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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Apr 29. 2021

조금 느슨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조금 느슨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작은방에서 삐악삐악 새끼오리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침 여섯 시, 아직은 이른 시간. 녀석의 애달픈 울음이 그치질 않았다. 물과 사료를 넣어주자 넓은 주둥이로 연신 쪼아대며, 허겁지겁 씹지도 않고 넘기는 걸 보니 많이 배고팠나 보다. 채집통 속 달팽이 가족도 하룻밤 새 콩알만큼 더 자라고, 알을 품은 구피 물고기 두 녀석은 어제 보다 배가 더 부풀었다. 아침 일상은 녀석들의 안위를 살피고, 밥을 챙기는 일로 시작한다.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주섬주섬 책가방을 챙기는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줬다. 일에 치여 살 땐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급급했는데. 올봄부터는 아이들 학교와 가끔씩 아내의 일터까지 바래다주며 여유로운 삶에 호사를 누린다.  


이렇게 느슨한 삶을 얻으려면 합당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일을 줄이려고 몇몇 기관의 컨설턴트 활동을 그만뒀다. 어차피 일을 벌이거나 내려놓는 일 모두 내 선택에 달린 일이라 여겼다. 일을 내려놓으니 연간 수천만 원에 수입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동안 경제적 궁핍이 나를 옥죄었다. 생활비와 사무실 운영비, 날아드는 카드 값이 버거워 하루에도 몇 번이고 괜한 짓을 한 건지 곱씹었다. 여전히 금전적 어려움은 진행형이다. 다행히 어려움만 있는 건 아니다. 활동은 줄었지만 나를 위한 시간은 늘었다.  자기  몸 만한  가방을  메고  뒤 뚝 뒤 뚝  학교로 향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절로 미소가 흐른다. 내면의 나와 마주하는 글쓰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고 삶을 사유하는 책 읽기는 지친 심신과 공허함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었으니 모두가 나를 위한 시간이라 하겠다.    

 

한 때 성공하는 삶을 꿈꿨다. 가슴에 훈장 다는 일이 성공이라 여기 미친 듯 일했다. 나라는 존재 위에 가맹거래사, 컨설턴트, 전문위원, 자문위원, 평가위원, 전문가라는 무형의 꼬리표가 생기자 이곳저곳에서 날 찾았다. 돈도 벌고 삶도 풍요로웠다. 아니 풍요로운 줄 알았다. 어느 순간 훈장의 수만큼 그 굴레에 갇혀 멤 도는 나를 마주한 순간. 이것이 성공이 아님을 깨달았다.  

    

내가 떠올리는 성공이란 흐르는 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은 냇물이 흘러 굽이쳐 흐르는 강을 거치고, 바다를 지나 구름이 되어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때로는 강물이 됐다가, 바다가 되고, 마치 그것이 나인 것처럼 모두를 얻어 전부인 것처럼 느끼는 건 아닐지. 삶도 그렇지 않을까. 어떤 자리가, 그것이 온전한 나의 성공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는 건 아.       


TV 속 ‘자연인’을 자주 본다. 대자연과 어울려 살아가는 산사람들은 손수 지은 허름한 집 한 채가 전부일지 모른다. 돈도, 명예도, 큰 대의도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 성공이란 자연에 몸을 맡기고 서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일이 아닐는지.

자연인의 삶에 심취해 넋을 잃을 무렵.

아내가 넌지시 말했다. “그렇게 부럽거든 이다음에 혼자 올라가 살아도 돼.”

렇지 나이를 먹어야 혼자 갈 수 있는 거지.

지금은 비록 처자식이 딸린 몸으로 자연인에 삶을 동경할 뿐이다.

도시에 살더라도 적당히 벌어 만큼만 쓰면 자연인처럼 살지 않을까.

성공은 뭐고, 인생은 뭐라고.

느슨하게 살아도 되겠지.

그래 조금 느슨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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