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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LP판은 '라 밤바'

추억소환중

by 초마

"초파, 나 크리스마스선물로 LP 플레이어 사줘!"


"LP판도 없는데 그걸 사서 뭐하게!"


"요즘엔 LP플레이어에서 블루투스 스피커도 되는거 몰라?"






얼마전 잠이 오지 않아서 밀리 앱에서 가볍게 보려고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 라는 책을 보면서 나의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이 살포시 떠올랐다.


어릴적에는 늘 거실에 TV 옆에는 오디오세트가 있었다. 테이프와 라디오가 나오기도 하는 몇단을 쌓아 올린 것같은 오디오가 집집마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집에는 그것과 더불어 LP플레이어도 따로 있었다.

전자기기를 좋아하는 아빠는 지금 생각해보면 얼리어댑터였다. 나의 어릴적 우리집에는 일본 전자제품들이 참 많았다. 일년 열두달중 적어도 10개월은 일본으로 출장을 가 있던 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은 아빠가 가지고 올 선물에 마음이 설레이는 날이었다. 아빠는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이면 그 당시 최고인 '일제' 전자제품을 하나씩 선물로 가져 오셨다. 어느 날은 아이와 워크맨을 선물로 주셔서 친구들에게 어깨 으쓱 자랑을 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 아빠의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더블데크였다. 요즘에는 '그게 뭐야?'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적에는 음악은 라디오가 아니면 플레이어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막 사춘기가 된 나는 왠지 친구들과 어떤 가수의 노래가 좋고, 누군 팝송을 듣는다, 누구는 J POP을 듣는다고 하며 조잘대곤 했다. 때로는 구하기 어려운 테이프를 친구가 가지고 있으면 빌려서 공테이프에 복사를 하곤 했는데, 아빠가 선물해 준 더블데크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받기에 최고였다. 그 때는 테이프를 복사 한다고 해도 플레이어가 두개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를 틀어 놓고 녹음할 공 테이프의 버튼을 한번에 딱 눌러야 시간차가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녹음을 할 때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아야 하기에 누가 방문을 열고 부르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녹음을 해야 하는 일도 여러번 발생했다.


그런 우리들에게 더블데크란, 한쪽에서 테이프를 틀고 다른 하나에서는 녹음을 바로 할 수 있어서 너무나 편리한 기기였다. 게다가 라디오까지 들을 수 있으니 굳이 작은 플레이어로 듣지 않아도 되기에 난 책상위에 턱하니 올려놓고 뿌듯해 하기 일쑤였다. 친구들은 누구의 테이프를 빌려서 하나만 복사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하고, 나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면서 왠지 내가 그 테이프를 멋지게 만들어서 선물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다.


또, 항상 공테이프를 넣어두고 있다가 라디오에서 듣고 싶었던 노래가 나오면 바로 녹음을 하기에도 좋았기에 나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친구에게 선물로 만들어 주곤 했다.


그렇게 조금씩 음악을 알아가던 나에게 엄마는 나의 음악 세계를 더 넓혀주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엄마는 동생과 내가 어릴적부터 매번 출장으로 집에 없었던 아빠 대신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경험을 해 주셨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영화와 뮤지컬이었다. 엄마 역시 영화를 좋아했기에 우리는 적어도 한달에 한번 이상 주말에는 영화를 보곤 했다.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그리고 또 다시 보고 싶은 나의 음악 세계를 넓혀주었던 영화는 바로 '라 밤바'이다.



아직도 귓가에서 들리는 것 같은 'Oh! Da~ na, Oh! Da~ na' 인 그 영화는 로큰롤의 천재라고 불리었던 주인공 리치발랜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음악적 재능을 발휘해서 큰 성공을 이룬 리치는 탑승 공포증이 있었던 경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다가 추락사고로 어린 나이에 요절을 한다. 그 영화도 너무 충격이었지만, 영화속에서 나오는 노래들이 너무 좋아서 아직도 기억하는 라 밤바는 내가 기억하느 그 시절 제일 좋아했던 영화이다.



'바라바라바라밤바! 바라바라바라밤바!'



영화를 보고나서 내내 흥얼거리는 나를 보고, 엄마가 나에게 선물해 준 LP판은 지금도 너무나 그리운 앨범이다.


지금까지 몇번의 우여곡절을 거치고, 힘들었던 과거를 지내오면서 이미 어딘가로 사라졌지만, '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 책을 보면서 주인공의 아빠가 모았던 LP판, 중고 LP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의 잊혀졌던 기억이 모락모락 다시 피어올랐다.


이제 막 사춘기가 되면서 나의 방을 가지고 그 방 안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싶었던 나는, 아직도 LP플레이어를 틀었을 때 시작되는 그 작은 소음이 기억난다.


'지지지직....'



LP플레이어의 핀이 LP판에 올려져서 돌아가면서 음악이 나오기 전에 나오는 그 작은 노이즈부터 내 머리속에서 영화가 파노라마처럼 흘러나왔다.


그 시간의 사춘기소녀로 돌아간 내 방,


햇살이 간유리의 창을 통해서 들어오던 공기속와 어우러지는 그 음악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마치 내 방의 포근한 공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음악 소리를 반긴다.


'바라바라바라밤바! 바라바라바라밤바!'


마치 책 속에서의 풍진동의 이상한 LP가게도 내가 느꼈던 그 시간의 공기, 그리고 음악이 사람들의 귓가로 흘러들어간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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