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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환 Apr 30. 2021

밥 맛이 좋아 걱정스런 날

“여보! 오늘 밥맛이 이상해. 밥이 오래됐는지 윤기도 없고 찰기가 없어서 고들고들하네.”

“이상하네! 밥 한지 얼마 안 됐는데. 쌀이 안 좋은가...”

“쌀은 어디서 산 건데.”

“요 앞 동네 쌀가게에서 샀지.”    

 

아내 말대로 쌀에 문제가 있거나, 밥솥에 이상쯤으로 여겼다. 그 때문에 한 동안 밥알이 설익어 살강살강 씹히는 맛없는 밥을 먹어야 했다.     


여느 때처럼 늦은 저녁 허기를 달래려 밥솥 뚜껑을 들쳤다. 오늘따라 유난히 구수한 냄새가 콧속으로 스미고, 땡글땡글한 밥알에 윤기가 도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여보! 오늘은 쌀이 조금 다른 거 같은데.”

“어! 이마트에서 사 왔어. 이맛쌀인데 밥맛이 괜찮네. 한번 먹어봐.”    

 

대수롭지 않은 듯 한수저 가득 밥을 얹어 입에 물었다.

입 안을 가득 채운 밥 향기에 취해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렀다.     


“여보! 이맛쌀 진짜 맛있다. 꼭 햇반을 데워서 바로 먹는 맛이야.”

“맛있지. 앞으로 계속 시켜먹어야겠어. 4만 원 이상 주문하면 무료배송이라 나가지 않아도 되고.”

“맛있는데 가격도 싸다. 동네 쌀가게보다 만원이나 저렴해. 맘 같아서는 동네가게 물건을 팔아주고 싶은데 쌀값도 비싸고, 당신도 먹어봤잖아. 밥맛도 그렇고. 그냥 팔아주는 건 아닌 거 같고. 집안 살림을 생각하면 적은 돈도 아닌데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네.”    

 

아내 말을 들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동네 쌀가게는 이마트를 어찌 상대해야 하나. 운동경기였다면 비슷한 체급끼리 실력이라도 겨룰 텐데. 자본과 규모, 시스템과 인프라 모두가 열세인 동네 구멍가게는 무슨 수로 버텨야 하나.

가격만 비싼 맛없는 쌀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나 불공평한 경쟁.     

합리적 소비와 효율적인 가정살림을 말하는 아내에게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래도 동네 물건 팔아주자, 이 말을 했어야 했는데.         


아내를 마주 보며, 한 숟가락을 더 떴다.

밥맛이 좋다.

그래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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