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는 주관적이라 피해 인정이 안된다?

[불난 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 7화

by 조서경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2024년 10월 19일, 집 공사를 마치고 입주할 때도 마음이 홀가분하지는 않았다. 이미 여러 가지 피해를 겪었고, 내 살림살이가 온전할까? 매우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가재도구 청소 업체를 섭외해 이사까지 맡겼다. 약품을 써서 닦을 수 있는 것은 닦고, 씻을 수 있는 것은 씻었다.


그런데 며칠이나 지났을까. 잠에서 깨는 순간 코가 아팠다. 코 속을 날카로운 것으로 쿡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먼저, 그리고 느껴지는 냄새. 그 매캐함은 침대 옆에 둔 세 칸짜리 작은 수납장에서 나고 있었고, 여러 날에 걸쳐 확인한 결과 가구 전체가 같은 상황인 것을 알았다. 책장, 수납장, 침대, 책상, 의자까지 대부분 원목 가구였다. 겉보기에 아무런 변형이 없고, 뭐가 묻어있는 것도 아닌데 냄새만 난다. 청소업체에 연락해 AS를 받고, 약품을 얻어 나도 좀 닦아보았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았다.


“손해사정사님 가구 봐야 해서 일단 가구를 다 들여놨거든요. 그런데 매캐한 냄새가 나요”


내 말에 손해사정사는 '냄새는 주관적이라 피해 인정이 어렵다'는 취재의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냄새가 주관적이라는 건 무슨 소리지?


“냄새가 주관적이라는 게 무슨 말씀이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그 가구에서 냄새가 안 난다고 할 수 있죠”

“그 어떤 사람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내가 사용할 물건인데”

“다른 사람들은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피해자분이 특별히 예민하셔서 그럴 수도 있고”


손해사정사는 냄새는 주관적이라 피해 인정이 어려울 수 있고, 그래서 보상 역시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내가 냄새를 호소하는 것이 남들보다 예민해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민하다는 말은 내 진술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듯 느껴졌다


그런데 가구뿐 아니라 옷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돌아와서 일반 세탁소에서 물세탁한 옷과 침구류, 화재세탁업체에 맡긴 옷을 찾았는데 역시 말끔하지 않았다. 옷장도 사용할 수 없어서 베란다에 걸어두었는데, 지인이 와서 보고 선풍기로 바람을 치면 좀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럼 한번 해볼까. 선풍기 바람을 치자 이번에는 냄새가 바람 따라 베란다와 집안을 다 채웠다.


보험사 입장은 사람이 느끼는 '후각 반응'에 개인차가 있고, 감각과 민감도, 후각 장애, 심리적 요소가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코로 맡은 느낌'으로는 보상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는 냄새를 알아챌 수도 있고, 누군가는 모를 수도 있다. 그러면 냄새는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경찰은 못 찾고 탐색견이 마약을 찾아냈다면 그 현장에 마약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주관적인 차이가 있다면 예민한 쪽에 기준을 둬야 하는 거 아닌가. 감각이 둔해서 냄새를 인지하지 못한다 해도 그 냄새로 인한 피해는 입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손해사정사에게 현장에 와서 피해 조사를 할 것을 요청했다. 두 명의 손해사정사가 시간 차를 두고 각각 방문했는데, 말의 내용은 거의 같았다.


“이 가구에서 냄새가 난다는 건가요? 편백 냄새만 나는데요. 편백 냄새를 좋아하시나 봐요"

“난 문자를 보고 엄청 큰일이 난 줄 알았네요. 이 멀쩡한 옷을 버린다고요?”

“평상시에도 많이 예민한 편이신가요?"


그런 순간에 '가스라이팅'이란 단어를 떠올리는 건 나뿐일까?


가스라이팅 : 반복되는 메시지를 통해 심리적 조작을 하고 타인에게 스스로에 대해 의심하고 현실감과 판단력

을 잃게 만들어 그 사람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


'냄새는 주관적이다', '피해자가 예민하다', '그을음 냄새는 전혀 안 난다'


반복되는 말을 듣자 나는 실제로 나만 냄새를 맡고 있는 건지 내 감각을 의심하는 순간들이 생겼다. 그건 아주 좁은 쳇바퀴에 나를 밀어 넣는 느낌이었다. 뱅뱅 돌고, 뱅뱅 돌고, 또 뱅뱅 돌고 제자리. 괴로움이 컸다.


사실 이즈음 나는 대응을 그만두려고 했었다. 어떻게 해야 내 코에 맡아지는 냄새를 알려줄 수 있을까. 그들이 둔해서 냄새를 못 맡을 수도 있지만, 솔직히 냄새 안 난다고 해도 그만 아닌가.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냥 다 버리고 가구 몇 개 사고, 옷을 한꺼번에 살 건 없으니까 하나씩 입을 것만 사고.... 그렇게 끝내고 싶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자 나는 또 가구에 약품을 뿌리고 닦고 있었다. 보상도 안 된다는데 해보고 안 되면 버리자.


후각이 주관적이더라도 냄새의 원인이 있을 것이니 그 원인을 찾아야 했다. 또한 '입증'이라는 것은 반드시 100% 과학적인 확정만이 아니라, 합리적이거나 '상당한 근거'가 있으면 인정되는 것이라 알고 있었다. '냄새 가 주관적'이라는 말이 피해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1. 냄새가 바람에 퍼진다. 무언가가 바람에 날린다.


화재 세탁한 옷을 널어놓고 선풍기 바람을 치자 냄새가 베란다와 집안으로 퍼졌다. 냄새가 퍼진다는 것은 바람에 무엇인가가 날린다는 뜻이었다.


2. 흡착되지 않는 재질에서는 그나마 제거가 가능하다.


가구를 닦다 보니 같은 가구라도 도장을 한 것, 즉 바니쉬나 왁스, 기름을 많이 칠한 가구에서는 냄새가 가셨다. 도장하지 않은 원목은 그대로다. 그러니까 닦일 수 있는 재질은 살릴 수 있지만, 스며드는 재질이 복구가 안 되는 거다. 예를 들어 싱크대의 문은 닦이고, 편백장롱은 살릴 수 없다.


3. 여기저기 묻고 차츰차츰 번진다.


이즈음 내가 알아낸 또 하나는 이 냄새가 번진다는 것이다. 냄새나는 옷을 캐리어에 넣으면 옷을 꺼낸 후에 캐리어에서도 냄새가 났고, 차에 실으면 옷을 내린 다음에 차에서도 냄새가 났다. 무엇인가가 묻는다는 것이다.


4. 이것은 먼지다.


싱크대 경첩, 스피커 내부에 쌓인 검은 먼지를 보고 이 물질이 먼지임을 알았다. 먼지는 날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이곳저곳에 내려앉는다.


5. 불완전연소 시에 생성된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붙은 초미세먼지로 추정


여러 전문가들과 통화를 하며 유기물이 불완전연소될 때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발생하는데, 매캐한 냄새가 나며 끈쩍거리는 성질이 있어서 먼지에 잘 흡착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정확한 성분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다환방향족탄화수소에 의한 피해임을 의심하게 되었다.


6. 화재 분진이 덮인 곳에 습도가 높아지면서 복구 불가능한 피해 발생 추정


내 피해 물품들은 신체에 유해한 화재 분진이 묻은 상태에서 화재 소방수로 인해 습도가 높아지면서 젖어들었고 단단히 흡착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한 달 남짓 그 이불을 덮고 옷을 입었고, 그 이후에는 세탁을 맡기고, 가구를 닦고, 이리저리 옮기며 접촉을 계속했다. 그 때문인지 병원 신세를 더 졌다. 옷을 만질 때 손발, 눈, 코, 혀가 따가웠고, 발진이 났으며 후두염과 비염은 더 심해졌다.


7. 매캐한 냄새에 대한 증언들

보험사는 여전히 나의 피해를 부정하고 있었지만 한편,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돕기도 했다. 비교적 30분 정도 집에 머물며, 물건에 직접 손을 대고 뒤적뒤적하는 경우에는 알아챘다. 그리고 자신의 신체에 감지되는 자극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고 들어오면 엄마는 알아챌 수 있는 정도의 불냄새, 약하지만 분명한 그을음 냄새"

"이 장롱은 얼큰해서 코를 들 수 없네요. 뒤쪽은 더 해요"

"옷 선별 작업할 때 매캐한 냄새가 나고 코가 아프고 눈물이 나서 마스크 쓰고 작업했습니다."


8. 왜 피해자만 피해를 입증해야 하나요?


나는 2025년 1월 6일 제출한 '화재 피해 청구서 1'에 이렇게 적었다.


<같은 상황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이 주관이라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주관임. 내가 나의 주관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노력한 것처럼, 보험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주관을 입증하기 바람>


의료사고 피해자를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답답함과 억울함, 어려움이 이런 것이었겠지. 피해를 피해자에게 입증하라는 것, 그 분야에 아무 전문 지식이 없는 피해자가 어떻게 거대한 조직을 상대해서 피해를 입증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요구할 것이면 하다못해 피해가 아니라는 반대입증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참 다들 주관적이라는 말을, 입증하라는 말을 너무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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