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피해자의 힘

[불난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 2화

by 조서경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미리 쓰는 사족)

1편을 쓰고 나서 그날 잠을 잘 잤다. 직업상 필요에 따라 수면 시간을 줄일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잠이 많다. 그랬는데 화재 사고 후 잠을 잘 자지 못했다. 2시간 만에 깨기도 하고, 심할 때는 40분을 자고 일어나 밤새 잠들지 못하기도 했다. 손발이 찌릿찌릿해서 신경과 진료를 받았을 때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 증상이 생기고 잠도 잘 못 잔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글을 시작하고 나서, 그 이후로 해결된 것이 없는데 잠을 잘 잤다. 그렇다면 오케이. 레츠 고 (8.22)


그날 외출 준비를 하느라 욕실에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역한 냄새가 훅 들어왔다. 처음 맡아보는 지독한 냄새였고, 육중한 것이 가슴을 누르는 듯 압박감이 느껴졌다. 참을 수 없이 구역질이 나며 어깨가 굽어졌다. 불안한 마음에 아무렇게나 수건을 덮어쓰는데 와장창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놀라서 뛰쳐나왔는데 집안에는 뭔가 떨어진 흔적은 없었다. 역한 냄새는 베란다창에서 들어오고 있었고 창을 닫으려 보니 안전가드에 시커먼 물질이 뚝뚝 떨어져 있었다. 창을 닫고 관리실에 전화하려는데 안내 방송이 나왔다. <OO동 ooo호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진압 중이니 베란다 창을 닫고 집에 있으라>고 했다. 바로 위층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재가 진압됐으니 안심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불을 껐다는 정보일 뿐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으나 엘리베이터는 멈춰있었고, 계단에는 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려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지인에게 보내기 위해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카톡으로 몇 마디 나눴다. ‘윗집에서 불이 났어’, ‘계단에 물이 폭포수처럼 흘러’, ‘냄새가 장난이 아니야’


욕실 환풍기에서는 노란색 물이 줄줄 떨어지는데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날 밤을 지나면서 천정과 전등에 물이 고이고 벽이 젖은 것을 알았다. 새벽이었지만 관리실에 전화해 와 달라고 해서 같이 보고 사진을 찍었다. 관리실 직원이 혼잣말처럼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거 소방수, 아랫집으로 다 내려올 텐데”

“네?”


아 맞다, 화재 진압을 위해 쏟아부은 소방수는 현관 밖 계단으로, 욕실이나 베란다 하수구로 빠져나갔지만, 상당량은 바닥에 흡수됐을 것이다. 화재 현장의 물이 깨끗할 리도 없고, 그 물이 우리 집으로 흘러내릴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고를 받았음에도 나는 사고 앞에 겸손할 줄 몰랐다. 화재 발화 세대는 화재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현장을 보존해야 한도 한다. 그런데 윗집의 화재 원인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10월의 어느 날이니 한 달 넘게 걸린 듯하다. 그러니 그 물은 아주 천천히 충분히 흘러내렸을 것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피해가 어떻게 확산할지 모르면서 화재 후 4일 만에 방문한 내 개인보험 손해사정사에게 단정적으로 말했다.


"가재도구 피해는 특별한 건 없는 것 같고요, 천장하고 벽하고 물이 조금 흘러내린 거 아파트 단체보험으로 한다니까 집 공사만 좀 하면 될 것 같아요"


이후 자꾸 피해 상황이 늘어나자 손해사정사가 처음에는 천장, 도배, 장판만 하면 된다더니 왜 다른 피해가 추가되냐고 물었고, 그때마다 민망했다. 피해 발생 초기에는 제한된 정보만 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추가 피해가 드러날 수 있으니 피해를 너무 빨리 확정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나마 내가 잘한 것은 처음부터 기록한 것이다. 사고 당일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지인에게 보낼 현장사진을 찍었고, 카톡으로 사고에 대해 몇 마디 주고받았다.


“냄새가 장난이 아니야”

“창문을 열어도 냄새가 심할 텐데 어떻게 해요”

“머리 아파 죽겠어”


이렇게 누군가와 공유한 내용은 입증 자료로 내놓기 수월했다. 거짓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어서 내 마음이 편했다는 게 맞는 말이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상황에 당황하여 손해사정사에게 문자로 문의했는데 이 역시 기록이라 볼 수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입증할 길이 없어 아쉬워하다 집에 설치한 CCTV에 오디오가 담겨있어서 그 내용을 인용하여 제출했다.


자 그러니 피해가 발생했다면 우선 기록을 하자. 모든 피해 상황을 기록하고 가능하면 공유하고, 모든 피해 물품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하고, 피해 관련 지출 영수증과 사고 관련된 통화나 문자는 보관한다. 영상을 찍을 때는 오디오까지 담는 게 더 좋다.


"몇 시, 몇 분, 욕실 환풍기에서 물이 떨어집니다. 물 색깔은 노란색이고, 아주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


보험사와의 협상 과정에서 피해자는 힘이 없다. 무력감을 느끼고 상처를 입는다. 간혹 모멸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것을 그나마 위로하는 것이 '기록'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모든 피해 내용은 기록하는 것이 좋다. 기록은 피해자에겐 거의 유일한 총알로, 내가 보험사와 이나마 협상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남긴 기록 덕분이다.



본 글은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관련 서류와 자료(증빙)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적, 과학적 내용은 개인의 경험과 참고 자료 및 제삼자의 의견을 종합한 개인적 판단이며, 전문적 검증이나 수치화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본 게시물은 고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안은 금융감독원에 정식 접수되어 조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접수번호: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