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마의 문화생활
"아들, 쪽팔리게 살지 말자!"
영화를 보고 나서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돌게 만드는 주인공 엄마의 한마디이다.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과연 나는 아이들이 보기에, 남편이 보기에 아니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나 자신에게 쪽팔리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회사에서도 나는 항상 나이에 직급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아이들 보기에 부끄러운 행동을 숨기고자 했던 것은 없었는지, 잠시 눈을 감고 반성해 보게 된다.
요 며칠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냘 해야 할 일을 다음날로 미루다, 주말에 하자라며 스스로 주말 찬스를 선언하고 즐겁게 웃는 영화를 보고 싶어서 선택한 영화였다.
여름부터 조정석 배우가 나오는 영화로 많이 홍보를 했었지만 아이들 육아로 좀처럼 보러 갈 시간이 없었다.
그 뒤 초파와 나는 우리 집 TV 통신사인 SKBB에서 영화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되지 않아서 넷플릭스에도 올라온 것을 확인하고 주말에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터라 조금 피곤하지만, 기분전환 겸 재미있고 유쾌한 영화를 보면서 잠들고 싶었기에 선택한 영화였다.
첫 시작은 나의 예상대로 웃음과 재미를 곳곳에서 즐길 수 있었다.
주인공인 파일럿 한정우는 공사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국내 3대 항공사에서 서로 스카우트를 할 정도로 유능한 파일럿이었다. 방송 출연을 통해 인기가 더 많아지고 인지도 높아진 한정우는 어느 회식자리에서 의도하지 않은 성차별 발언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상사가 던진 말로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고자 한 말이었지만, 성차별적인 말로 각인이 되어 그 현장을 녹음하여 제보한 여자 기장에 의해서 항공사에서 잘리게 된다.
그 이후, 부인의 이혼통보에 회사에서 잘려서 이혼을 하자고 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한정우는 자기가 주인공인 시점에서 모두를 바라보는 친절한 독불장군이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그 어느 항공사에서도 뽑아주지 않고, 그 역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하자 상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기장으로 재취업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동생의 신분으로 부기장으로 취업을 하는 것이었다. 사실 영화니까 가능한 것이긴 했지만, 이를 통해서 직장 내에서 알게 모르게 일어나는 성차별적인 부분을 유쾌하게 꼬집은 것 같았다.
나는 이 영화에서 밉상 기장인 어디에서건 여기장 혹은 여승무원에게 작업을 거는 후배였던 남자기장에게 한정미가 한 행동과 말들이 통쾌하게 생각되었다. 틈만 나면 작업을 거는 그에게 농담 같은 한방을 먹인 것도 유쾌하고 조정석만이 할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영화 속 위험한 순간에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 자기가 조종을 해야 한다는 말뿐인 허울인 장면에서 어쩔 줄 모르는 리더십 부재에서도 한정미가 나서서 승객들을 구한 사람은 한정우 아니 한정미였다. 아마 이 것은 여자 남자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경험에서 나오는 대처라고 생가한다.
그 이후 승객들을 무사히 구한 기장이라고 유명세를 타면서, 한정미는 CF 광고도 찍으면서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은 사는 듯 보였지만, 실상 진정 마음이 통하게 된 것처럼 보이는 여기장 선배에게도 속시원히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한정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게 되고, 어떻게 알릴 것인가가 궁금했다. 한정미 아니 한정우에게 용기를 준 사람은 바로 엄마였다.
결국, 다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해준 엄마의 한마디 "아들, 쪽팔리게 살지 말자!"에 주인공 한정미는 다시 한정우로 되돌아 올 큰 결심을 한다.
한정미가 소속되어 있는 한 에어와 한정우가 잘리기 전 항공사인 한국항공의 통합 경영 축하 자리에서 그는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을 쓸어내렸다. 역시 이 장면에서도 곳곳에 웃음 포인트가 있어서 재미있게 본 장면이다.
결론적으로 잃은 것은 더 많았겠지만, 한정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속 자신을 다시 찾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저 겉으로 보기에 빛이나 보였던 한정우란 사람은 실상은 가족의 일보다는 오로지 그 자신만을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누군가 부탁을 해도 어중간한 말로 선을 그으면서 그 어디에도 발을 담그지 않는 노련한 직장인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서 그는 이제야 가족의 삶이 눈에 들어오고, 아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아빠가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정미로 살 때 만난 멋진 여기장 '언니'와 커밍아웃 후, 남녀로 다시 만나게 되길 내심 기대했지만 그 장면은 열린 결말로 끝났다.
외국항공항에서 마주친 여기장과 외국에서 경비행기를 조종하고 삶을 즐기는 한정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게 된다.
나는 어떤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가금 남편의 마음, 아이들의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은 그저 내가 그들에게 바라는 모습을 억지로 보려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남들이 바라는 나와 내가 바라는 나는 다르다.
나도 그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그런 모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니 왠지 마음이 쓰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남편은 싫을 수도 있지만, 이제까지 별 말 하지 않고 지내왔기에 당연히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저 내가 좋아하기에 따라와 준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부드러움을 가장한 나의 독선이 미안해진다.
남편과 아이들에 나의 감정이나 의지의 필터를 빼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좀 더 잘 살펴보는 내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