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 6화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이 시리즈를 쓰면서 한 편을 쓰고 나면 지인에게 먼저 보냈다. 내 아름다운 일상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고 피해자로서 이해관계가 있으므로, 내가 과도한 자기주장을 하지는 않는지, 간혹 쓸데없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는 않는지, 혹은 타인에게 너무 험한 말을 하지는 않았는지 점검이 필요했다.
“걸리는 건 없는데, 글 내용이 좀 무거우니까 중간중간 감성적인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어. 예를 들어 의사가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런 거 있잖아.”
6편에 대한 피드백을 듣자 그만 웃음이 났다 그리고 왜 웃음이 났는지 말해주었다.
책을 보관소로 보내고 임시 숙소를 정하고 나니 오후가 되었다. 그동안 여기저기 통증을 느꼈지만 병원 갈 시간이 없었는데, 그날은 진료를 받아야 해서 집 앞에 자주 가는 내과에 들렀다. 한동안 정기적으로 피 검사하고 관리를 받으면서 비타민D 주사도 맞고 약도 받았던 병원이다.
“목에 뭐가 걸린 것 같고 통증이 있어요”
“아 해보세요. 목에 염증이 있고, 비염도 왔네요”
“제가 사는 그 윗집에 불이 나서요. 제가 그 아랫집인데 피해받은 집에 너무 오래 있어서.....”
나는 그 순간 의사가 내 말을 끊었다고 느꼈다.
“아 저기? 불나는 거 여기서도 보였는데, 연기는 위로 올라가는데 아랫집도 피해가 있어요?”
나는 의사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증상의 원인에 대해 말하려는데 아예 무슨 피해가 있냐고 하니 말문이 탁 막혔다. 의사의 눈빛과 목소리에서 환자를 대하는 친절함과 따뜻함이 걷혔다고 느꼈다. 의사에게 위로받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누군가가 내 편이 아니라는 걸 갑자기 확인한 느낌. 그런 것이었다.
그런 경험은 몇 번 더 이어져서, 나중에는 병원 가는 것이 좀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피해 조사를 위해 방문한 손해사정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병원에서는 증상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뭐라고 한다기보다, 의사들은 대체로 화재 사고 얘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게 증상의 원인을 화재에서만 찾을 수는 없으니까 그럴 거예요”
다른 진료와 마찬가지로 사고로 인한 신체 손상도 병원 진료를 받고 나중에 보상 청구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의사의 진단서다. 그런데 의사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순전히 화재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증상과 사고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적을 수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화재 연기로 인해 비염과 후두염이 생김> 이렇게는 못쓴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예전에 없던 증상이 화재 이후 생겼으니, 인과 관계를 적어줄 것을 바란다. 보험사는 진단서를 보고 신체손상 피해를 확인하니까. 이 입장 차로 인해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뭔가 법적으로 얽히는 냉랭한 관계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여러 병원의 진료를 받는 동안 내 증상이 소홀히 취급되고 제대로 진료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고통이겠지만 나는 이때 많은 재난 피해자, 참사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떠올랐다. 가족을 잃어서 슬프고, 몸을 다쳐 고통스럽고, 이렇게 된 정확한 이유를 알아야겠다고 호소하는데, 보상금이라는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그 억울함과 답답함, 절망과 무력감, 그리고 분노가 느껴졌다.
팔에 난 두드러기로 방문한 피부과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두드러기가 팔, 얼굴, 손등, 다리, 발등 이런 식으로 온몸에 차례대로 나서 몇 달을 계속 진료를 받으니 몇 마디 말을 해주었다.
"이게 지가 나고 싶은 대로 여기저기 날만큼 나다가 사라져요"
"얼마나 걸려요?"
"오래 걸려요"
그리고 화재 세탁해 온 옷을 입었다가 다시 두드러기가 나서 갔을 때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이건 아토피예요. 몸에 아직 이런 게 있어서 밖에 있는 물질에 반응하는 거예요"
"언제까지요?"
"몸에서 다 빠져야죠"
그러니 만약 의사가 평소 같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주눅 들지 말고, 필요한 말은 하면서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꾸준히 병원에 다녀야 한다. 의사가 적는 진료기록에는 의사의 의견뿐 아니라 환자의 말이 기록되니 상세히 말하는 게 좋다. 화재 피해 상황, 그 후에 생긴 신체 손상, 현재의 통증, 이전 나의 건강 상태, 화재와 신체손상의 연관성에 대한 내 생각과 판단.
그리고 가능하면 그날 초진기록지를 확인하는 게 좋다. 의사의 성향에 따라 어떤 이는 줄글로 환자의 말을 다 기록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연기’ ‘가려움’ 이런 식으로 단어만 적기고 하고, 어떤 이는 아예 사고 관련 단어는 적지 않기도 한다. 그 때문에 확인하고 늦기 전에 자세히 적어달라고 해야 한다. 의사가 의견을 적기 꺼리면 내가 한 말이라도 그대로 적어달라고 부탁하는 게 좋다.
그러니 초진기록지에 잘 적힐 수 있도록 가급적이면 시간 순으로, 구체적으로 말을 하고, 아예 처음부터 환자의 말을 잘 기록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다.
진단서를 받으면 증상과 관련된 질병코드가 적혀있는지, 진단 내용은 뭐라 적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간혹 ‘정체불명의 OOO’ ‘상세원인을 알 수 없는 OOO’ 이렇게만 적히기 때문에 이때도 즉시 오류를 수정하고, 비고란에라도 환자의 호소 내용을 적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좋다.
나는 11월에 정형외과 의사가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로 보인다며 바로 위층의 신경정신과를 추천해서 그날부터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석 달 정도 받았고, 그 후에는 공부 중인 명상을 하며 스트레스 관리를 했다. 지속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의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자료와 의견에 의하면 정신건강과 장기 관찰 기록은 재난 후 스트레스 등과의 연관 입증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보험사에는 초진 기록지, 진단서, 진료 영수증과 상세 내역을 제출하면 되는데, 보험사마다 요구하는 서류가 다를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해서 발급받는 편이 좋겠다. 그리고 실손보험과 신체손상 배·보상은 중복 처리되니 실손보험이 있다면 먼저 청구할 수 있다.
이 얘기를 왜 이리 길게 쓰고 있을까?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건데, 이상하게 보험금 관련된 일은 요구하기가 힘들었다. 내 친구 한 명은 교통사고 보상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보험금 청구할 시간도 없어 못 받았다'라는 어떤 교수가 부러웠다고 한다. 나도 초진 기록지나 진단서를 받아 읽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주차장까지 갔다가 다시 병원에 가서 번호표 뽑고 기다렸다 말하기도 했다. 손해사정사에게 해야 할 전화도 몇 번씩 미루고, 피해 청구서를 써야 하는데 시작을 못 하고 몇 주를 그냥 보내기도 했다.
권리가 저절로 지켜지면 좋겠는데 그렇게는 안 된다. 당연한 것도 반드시 요구해야 하고, 권리를 지키려는 행동이 좀 지나치거나 치사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니 자꾸 심정이 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미리 인지하고, 이런 장애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가면 낫지 않을까.
말 한 줄, 기록 한 줄이 나중에 권리를 지켜줄 수 있다. 내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증거는 무기, 진료는 방패, 변호사는 갑옷이라고 한다. 그러니 울지 말고 증거를 모으자. 그리고 증거 때문만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손상받은 신체는 끝까지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
본 글은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관련 서류와 자료(증빙)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적, 과학적 내용은 개인의 경험과 참고 자료 및 제삼자의 의견을 종합한 개인적 판단이며, 전문적 검증이나 수치화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본 게시물은 고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안은 금융감독원에 정식 접수되어 조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접수번호: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