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건국과 소서노 1
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대사도 흐른다 4
ㅡ 백제건국과 소서노 1 —
(신이 되지 못한 건국의 어머니, 소서노를 다시 보다)
고대사 속 인물 중 ‘소서노’만큼 강렬하면서도 모호한 위치에 놓인 여성은 드물다.
소서노는 남편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녀의 두 아들 '비류'와 '온조'는 훗날 백제를 건국했다. 사실은 '소서노'가 건국한거나 마찬가지 였다
이 정도라면 대개 '건국 어머니'로 신격화되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소서노'는 그러지 못했다.
삼국의 시조를 낳은 여성 중 유일 하게 신으로 추존되지 못하고, 철저히 인간으로만 남은 인물이 '소서노'다.
왜 그랬을까?
그 답을 찾아보기 위해 우리는 '삼국사기'의 백제건국 기록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삼국시조 들은 신화적 출생을 갖고 있다.
신라 '박혁거세'와 가야 '김수로왕' 은 알에서 태어났고, 고구려 '주몽' 역시 알에서 나왔다. 부여 동명왕'
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난생설화'(卵生說話)는 왕권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고대 정치신화 전형이다.
그러나 백제 '비류'와 '온조'는 다르다.
그들은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서 <분명히 인간으로서 태어난 것> 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대국가 중에서 백제만 유일하게 시조 탄생에 신화적 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소서노 또한 ‘신의 어머니’가 되지 못했고, 후대 신격화에서도 배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삼국사기'는 두 개의 백제건국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백제 건국에 대해 두 개 전승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정식 본문이고, 다른 하나 는 “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一云)”라는 표현으로 시작하는 보조 전승이다.
이 두 전승은 내용과 관점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본문 전승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ㆍ비류와 온조는 주몽의 친아들
ㆍ소서노는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음
ㆍ백제의 시조는 온조왕
ㆍ오간, 마려 등 열 명의 신하가 도읍지 결정에 핵심 역할
ㆍ비류 온조 형제는 고구려 '유리' 가 태자가 되자 자발적으로 남하
<일운(一云) 전승으로 기록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ㆍ비류와 온조는 소서노와 우태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ㆍ주몽은 소서노의 두 번째 남편이자 비류 온조 양부
ㆍ백제의 시조는 비류왕
ㆍ신하들의 존재는 등장하지 않고, 소서노의 정치적 역할이 강조됨
ㆍ주몽 사망 후 '유리'가 왕이 되자 남하함
이처럼 <본문>은 왕권 정통성과 온조 중심성을 강조하는 반면,
<일운> 전승은 소서노의 공로와 비류의 주도성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일운> 전승에서 '소서노'는 분명히 실명으로 등장 하며, 그녀가 자신 재산으로 고구려 건국 기초를 닦았고,
아들들을 이끌고 직접 남하하여 백제를 개국하는 핵심 인물로 서술된다.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기록자 입장과 목적에 따라 가려진다.
'삼국사기'가 고려중기 편찬된 것 감안하면, 이 시점까지도 백제 건국에 대해 서로 다른 계통 문헌 전승이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두 전승 중, 어느 쪽이 더 사실에 가까울까?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할 때, <일운> 전승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비류와 온조가 주몽 친자가 아닌 양자였다는 설정은, 난생설화가 없는 백제시조 특성과 부합한다.
또한, 당시 여성 정치적 역할이 기록에서 종종 누락되었던 경향을 감안하면, 소서노 실질적인 건국 기여가 후대 기록에서 의도적으로 축소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 한다.
무엇보다도, ‘소서노’라는 여성의 이름이 직접 기록된 전승은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깊다.
신격화되지 못한 ‘건국 어머니’ '소서노'를 우리는 새로운 눈으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
소서노는 삼국 중 두 나라 창업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다.
소서노는 자신재산을 바쳐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도록 도왔고,
나중에는 친자식인 비류와 온조를 이끌고 남하하여 백제건국 초석을 닦았다.
그러나 그녀는 신이 되지 못했고,
공식 역사에서조차 두 가지 설에 나뉘어 존재하는 인물로 남았다.
우리가 그녀를 다시 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남성중심 건국신화 뒤에 가려진, 실질적인 ‘역사 주체’로서 여성을 복원하는 일은 단지 과거를 복원 하는 작업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시선과 역사인식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서노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는, 비류와 온조가 주몽의 친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들과,
왜 백제는 신화 대신 ‘현실적 서사’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더욱 깊이 있게 살펴보겠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