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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Apr 14. 2021

힘없는 나를 마주할 때

아이들과 북서울 꿈의 숲에 들렀다. 이곳을 지날 때면 도로변 귀퉁이 맥도널드에서 새어 나오는 치킨 향기에 구미가 당긴다. 보통 사람들이 입을 다시며 뭘 먹을까 고민할 때쯤. 나는 이놈에 못 말리는 직업정신이 꿈틀거린다. 전 세계 120개 나라에 뿌리내린 맥도널드는 하루 68백만 명의 사람들이 37,855개 매장을 찾아 햄버거와 치킨을 맛보는 곳이다.  습관처럼 주변을 둘러보자 몇 개의 치킨집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알려나. 이작은 땅에 맥도널드보다 조금 적은 36,791개(2018년 기준)의 치킨가게가 있다는 사실을.      


둔촌동 한 치킨 가게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40대 중반의 부부는 8년간 한 몸이 되어 셀 수 없이 많은 닭을 튀겼단다. 고등학생 큰아들은 몇 해 전 선교사를 따라 필리핀에서 살게 됐고, 열 살 터울의 작은 아들과 부부만이 함께 생활했다.    

 

여덟 평 작은 가게에 들어서자 구석자리 테이블 위로 접다만 종이박스가 수북했다. 튀김기와 냉장고 뒤로는 작은 방 한 칸도 딸려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날. 입놀림이 어색함을 눈치챘다. 유심히 살피니 위아래로 여러 대 이가 빠져있었다. 내 어림짐작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취기에 넘어졌거나, 누군가 붙들고 싸움질을 했겠거니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우리 부부가 이 자리에서 8년을 일했습니다. 몇 년간은 장사도 잘되고, 들어오는 돈도 쏠쏠했습니다. 2년 전부터 조끔씩 힘들어졌어요. 주변에 하나둘씩 치킨집이 생기더니 지금은 열 개가 넘어섰습니다. 인근 둔촌아파트 재개발로 칠천 세대가 이주하면서 월 천만 원이 줄고, 과당경쟁으로 치달았습니다. 그전에는 영업지역을 넘지 않고 상도를 지켜가자 다짐했습니다. 지금은 그딴 생각할 겨를이 없죠. 주문 오면 어디든 갑니다. 거리가 멀어도 배달비만 주면 되니 문제 될 게 없어요. 나만 그런 거면 마음이 불편할 텐데. 다른 곳에서도 이리 넘어오니 서로 제살 까먹는 꼴이 돼버렸어요.

보시다시피 제가 이가 많이 부실합니다. 그거 아세요. 사람은 누구나 아픈 곳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못 느끼다 몸에 무리가 오면 탈이 납니다. 8년을 하루도 쉼 없이 일했더니 이상이 오더군요. 피곤할 때 가끔 잇몸이 부어 터지곤 했는데 하나하나 빠진 이가 여덟 개가 됐습니다. 부부가 온종일 가게에 매어 있으니 꼴이 말이 아닙니다. 둘째가 여섯 살인데 친구가 없어요.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갈 데가 없어 가게 방 안에서 혼자 놉니다. 안타깝죠. 챙겨야 하는데 장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방 앞에 튀김기 쪽으로 뛰쳐나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큰소리로 야단치기 일쑤죠. 방문 틈으로 튀김 연기가 새어들어 건강에도 안 좋아요. 아내도 몸과 마음이 지쳐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랩니다.


그는 권리금을 얹어 가게를 팔고 싶었지만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배달 경쟁으로 매출은 떨어지고, 무엇보다 인근 아파트 입주시기까지는 2년을 더 버텨야 했다.     


얼마 후 다시 그를 만났다.

둘째 아들은 형이 있는 필리핀으로 보내렵니다. 이 곳 환경도 안 좋고, 차라리 형과 있는 게 낳겠다 싶어서요.

여섯 살이면 아직 엄마품이 그리울 나이인데요. 그렇게 보내시면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요.

어쩔 수 없죠. 지금은 어떻게든 권리금을 얹어 가게를 팔아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조금 아쉽더라도 이쯤에서 가게를 정리하는 게 손해를 덜 보는 일입니다. 지금은 돈 보다 선생님의 건강과 가족을 챙겨야 합니다.    

  

그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땐

그곳은 가족이 함께 숨 쉬며 행복을 꿈꾸는 자리였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삶에 수레바퀴에 뒤엉킨 가족은    

그렇게 웃음을 잃고, 서로를 잃었다.   

  

잘 지내고 있을까

그 가게는 어찌 되었을지

그의 아픈 잇몸은 아물었을지

아내는 웃음을 되찾았을지

지금쯤 아홉 살이 됐을 아들은 어디에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가 있다.

한 사람의 힘으로 부족함을 느끼며

그 고통을 바라봐야만 할 때

나의 역할은 한계에 다다르고

힘없는 나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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