온 시민군 버스를 타고 손에 총을 들고 광주시내를 이틀쯤 헤집고 다녔다. 내가 다닌 시점은 시민군이 광주를 장악하고 있던 때라 상대적으로 위험하지 않았다.


그때의 이야기는 <오월이 다시 오면>이라는 제목으로 10편 정도 SNS에 연재해 놓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경험했던 항쟁은 그저 언저리에서 스쳐 지나간 일이었음을 절실히 느꼈다. 중심에서 항쟁을 지켰던 동호 같은 이들과 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특히 소설 속 고문 장면은 차마 눈을 뜨고 읽기 힘들 정도였다. 굶주림으로 인간 본성을 시험당하고, 음식 앞에서 본능적으로 다투는 장면은 너무도 현실적 이어서 슬펐다.


음식을 앞에 두고 다툰 사람들을 보고 소설 속 '영재'는 말한다


“우... 우리는 죽을 각오를 했었잖아요?”


음식 앞에 놓인 생존과 본능,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나약함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라도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슬펐고, 고통스러웠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 본질이 아닐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났다.


"동호는 왜 남았을까?"


"문재학 열사는 왜 그 어린 나이에 도청을 떠나지 않았을까?"


"가족은 생각하지 않았을까?"


도망쳤다면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그들에게 끝까지 남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빠져나갔다고 그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묻는다.


“왜 마지막까지 남았어요?”


그 대답은 늘 같았다.


“모르겠었어요. 그래야만 될 것 같아서요.”


그들 선택은 생과 사를 갈랐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 역시 이후 지옥 같은 삶을 견뎌야 했다.


고문 후유증,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일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 수는 수십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들 고통은 오랫동안 사회적 관심밖에 있었고, 국가기록에서도 체계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그런 기록들과 소설을 마주하며,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이율배반적 감정에 사로잡혔다.


‘절대 남아서는 안 된다’는 생존 본능과,


‘그러면 세상은 어쩌라고’ 하는


두 마음사이에서 갈팡질팡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였다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훨씬 더 강했을 것이다.


당시 나도 군인들이 다시 광주에 들어온다는 소문을 듣고, 광주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가 어떻게 알고 광주까지 걸어서 친구집까지 찾아온 어머니와 함께 아무 탈 없이 담양으로 되돌아갔다.


이런 와중에도 목숨 무서운지 몰랐던 ‘동호’ 같은 소년들이 있었다.


물론 목숨 무서운지 알면서도 그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려던 사람들도 있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그런 이들 덕분에,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들처럼 살 순 없을지 라도, 그들이 남긴 고마움만큼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한강은 <윤석열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를 보고 말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한 것이다.”


한강말처럼 지난 12.3 계엄령 사태 때, 느닷없고 뜬금없던 그날, 국민들이 일찍부터 저항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동호 같은 소년들 죽음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1980년 광주 비극을 기억하기에, 우리는 계엄 공포를 더 빨리 알아챘고, 더 단호하게 맞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나이, 같은 학창 시절을 보냈던 '윤석열'은 왜 그랬을까?


왜 제2의 광주항쟁을 무릅쓰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것일까?


자기 나름 이유야 있었겠지만, 정말 역사도 전혀 모르는 택도 없는 짓이었다


윤석열과 나는 같은 시대를 같이 살았음에도 이렇게까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니, 참말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게다가 윤석열은 겉으로 나보다 훨씬 더 엘리트였다.


서울법대, 검사, 검찰총장, 대통령…


감히 비교조차도 안 된다.


그런데 요즘 부쩍 느낀다.

‘엘리트’라는 말은 ‘인간다움’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친일민족 반역매국노'인 '이완용'도 당시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한 엘리트 중 엘리트였다.


우리 역사 속 엘리트들은, 종종 민족과 국가를 배반해 왔다.


그들은 아마 <소년이 온다>와 같은 책을 읽을 시간조차 없이 살아왔을 것이다.


설령 읽었다 해도, 그 본질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ㅉㅉㅉ, 왜 세상을 그렇게 멍청하게 살아?”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런 글을 쓰는 나조차도 동호 같은 소년들 선택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동호도 지금 우리가 말하는 숭고한 생각으로 남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 오도된 엘리트들에게 동호의 남은 의미를 이해하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세상은, 그런 ‘바보 같은 삶’을 살았던 이들 덕분에 조금씩 나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윤석열 비상계엄 선포도,

그 사건이 남긴 유일한 긍정적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내게 <소년이 온다>를 다시 꺼내 들게 했다는 것이다.


요즘 윤석열도 시간이 많을 것 이다.


내가 넣어줄 순 없지만, 누군가

이 책 한 권쯤 영치품으로 넣어줬으면 한다.


그런데 그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어쨌던 윤석열이 그가 진심으로 <소년이 온다> 책을 읽을 수 있기를, 아니, 적어도 ‘한 번쯤’은 그 피비린내 나는 페이지를 넘겨 보기를 바란다.


― 초롱 박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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