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장의 육아일기
"어머니, 유치원 해누리반 교사예요.
오늘 초콩이 프로필 사진 잘 찍고 왔어요!
그런데 초콩이가 오늘 입고 온 빨간색 니트보다 가방 안에 챙겨 온 회색 니트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저희가 스튜디오에서 입어보고 회색 니트를 입고 찍기로 했어요.
스튜디오 벽이 밝은 회색이라 초콩이가 회색 니트를 입어도 잘 어울리더라고요.. 무엇보다 초콩이가 회색 니트를 입으니 너무 잘 어울렸고요!"
"엄마! 나는 회색이 좋다니까, 빨간색은 루돌프라서 싫어!!"
내 눈에는 아직도 아기 같던 초콩이의 유치원 졸업사진 및 프로필사진 촬영을 위해서 어떤 옷을 입을까 아침부터 초콩이와 의견 충돌이 있었다.
물론, 내 눈에도 회색이 예뻐 보이고 단정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미리 팁을 주신 것은 촬영하는 스튜디오 벽이 회색이니 참고하라고 하셨기에 같은 회색벽에 회색 니트보다는 확 눈을 사로잡는 빨간 니트가 잘 어울리겠다 싶은 것이다.
3년간의 유치원을 졸업하고 이제는 초등학생이 되는 초콩이의 프로필촬영과 졸업사진촬영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아마도 누나인 초롱이는 코로나시국이라 집합금지명령이 있던 때라 아이들이 스튜디오에 가서 촬영하는 것이 불가능했었다. 그래서 초롱이는 유치원 안의 적당한 곳에서 촬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어떤 옷이 무엇이 중요할까 싶지만, 왠지 이제 정말 초콩이가 졸업하고 나면 이 유치원에 대한 끈이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일정 하나하나, 행사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더 소중하게 다가온 것 같다.
어떤 행사건 타 유치원에 다니는 엄마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터라, 괜스레 어깨를 으쓱해보면서 아이들 프로필 사진을 모 스튜디오에 가서 찍는다고 하니 집에 있던 맨투맨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혀 보낼 수는 없다 생각했다.
"남편! 오늘 퇴근하고 바로 수지 롯데 몰에서 만나!"
"갑자기 왜?"
"초콩이 유치원에서 졸업사진이랑 프로필 사진 찍는데 면바지에 니트를 입어야 한데, 오늘 수지 롯데몰 가서 사려고!"
초롱이가 학원에서 늦게 오는 날을 골라서 초콩이와 함께 롯데몰로 향했다.
우리는 일단 유니클로로 향했고, 그곳에서 적당한 고무줄 면배기바지를 찾았다. 아이들은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아직 유치원생인 초콩이에게 단추와 지퍼가 있는 바지는 혼자 벗고 입기가 힘들어 고무줄 바지를 선호하는데, 유니클로에 내 눈에 쏙 들어온 바지가 있어서 바로 입어보기로 했다.
"초콩아, 이 바지 어때?"
평소에 누나와 달리 패션에 관심이 많은 초콩이도 단번에 오케이 했으니 이제 입어보고 사이즈만 결정하면 바지는 패스!
내년에도 입힐 것을 생각해서 130을 살까 고민했으나, 아무리 배기 청바지라고 해도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이라, 지금 예쁘게 입는 120 사이즈로 선택을 하고 우리는 자라 키즈 매장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역시 자라 키즈 매장에는 내 눈을 사로잡는 예쁜 옷들이 많았다. 유니클로가 가성비 좋은 옷이라면 자라는 트렌디함까지 갖춘 옷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끔 자라키즈 매장에서 시즌오프 세일을 할 때 아이들 사이즈를 맞추어 긴팔티며 반팔티를 자주 사곤 했다.
하지만, 최근 회사일도 바빠지면서 못 가보았더니 어느새 매장은 포근한 겨울옷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나마 예쁜 옷들은 사이즈가 대부분 빠져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여기에서 하나는 건져야 한다는 마음에 눈을 여기저기로 돌리다가 매장 가운데 놓여 있는 빨간색 루돌프 니트를 발견했다. 다행히 초콩이 사이즈가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초파, 이거 어때? 잘 어울리겠지? 초콩아 이거 예쁘지!"
"엄마! 나 이제 루돌프 안 입을 거야!"
"이거는 조금 아기 것 같지 않나? 이제 초등학교도 가는데?"
남편과 초콩이의 반응에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무슨 소리야! 초콩이는 아직 유치원인데 그리고 이런 빨간 니트가 겨울엔 딱이지, 얼마나 예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사실 내 눈은 다른 더 예쁜 니트는 없나 하면서 매장 곳곳을 훑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이거 입어보자!"
그렇게 하고 걸어가다가 발견한 회색 니트에 우리 모두의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어? 이거 사이즈가 있나????????? 있다 있어!!!!"
그렇게 두 개의 니트를 입어보니, 회색 니트는 베이지 배기 면바지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다만, 너무 딱 맞아서 한번 잘못 빨으면 확 줄어서 못 입게 될까 걱정이 되는 옷이었고, 입은 그 자체로 내 눈에는 고급스러움이 풍기는 옷이었다.
사실 자라키즈에서 아이들 옷이 고급스러우면 얼마나 고급스럽겠냐만, 그 순간 나는 초콩이에게 찰떡궁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빨간색 니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일단 둘 다 사가지고 온 다음에 하나를 선택하고 나머지 하나는 반품하기로 했던 것이다.
촬영 당일날 아침, 나는 초콩이에게 약간 여유 있는 빨간색 니트를 입혔다.
"엄마, 나 이거 안 입고 싶어!! 나는 회색이 좋단 말이야!"
"그러면 회색 니트 가방에 넣어줄 테니까, 선생님께 물어보고 회색으로 갈아입어도 괜찮아!"
그렇게 가방에 회색 니트를 넣고 보낸 하루,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역시 사람 눈은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으로 나의 억지에 쓴 미소를 지었다.
"그래, 회색이 훨씬 잘 어울리긴 했지.... 그럼 빨간색을 괜히 텍을 잘라버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