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마주친, 너라는 기적

슬기로운 엄마 생활의 서막 : 빗길 사고가 쏘아 올린 공

by 초마


나의 사랑하는 딸 채영.


이 글은 엄마가 30년 후 채영이에게 미리 보내는 편지야.


엄마는 채영이에게 할 말도 해줄 말도 아주 많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채영이와의 사랑스러운 추억이 엄마가 할머니가 되면 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추억들을 혹시라도 잊어버릴지도 몰라서 미리 적어놓으려고 해.


사실 너도 잘 알지? 엄마가 늘 외할머니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한다는 걸 말이야.

엄마는 외할머니가 오래오래 엄마 옆에서 같이 있어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이별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때에 아무도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찾아오기도 하더라.


그래서 엄마는 채영이에게 엄마의 마음을 그리고 엄마의 생각을 편지로 써서 남겨 보려고 해.

이 편지를 읽으면서 '그 때 우리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ㅇ머마는 너무 행복할 것 같아. 그 예전 엄마가 왜 그런 행동을 했었는지, 엄마가 행복했다고 생각했을 때와 속상했을 것 같은 때를 생각하면서 엄마 마음이 함께 전해지면 좋겠다.


자,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역시 이 편지의 시작은 네가 엄마 아빠에게 왔던 그 마법같은 순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지?






사건의 시작은 어느 비 오는 밤이었어.


아빠와 엄마는 아빠집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어. 신호대기에 서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뒷 차가 엄마차를 들이받았어. 다행히 엄마와 아빠는 많이 다치지는 않았고, 차도 뒷 범퍼가 조금 깨져서 수리를 하기로 했지. 그런데 서 있던 차를 생각지도 못하게 받히고 나니 엄마와 아빠는 등부터 목이 너무 아팠어.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 집 근처 정형외과에 주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보기로 했어. 그 당시 엄마 회사는 휴가를 오래 내기 힘들었거든. 그래서 금요일 밤 입원을 하고, 주말에 입원해서 치료를 좀 받으려 했어. 사실 아빠는 엄마보다는 좀 상태가 괜찮았는데, 엄마는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등이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거든.

그렇게 엄마와 아빠는 금요일 퇴근 후에 병원 앞에서 만나서 입원 수속을 마쳤어.

이런저런 검사를 위해서 서명을 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물으셨어.


"혹시 임신 가능성이 있으신가요?"


신기하게도 순간 엄마의 머릿속이 하얘졋어. "어? 혹시 모르겠지만, 지금 조금 생리가 늦어지고 있긴 해요.."


"아.. 그러면 일단 임신테스트기로 먼저 테스트부터 해보고 오세요."


쿵.

쾅.

쿵.

쾅.


갑자기 임신테스트기를 잡은 엄마의 손도 떨렸고, 엄마의 마음도 너무나 두근거렸어.

사실 엄마와 아빠는 오래 연애를 하긴 했지만, 아직 결혼을 할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엄마에게는 아픈 외할머니가 계셨고, 엄마 집은 대학 때까지 나름 잘 살았지만, 외할아버지가 엄마 대학 1학년 때 돌아가시면서 갑자기 쫄딱 망했다는 표현이 딱 맞을 거야. 그래서 그 후로 외할아버지가 사업하면서 지은 빚을 갚아오느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었어. 그래서 엄마는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것 같아.


아빠 역시, 집에서 결혼을 재촉하긴 하지만, 엄마와 사귀고 있다고 말을 하면, 당장에 하라고 할 것이 틀림없으니 엄마의 연애를 숨기고 있었어. 그러니 엄마도 외할머니에게는 아빠와 연애하고 있는 것을 숨기고 오랜 연애를 하는 중이었어.


그러니 엄마가 얼마나 마음이 놀라고 무서웠을지.. 너는 짐작 할 수도 없었을거야.

그 당시에는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나이였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었기에, 더 떨렸던 것 같아.


'혹시 정말 임신이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테스트를 하고 나왔어.


엄마의 마음도 너무나 복잡하고 무서웠지만,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엄마보다도 더 긴장한 듯 보이는 아빠와 눈이 마주쳤어.


아빠에게 선명한 두줄이 보이는 작은 막대기를 보여주자, 아빠의 눈이 갑자기 커지면서 눈동자가 흔들리는 그 순간을 엄마는 기억해.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은 고요한 정적이 흘렀단다.





그날 엄마와 아빠에게는 그 정형외과 복도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기적의 장소인 것 같았어.

빗길 사고의 불행이 운명적인 '임신'이라는 선물로 바뀌어 지는 순간같았거든.


사랑하는 채영아, 너도 인생을 살다 보면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몰라 막막한 날이 생길 수 있어. 그럴 때마다 나에게 불행이 온다고 절망하기보다는, 엄마가 기적처럼 너를 만나게 된 것 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해 주면 좋겠어.



인생은 그렇게, 가장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가장 소중한 것을 선물하기도 한단다.

"인생은 참 알수가 없어요.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은 살만하고,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기적 같은 선물이 오기도 합니다."


-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1, 4회 양석형의 대사 중 -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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