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 지원 결과를 알리는 문자가 날아왔다. 명단을 훑다 두 눈을 의심했다. 내 이름이 없다니. 생각지도 않았던 난감함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컨설턴트다. 어떤 이는 컨설턴트의 삶을 보따리장수에 비유하기도 한다. 보자기에 싼 물건을 짊어지고 방방곡곡을 떠돌던 사람들 말이다. 시대가 변해 바뀐 건 보자기를 대신한 가방과 노트북 정도랄까. 그 옛날 큼지막한 보따리에 신기한 물건이 가득했듯, 나에 노트북에는 삶의 경험과 흔적들로 빼곡하다. 나는 그것을 밑천 삼아 유랑하며 살아간다.
우리네 삶이 그렇다. 꽃피는 3월 새싹이 돋아나면 컨설턴트의 삶도 시작된다. 장애인, 경력단절 여성, 시니어, 청년,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여러 기관에서 이들을 돕는 외부 전문가를 불러 모으고, 향긋한 꽃내음에 웽웽대던 꿀벌들이 날아들 듯 우리네도 모여든다. 이맘때면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처럼 컨설턴트 지원서를 작성한다. 절차에 맞게 서류심사와 면접을 치르면 당락이 결정되고, 그제야 내 한자리 삶에 터전이 마련된다.
10년 전. 그때는 일거리가 없어 고달팠다. 컨설턴트 약력 한 장을 채우는 일이 버거웠던 시절. 한 일이 없으니 쓸 말이 없었고,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걸어온 길 한 줄을 채우는 것이 이리 어려운 일임을 그때서야 알았다. 종이 한 장을 뚫어져라 보다 어쩌다 여백 한 줄이라도 채우는 날이면 기억 속 바다를 배회하다 운 좋게 고기 잡은 어부마냥 괜시레 마음이 들뜨곤 했다. 시간이 흐르자 차츰 기회가 오고 자연스레 지원서의 빈 여백도 채워졌다. 여백을 채우는 일은 마치 음식 레시피를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식을 만들려면 여러 식재료가 필요하듯, 하나에 삶을 채우기 위해 온갖 경험을 나열해야 했다. 적당한 경력을 채우고, 필요한 자격을 골라, 알맞게 버무리면 그럴싸한 음식을 담아내듯 지원서가 만들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컨설턴트 지원에 절실함이 사그라졌다. 어떻게든 기회를 얻으려 준비하고 애쓰던 그 설렘이 사라진 거다. 어림짐작이지만 지난 면접에 떨어진 이유는 내 어긋난 마음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설마 떨어지기라도 하겠냐는 안일함이 말과 표정에 비쳤을 테다. 적당한 재료로 음식음 담아내고는 좋은 맛을 기대했으니 그 맛이야 말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곰곰 생각해보면 면접에 떨어진 나에 황당함은 당연함에 더 가까울성싶다.
그 옛날 보따리장수는 패랭이 양쪽에 목화송이를 달고 팔도강산을 누볐다. 생선, 소금, 나무 그릇, 질그릇, 무쇠처럼 부피가 크고 값싼 것을 팔기도 하고, 비단, 명주, 모시, 면화, 가죽처럼 부피는 작아도 값나가는 물건을 팔기도 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 보따리에는 값진 무엇이 담겨 있을까.
이제는 내가 더 필요한 곳을 찾으련다.
더 절실한 마음을 담아내면
그 만남과 인연은 좋은 향기와 맛을 낼 테니.
그러면 떨어질 일도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