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 10화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2024년 12월 14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 나에게는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화재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 날. 세탁 건조기의 신박한 쓰임새를 알아버린 날. 코로만 느껴지던 매캐함을 눈으로 확인한 날. 드디어 피해 청구서를 쓸 수 있게 된 날. 10화는 화재 초기부터 12월 14일까지의 옷에 대한 기록이다.
“이거 화재 세탁하면 다 괜찮아지나요?”
2024년 9월, 화재 세탁업소에서 세탁물을 수거하러 왔을 때 물었다. ‘화재 세탁’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화재 세탁 중에는 약품을 사용하는 방법과 흔들어서 분진을 털어내는 방식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세탁업체 관계자는 그을음이 묻은 옷들도 강한 바람으로 분진 제거하고 드라이 세탁을 하면 대체로는 복구가 된다고 대답했다.
물빨래하는 의류와 침구류는 일반 세탁소에 맡겼다. 이틀 뒤 점주로부터 검수를 마쳤으니, 결제도 할 겸 한번 들르라는 전화가 왔다. 갔더니 옷에서 매캐한 냄새가 난다는 확인서를 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화재 피해 본 옷을 들고 세탁소 들어오면 냄새가 콱 나서 금방 알거든요. 저 집 불났구나. 그런데 고객님 옷은 안 그래서 몰랐는데, 뒤적뒤적하다 보니까 매캐하고, 눈 아프고 그러더라고요"
화재가 일어났으니 피해 세대에서 옷과 침구류는 젖을 수도 있고, 냄새가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세탁하기 전이니까. 세탁을 해서 복구되면 사용할 수 있겠지. 세탁소 관계자들도 세탁하면 대체로 복구되고, 다 버릴 수는 없으니 그렇게 해서 입는다고 말해줬다. 그래서 세탁을 맡길 때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옷들은 복구되지 않았다.
화재 세탁소에서 온 옷을 처음 입었던 건 11월 초였다. 그동안에는 다 새로 사 입었었는데,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간절기 초록색 코트를 꺼내 입고 문경 수업을 갔다. 가다가.... 운전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코로 솔솔솔 솔~ 매캐한 냄새가 들어왔고 눈은 뜨기 힘들 정도로 따갑고 눈물이 났다.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겨우겨우 정신을 붙잡고 휴게소까지 가 옷을 벗어던졌다. 나는 이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뭔가를 계속하고 있는데,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다음날, 세탁업체에서 AS를 위해 수거할 테니 며칠 기다려달라는 것을 마음이 급해 차에 싣고 가 직접 맡겼다. 그런데 며칠 후 받은 옷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눈과 코에 자극을 주는 매캐한 냄새는 가셨으나 탄내가 남아 있었다. 매캐한 냄새 후에는 묵직한 탄내가 난다는 것을 그 후에도 몇 번 경험했다. 물론 왜 그러한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능력은 없다.
두 명의 손해사정사에게 옷의 상태에 대해 말했을 때, 두 번이나 세탁을 했으면 전손 처리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약품을 쓰는 업체를 찾아 한번 더 옷을 맡겼다. 두 번째는 세탁비 보상도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한번 더 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내 옷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3년 전에 옷을 다 다시 샀기 때문이다. 나이도 먹고, 살도 찌고, 강연이나 수업을 할 때 필요한 옷들도 있고, 게 중에는 80살까지 입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산 옷도 있었다. 그리고 옷을 구입하는 과정이 즐겁지 않다. 다 일이고, 그 시간도 만만하게 아니라서 어떻게든 복구해서 입고 싶었다. 그러나 세 번째 화재 세탁에서도 냄새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예 없어지지는 않았다.
뿐인가. 차에 옷을 싣고 다녔더니 차에서도 매운 내가 났다. 옷을 옮길 때 박스가 부족해서 큰 시장바구니에 담았더니 거기서도 먼지가 날린 것이다. 차를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매워서 스팀 청소를 했다. 스팀 청소 기사님도 차에서 매캐한 냄새를 확인했다.
“이리 와보세요, 이리 와보세요. 이거 처음에는 무슨 냄새가 난다고 하시나 모르겠더니 여기 뒷좌석 철거할 때요. 이거 탁 뜯으니까, 냄새가 콱 나던데요, 천장 쪽도 청소할 때 눈이 너무 아프고. 냄새라고 말하기보다는 매운 기운? 매운 기운이라고 해야겠네요. 와 나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이래저래 돈만 썼다. 내가 너무 속상해하니까 스팀 청소 기사님이 하는 말.
“차 6년 탔으면 스팀 청소 한번 할 때도 됐어요. 그냥 화재 사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위해 스팀 청소 한번 했다 생각하세요”
그 당시 나는 이미 벽에서 탄 냄새가 나서 편백오일 묻힌 헝겊으로 벽을 청소하는 중이었다.(9화)이 지독한 물질과 냄새는 한 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도 그럴 것이어서 스팀 청소 후에도 늘 창을 조금 열어놨고, 운전하기 전에 미리 내려가 3% 편백수를 왕창 분무해 놓고 환기한 후 차를 탔다. 목적지에 내려서도 또 왕창 분무하고 창을 열어놓고 일하러 갔다. 차까지 버리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이즈음 나는 매캐한 물질의 정체를 알아가고 있었다. '바람에 날리고, 여기저기 내려앉고, 그래서 널리 널리 퍼져가는 물질, 초미세먼지다. (7화) 그냥 초미세먼지가 아니라, 불완전연소 될 때 나오는 부산물로 매캐한 냄새의 주범이며 끈적거리며 잘 들러붙는 성질이 있는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붙은 초미세먼지.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붙은 초미세먼지가 붙은 옷, 책, 가구. 그래서 매캐한 냄새가 나는 것이다.'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먼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내 코에 맡아지는 매캐함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던 중 12월 중순의 어느 날, 이날은 자격증 면접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정신이 너무 없었는지 미처 제대로 된 겨울옷을 준비하지 못했다. 별수 없이 세 번 화재 세탁을 한 옷 중에서 회색 모직 코트를 입고 나섰다. 그런데 밖에서는 모르겠더니 예약한 택시에 타서 앉자 옷에서 냄새가 올라옴을 느꼈다. 잠시 후 택시 기사가 재채기하기 시작했다. 연거푸.
“기사님, 왜 기침하세요?”
“모르겠네요. 왜 아침부터 기침이 나지?”
기사님은 물을 마시면서 대답했다. 기사님은 이유를 모른다고 했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면접장에는 생각보다 면접 대기자가 많았다. 몇 개의 큰 강의실에 나눠 대기를 하는데, 내가 앉자, 옆 사람이 재채기를 했다. 안 그래도 조마조마했는데 옆 사람이 나를 한차례 보더니 옆으로 좀 떨어져 앉았다. 몇 차례 시선이 느껴졌다. 중요한 면접일인데 얼마나 짜증이 날까. 나는 1차 대기실에서는 밖에 나가 있었는데, 2차 대기실에서는 정해진 자리에서 움직이면 안 돼서 죄인 된 심정으로 앉아있었다. 이 피해가 나뿐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미칠 수 있고, 이미 미치고 있음을 절감했다.
그다음 날에는 약속이 있었다. 그동안 병원 진료에, 화재 피해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어 한 번도 나가지 못했던 집회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역시나 입고 갈 옷이 없었다. 코트를 입을 수는 없고 패딩도 자신이 없었다.
먼지라도 좀 털어서 입어볼까. 나는 패딩을 꺼내서 세탁 건조기에 넣고 먼지 털기를 눌렀다. 건조기가 돌아가고 10여 분쯤 흘렀을까. 건조기 밖으로 매운 내가 번져 나왔다.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가서 창을 닫고 고리까지 걸었지만 매운 내는 집 안으로 들어와 번졌다.
공기청정기를 돌려 보면 초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창을 꽁꽁 닫아둬도 센서가 붉은색으로 변하고, 오래 돌려도 ‘좋음’이 잘 안 나온다. 초미세먼지는 창문을 닫는다고 안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다만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이놈은 냄새로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그날 집회에 다녀와 늦은 시간부터 그 후 몇 주 동안, 나는 모든 옷을 꺼내서 건조기에 돌려봤다. 매캐한 냄새가 풀풀 날렸다. 뜨거운 곳에서 생성된 물질은 같은 환경이 조성될 때 활성화된다는 한 연구원의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집진기에 까만 먼지가 모였다. 까만 옷에서도 까만 먼지. 베이지색 옷에서도 까만 먼지, 하얀 옷에서도 까만 먼지. 겉에서 보기에 깨끗하고 잘 다려진 흰 셔츠에서도 까만 먼지가 모인다. 발매트 4개를 넣고 돌렸을 때는 제법 큰 까만 알갱이들이 스테인리스 통에도 남아있었다. 꼭꼭 숨어서 냄새만 풍기던 놈들.
눈으로 분진을 확인한 후 나는 세탁소에 맡겼던 모든 의류, 침구류, 신발류, 가방류, 모자 등을 다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내 얘기를 들은 손해사정사는 이미 세탁한 옷의 문제는 세탁업체와 책임 소재를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업체를 달리하며 화재 세탁을 세 번 하고, 일반 세탁소에 물세탁을 맡겼고, 나도 세탁을 했다. 일반 세탁소에서 집에서 세탁해도 되는 것들은 큰 가방으로 두 개를 챙겨줘서 수십 번을 세탁기를 돌렸다. 거기에 퍼부은 과탄산소다가 20킬로그램이 넘는다. 화재 세탁업체에서 왔을 때 물빨래류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과탄산소다를 많이 넣고 빨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었다. 과탄산소다는 평소에도 사용했고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세탁할 때 충분히 사용했다. 그러나 매캐한 냄새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후에는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쓰였다는 미생물 제재에 한나절 담갔다가 빨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안 됐다. 그럼, 그 결과가 그 여러 세탁소의 다양한 세탁기와 세탁 세제의 잘못이라는 건가. 이 과정은 다만 내 옷들이 받은 피해의 정도를 말해줄 뿐이다.
내가 모든 화재 피해 의류가 이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불에 탔거나 물에 젖은 것처럼 피해가 분명히 보인다면 사진 찍어두고 잘 보관하고 있다가 보상 청구를 하면 된다. 또 화재 연기가 섬유 깊이 스며들어 들러붙기 전에 조처하면 복구가 될 것도 같다. 세탁소에서 복구한 세탁물을 본 적이 있는데, 피해 입은 부분을 잘라내고 다른 것을 대어 수선을 하기도 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어쨌든 화재 분진이 섬유에 흡착 돼버리면 복구는 안된다. 그게 내가 몇 달간 지켜본 결과다.
앞에서 여러 번 썼지만 우리 집에는 화재 초기에 화재 연기가 들어왔고, 이후 윗집의 불을 끈 소방수가 물이 천장과 벽으로 내려오면서 실내 습도가 높아지고 옷이 축축하게 젖었었다. 그리고 발화 세대 화재 원인이 나오지 않아 현장이 유지되면서 공사가 늦어졌다. 그래서 분진이 옷에 흡착되기에 충분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화재 분진이 들러붙은 옷은 더 이상 옷이 아니다. 세탁소에서 물세탁한 옷을 처음 입었던 날, 팔과 허벅지에 두드러기가 났다. 피부과에서는 몸이 그 물질에 반응하는 것으로 일종의 아토피라고 했다. 몸에서 그게 다 빠져야 한다며, 증상이 있을 때마다 약을 먹으라고 했다.
분진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비로소 피해 청구서를 쓸 수 있었다. 이후에도 협상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집진기에 모인 먼지를 모아 물질 분석을 했으면 어떨까 싶다. 지금은 아쉽게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별로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토록 피해가 확실한데 그 수고까지 해야 할까 싶었고, 무엇보다 심신의 에너지가 다 고갈된 상태여서 뭘 더 해볼 마음이 나질 않았다. 문경 수업을 마치고 오후 6시 30분에 출발했는데, 너무 힘들어 쉬다 쉬다 집에 새벽 4시 30분에 도착한 날도 있었다. 일단 증빙할 수 있도록 촬영했고, 모든 의류를 보관하고 있으니 분진은 필요하면 모을 수 있어서 마지막 방법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본 글은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관련 서류와 자료(증빙)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적, 과학적 내용은 개인의 경험과 참고 자료 및 제삼자의 의견을 종합한 개인적 판단이며, 전문적 검증이나 수치화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본 게시물은 고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안은 금융감독원에 정식 접수되어 조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접수번호: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