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 16화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제목에 영어를 섞어 쓰지 않는 편인데, 한 공부 모임에서 들은 말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그대로 쓰고 싶었다. '익숙한 것은 위험으로부터 스페셜하지 않다.' 이 제목이 이 글의 전부다. 익숙한 것은 위험으로부터 스페셜하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묻고 말고 할 게 없지. 도망을 가야지.
(약속한 '피해는 복구하지 말고, 일단 보존하라 2'는 또 밀렸다. 일단 피해를 보존해야 한다는 말을 일부 전했으니 마음에 서두름이 없는 것이다.)
이 제목의 시작은 이랬다. 지난주 공부 모임에서 담당 교수님이 최근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캄보디아 범죄 조직 얘기를 꺼냈다. 주로 보이스 피싱, 로맨스 스캠과 관련한 인간 심리에 대한 이야기였고, 그 끝에 교수님은 그럼에도 지금도 캄보디아로 출국하려는 청년들이 있다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나한테는 그런 일이 없겠지.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위험으로부터 스페셜한 존재는 없는데 말이죠”
위험으로부터 스페셜한 존재는 없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번뜩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IT 기기를 주로 다루는 커뮤니티에서 찾은 자료인데, 10여 년 전 화재 간접피해를 입은 아파트 몇 가구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집에는 그을음이 잔뜩 묻어있고, 위층에서 물이 내려와 젖기도 했는데, 피해 발생한 때가 여름이었는지 거주자들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피해 현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음에 걸렸던 것은 그 피해자들의 모습이었다.
‘피했다가 잠깐 들어온 건가. 집에 저런 차림으로 있으면 안 되는데...’
내가 사는 집이지만, 이제는 분진과 유해가스와 악취가 있는 화재 피해 현장이다. 직접피해가 됐든 간접피해가 됐든 화재 피해가 발생한 집이다. 만약 내가 화재 피해를 본 타인의 집에 들어가야 한다면 꺼려지는 마음이 들고, 마스크나 비닐장갑 정도는 끼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내 집은 그을음이 덮이고 물이 쏟아진 피해를 입었는데도 평상시 입던 반팔 티셔츠를 입고 맨발로 다닌다. 내 집이고, 내 물건이고, 익숙하고, 내게 안전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공간이었기에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다.
좀비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들이 있다. 아침에 학교 간다고 엄마에게 인사하고 나왔는데, 오후에 그 엄마가 좀비가 되어있다. 엄마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주변에서 말리며 좀비가 되었으니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좀비가 된 엄마는 엄마일까, 좀비일까.
옷에서 매캐한 냄새가 나고 만지면 손이 아팠는데도, 다른 옷도 그런가, 서랍장 안에 있던 것도 그런가. 겨울 옷도 그런가? 하나하나 만져보고, 축축한지 확인하려고 얼굴에 대보고, 코를 바싹 갖다 대고 냄새를 맡았었다. 매트리스가 축축해도 덜 축축한 곳을 골라 옹색하게 드러누웠다.
임시숙소로 나가기 전에 직접 세탁해서 널어놓았던 옷을 챙겼다. 털면서 갰더니 매캐한 냄새가 나서 폐기해야 한다고 따로 보관하면서도, 캐리어에 당장 쓸 수건 몇 장과 숙소에 도착해 입을 옷 두어 개 넣었다. 임시숙소에서 캐리어를 열었을 때 그 냄새가 그대로 따라왔다는 것을 알았다. 아! 화재 현장에서는 몸만 나오는 거구나. 입고 있던 옷까지 벗어서 즉시 폐기해야 하는구나. 내가 화재 분진을 옮기는 매개체가 되면 안 되는구나. 그때 알았다.
폐기할 가재도구를 최종 확인하러 온 손해사정사가 ‘이 옷은 어딨나요? “ ’이 가방은 어딨나요?”라며 물었을 때도 나는 박스를 풀고 비닐을 열어 보관 중인 피해 물건을 손으로 꺼내 보여주었다. 폐기 예정이라 따로 보관했지만 보기만 해도 아깝고 속상하고 눈물 났다. 그때까지도 내 물건이니까.
신경정신과 의사가 냄새나는 벽 청소하지 말고, 이사할 상황이 안되면 당분간이라도 집을 옮기라고 권유할 때까지 다시 집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까이 가면 컥하고 숨이 막혔고, 벽을 닦은 헝겊에서도 심한 탄내가 났는데도 내가 오래도록 살던 곳이니 복구해서 멀쩡해지는 걸 보고 싶었다.
내 집, 내 옷, 내 물건들의 익숙함. 편안하고 안전했던 것들.
앞서서 좀비 영화의 예를 들었지만, 최근에 나온 또 다른 좀비 영화는, 좀비가 된 딸을 돌보는 이야기다. 그 영화에 관한 기사를 읽으면서 딱 이것이구나. 좀비가 된 아이를 돌보듯이 익숙하지만 위험해진 내 물건들을 돌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지 않나? 보험사에게 피해를 호소하면서도 나는 그것을 놓지 못해 애달복달하고 있었으니.
내가 생각을 바꾸지 못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물질적인 충족이 있으면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신념이나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실은 물질적 기반이 바뀌면 달라지기도 한다. ‘사적유물론’까지 가지 않더라도, 어쩌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과도 상통한다고 하겠다.
대단한 예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하철보다는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해, 하늘을 보면서 다니는 게 좋아’라고 말해왔지만, 집 앞에 지하철역이 생기고부터는 그전보다 자주 지하철을 타게 됐다. 보행자를 보호해야 하므로자동차는 모두 지하차도로 다녀야 한다고 말했지만, 운전하게 되면서는 운전자도 사람인데 어떻게 긴 지하터널로만 다니나 그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니 화재 사고 관련해서도 물질적 기반이 부족했기 때문에 피해 물품을 손질하고, 머물렀을 수 있다. 보상이고 뭐고 다 버리고 새것 마련한다고 생각하자며 툭 털어버렸을 수도 있다. 혹은 보상이 될 것이 확실했다면 보다 쉽게 피해 현장을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2천5백여 권의 책을 옮기고 거주지를 옮겨야겠다고 말했을 때 보험사의 답변은 ‘책을 옮기거나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알아서 하시면 되는데, 보상은 안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때 내 판단은 ‘이 손해를 다 감수하든지, 보험사와 협상하면서 가든지 둘 중 하나겠구나’였다. 손해를 다 감수할 능력은 없으니, 그리고 화재가 아니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손해와 지출이니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런 생각에서 내 행동이 결정됐던 것 같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쉬운 결정이었다. 익숙한 것들이 이미 위험해졌는데, 생각이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익숙한 것들은 위험으로부터 스페셜하지 않다. 익숙함이 오히려 위험을 가리는 가림막이 될 수도 있다. 그곳이 얼마나 해로웠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 사진 속의 피해자들에게
“그 공간에 있어야 한다면, 하다못해 마스크라도 쓰세요.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끼세요. 그을음이나 그을음이 앉은 물건에 손대지 마세요. 장갑을 끼세요. 두피와 피부를 보호하세요. 유분이 많은 비누로 자주 씻으세요. 입었던 옷은 빨아서 입지 말고 폐기하세요. 그리고 그 공간을 빨리 떠나세요. 떠나기 전에 반드시 피해 증거를 보관하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본 글은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관련 서류와 자료(증빙)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적, 과학적 내용은 개인의 경험과 참고 자료 및 제삼자의 의견을 종합한 개인적 판단이며, 전문적 검증이나 수치화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본 게시물은 고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안은 금융감독원에 정식 접수되어 조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접수번호: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