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할 결심

[불난 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 8화

by 조서경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여보세요? OO 소방서죠? 여기는 8월 화재로 피해 본 집인데요. 당시 상황을 좀 알고 싶어서요."


2024년 11월 초에 처음으로 관할 소방서에 전화했다. 사실 화재 피해로 고생하면서도 뭘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 상황을 솔직히 있는 그대로 말하면 반영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얘기는 상황을 알리고, 힘들다고 하소연을 한 것에 불과했다. 그동안 말로 했던 것을 보험사에 제출할 문서로 만들어야 했다. 그 첫 번째 작업으로 소방서에 전화한 것이다.


1. 관할 소방서에 문의하기

관할 소방서에 문의하라는 조언은 한 연구소 연구원에게 들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화재 진압도, 화재 조사도 관할 소방서에서 했고, 화재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화재 물질에 의한 신체 손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소방관이다.


첫 통화를 시작으로 나는 몇 차례 소방관에게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화재 피해를 가장 안타까워하고 피해자의 호소를 잘 들어주고, 도움이 돼주려는 이들이 소방관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 피해 물품의 냄새에 대해 말했을 때도 단번에 대답해 주었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건 화재 분진 묻은 거고, 그거 잘 안 떨어져요. 몸에 안 좋으니까 닦아서 쓰고, 빨아서 쓰고 그러지 마시고 다 버리세요."


진즉에 소방서에 물어볼걸.

이렇게 간단하고 명확하게 얘기해 주는걸.


나는 묻다가 묻다가 별 걸 다 물었다.


"소방관님들은 어느 병원 다니세요?"


그 대화에서 소방공무원을 주 대상으로 하는 국립소방병원이 2026년 개원 예정이며, 이 병원에서 소방관의 신체 질병 및 정신 건강을 위한 특화된 진료를 제공할 예정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말을 할 때 소방관은 드디어 소방 병원이 생긴다며 기뻐했는데, 나는 그런 병원이 이제야 생긴다는 게 놀랍기도 했다. 소방관이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는데 전문병원이 이제 문을 여나. 아무튼 이제라도...... 다행이다 싶었다. 이런 병원은 일반 화재 피해자들도 뭘 문의하거나 진료 의뢰를 하거나, 하다못해 자료라도 찾아볼 수 있을 테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화재 피해를 보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보험사나 손해사정사에게 묻지 말고, 관할 소방서에 먼저 물을 것을 권한다. 막상 피해를 입고 보니 내 주변에는 화재나 보험에 대해서 아는 이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답답하니 손해사정사에게 묻고는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즈음 나는 손해사정사에 대해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는 것이니 열받지 말고 나는 피해자의 일을 하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니 바쁜 소방관님들에겐 죄송한 말이지만 소방서에 먼저 묻는 게 좋겠다.


2. '화재현장 조사서' 확인하기

관할 소방서 화재조사관은 피해자는 화재현장 조사서를 볼 수 있다며 정보공개를 청구하라고 알려줬다. 소방서를 방문하여 신청서를 제출했고, 다음 날 발화 세대의 개인정보는 지워진 '화재현장 조사서'를 받았다. 화재현장 조사서에는 발화지점과 화재 원인, 진행 과정, 목격자 진술, 기온과 풍향 등이 기록돼 있었다.


'화재현장 조사서'에 의하면 화재는 베란다에 두고 사용 중이던 김치냉장고, 뒷면 PCB 기판의 설계상 결함에 의한 발열로부터 시작됐다. 2000년대 초반 제품이었고 제조사는 설계상 결함이 있는 부분을 교체하는 리콜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발화 세대는 수리받거나 리콜받은 이력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목격자는 윗집과 아랫집의 발코니 부근에서 연기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발화 초기 연기는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마침 바람은 북동풍으로 집 쪽을 향해 불고 있었다. 화재 연기가 베란다 창을 통해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조건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날 욕실에서 샤워 중에 독한 냄새를 맡고 구역질이 났고, 베란다 안전가드에 떨어져 있는 화재 물질을 목격했었다.


화재 당시 상황과 발화 원인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발화 책임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경감률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치냉장고에서 발화한 것이니 화재 책임은 경감되고, 이 경감률이 피해자의 보상금에 적용된다. 그리고 책임 비율(경감율)의 적용 여부가 보상금 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구체적인 경감률은 사건, 약관, 심사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무래도 높은 경감률을 적용되면 배상금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으니 발화세대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좋겠다.


3. 물질 분석 가능성을 타진하다.

마침내 개인이 물질 분석을 의뢰할 수 있는 기관을 찾았고, 이 기관 연구원과 몇 차례 통화하면서 화재 후 매캐한 냄새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 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나는 무조건 제습기와 공기청정기와 그 외 몇 가지를 싸 들고 기관을 찾아갔다. 나와 몇 번 통화를 나눴던 연구원은 난감한 표정이었으나 회의실에 앉아 오랫동안 나와 대화를 나눴다. 샘플링 검사, 비용, 성공 가능성에 대해 실무적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화재 피해 본 분들이 많이들 오세요. 얼마나 답답하면 이것저것 들고 오시겠어요?"


연구원은 공기청정기나 제습기의 필터보다는 냄새나는 가구, 옷, 책이 분석용으로는 낫다고 했다. 매캐한 냄새를 내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는 물품 표면에 흡착되어 장기간 잔존할 수 있으며, 현재 냄새가 난다면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군데를 샘플링을 해야 하며 분석 비용이 꽤 비싸다는 것, 그리고 분석 결과지가 나올 뿐 그 결과를 사고와 연관시켜 해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전문 기관을 통해 물질 분석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하나의 샘플에서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또 다른 샘플, 또 다른 샘플 이렇게 분석을 할 수는 없었다.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온다 해도 이것이 이번 화재 사고와 연관 있다는 것은 분석 기관이 아닌 피해자가 입증해야 한다. 비용도 만만치가 않고, 여기 매달릴 시간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입증의 굴레'에 빠진다면 헤어나지 못할 듯했다.


만약 처음부터 피해를 인지하고 보상 협상을 위해 물질 분석을 염두에 두었다면 어땠을까. 알맞은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와 함께 피해 물품을 보관하고 샘플을 채취하고 분석하고, 사고와의 연관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는 피해를 인지 못했고, 화재 연기와 소방수로 인한 침습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몇 주 후 피해가 급증한 것이고 눈으로는 확인되지 않아서 물질 분석을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분석 결과가 있다면 다른 증거의 신뢰도를 높여줄 수 있기 때문에 가능성을 남겨두기로 했다. 그래서 개인보험 보상이 결정된 직후까지도 피해 의류 전체와 책 전권을 보관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쉽게 분석할 수 있는 중요 증거가 이전에 이미 훼손됐다는 점이었다.


4. 보험 보상 기준 확인하기

이 단락은 내가 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1화에서 이미 내가 생활적인 면에서 서툴다는 것을 고백했는데, 이런 면에서 그렇다. 나는 보험을 청구할 때 내가 관찰해서 알아낸 피해 사실만 길게 적었지, 내가 가진 보험의 약관이나 특약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나는 발화세대 보험에 청구하지 않고 내 개인보험에 먼저 청구하기로 했다. 그러면 개인보험에서 피해자에게 보상을 한 뒤 발화세대 보험에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한다. 이렇게 한 이유는 발화세대 보험 측에서 '우선 개인보험에서 받고 나머지를 우리와 얘기하자'라고 하며 원활히 소통이 안 됐기 때문이다. 내 개인보험은 내가 가입자라 그런지 말하기가 더 수월했다. 나중에 금융감독원에 전화했을 때 '왜 다른 집에 불이 나 피해를 입었는데 자기보험을 손을 대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내가 잘못한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또 시간이 흘러 발화세대와 배보상 논의가 난관에 부딪히다 보니 일부 피해라도 개인보험과 협상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은 청구하기 전에 내가 어떤 보험에 어떤 조건으로 가입했는지 약관과 특약을 잘 살펴봐야 한다. 보험은 청구한 금액을 다 보상하지 않고 감가를 한다. 가재도구의 경우 1년에 10% 정도 감가하는데 내 가재도구는 3년 전에 바꿨기 때문에 30% 감가한 금액에 손해율을 적용시켜서 생각보다 낮은 금액이 최초 보상액으로 제시됐다. 그래서 보상액을 두고도 몇 차례 협상을 진행했다.


일반적인 내용은 전달하는데 한계도 있고 오류도 있을 수 있으니, '한국화재보험협회 웹진'이나 기타 화재보험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찾아 확인하면 좋겠다.

5. 나의 기록들 -문자, 통화 기록, 사진, 영상, 진료기록, 영수증

이제 남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록이었는데, 이것이 가장 좋은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날짜별로 화재 일지를 만들기로 하고 기록을 정리했다. 날짜별로 진행 상황이 흐름이 있고 일관성이 있었다.


○ 손해사정사와 주고받은 문자와 카톡 대화 내용, 화재에 대해 소통한 지인들과의 대화 내용을 모두 캡처해 서 내용별, 날짜별로 묶었다. 냄새와 관련된 것, 신체 손상과 관련된 것 등으로 따로 묶되 날짜별로 정리했

다.


○ 사진과 동영상 역시 내용별, 날짜별로 분류하였다.


○ 통화 녹음을 한글로 옮기기 위해 핸드폰에 유료 변환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하였다. 이런 게 없었다면 일일이 다 받아 적어야 했겠지? 방송 제작 과정에 '프리뷰'라는 것이 있는데 모든 촬영 내용을 받아 적는 것이다. 안 해본 일은 아니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통화 녹음 파일을 프로그램에 옮기면 한글로 변환시켜 준다. 오타를 잡고, 증거로 제출할 부분에 밑줄을 그어 저장하면 끝. 개발자에게 감사!


○ 통화 당사자간의 녹음은 원칙적으로 불법이 아니다. 즉 대화 당사자와 상대방의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타인 간의 대화를 일방적으로 녹음하거나, 녹음한 내용을 타인에게 전달하여 명예훼손 등 위법행위를 하는 것이다. 다만 당사자 본인이 포함된 통화 녹음이라 할지라도 외부 공개, 배포 시에는 '음성권과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라고 판단한 바 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2021.1.21 선고 2020나 47963 판결/ 증거조사센터 사이트에서 인용함) 또한 합법적으로 녹음했다 하더라고 신고 등의 목적이 아닌 SNS나 다수에게 공개하면 명예훼손에 해당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 병원에서 받은 초진 기록과 진단서는 중요하다. 내 건강이 화재로 인해 훼손된 것을 입증할 수 있다. 또한 이전의 병력을 문제 삼을 수 있으니 필요하다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이전의 병원 진료 기록을 발급받을 수 있다.


6. 피해 물품 구매 영수증 챙기기

○ 피해 물품의 보상 청구를 위해서 영수증을 챙겼다. 피해 보상 산정할 때 감가가 적용되기 때문에 언제 얼마에 구입을 했느냐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나는 주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했기 때문에 쇼핑몰에서 5년 치의 영수증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선물 받거나, 해외여행 중에 구매했거나, 5년 전에 구매한 물품은 영수증이 없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비슷한 물품을 찾아서 캡처하고 내가 구입한 시기를 적었다.



7. 피해 내용 기록하기

○ 일기를 쓰듯 내 피해내용을 모두 적어 내려갔다. 직접 피해를 입은 분들은 피해를 입증하는데 좀 더 수월할까.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잘 모르겠다. 내 경우는 불에 의해 타거나 물에 젖은 피해가 아니고 그야말로 냄새라는 간접피해였고, 세탁 등 복구 노력을 했지만 되지 않았기에 이토록 복잡한 사연이 탄생한 것이다.


○ 이렇게 정리를 하다 보니 아쉬운 점이 있었다. 왜 피해를 보존하지 않고 복구하려 들었을까. 처음부터 피해 자료를 보존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면 더 많은 자료가 남았을 텐데. 피해는 복구하지 말고, 보존하는 게 좋다. 아쉽지만 별수 없지, 이 정도 증거와 기록을 가지고 보험사에 내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본 글은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관련 서류와 자료(증빙)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적, 과학적 내용은 개인의 경험과 참고 자료 및 제삼자의 의견을 종합한 개인적 판단이며, 전문적 검증이나 수치화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본 게시물은 고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안은 금융감독원에 정식 접수되어 조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접수번호: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