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집 아랫집의 간접피해 보상기] 4화
[본 글은 개인 경험 기록이며, 개인적 판단을 포함합니다. 상세 고지는 글 하단을 참고하세요.]
(진행)
네 번째 글을 시작하기 며칠 전에 보험사에서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민원을 접수했으며 보험사 민원 담당자가 배정됐다는 연락이 왔다. 화재 사고가 난 지 이날로 꼭 일 년이 되었다. (8.29)
화재 사고 후 일주일 동안은 피해를 인지하지 못했다. 초반에 연기가 들어왔는데 눈에 띄게 그을린 곳은 없었고, 천장과 벽으로 내려온 물은 마르기도 했다. 그런데 화재 9일 후, 그날은 한 달에 한 번, 주말 이틀 동안 진행되는 명상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에 버스 타고 가는 동안에도 몰랐는데, 강의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는 순간 내 옷에서 훅~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다.
‘이게 무슨 냄새지?’
명상하듯 눈을 감고 호흡하며 코에 집중하였다. 잘 말리지 않은 젖은 옷에서 나는 쿰쿰한 냄새였다. 이후 수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 코에 닿은 냄새는 다른 사람들도 느낄 것이기에 수업 시간이 아주 곤욕스러웠다. 특히 명상 수업은 호흡하면서 진행된다. 호흡명상이 그렇고, 오감명상이 그렇고 영상관법이 그렇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하나..."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멈춤..."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코에서는 무엇이 느껴지나요?"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통증의 강도는 어떤가요?"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이놈이 뭣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아우 제발. 좀. 정말 숨을 그만 들이쉬고 싶었다.
구석 자리로 옮기고 싶었지만, 수업이 주로 1:1 실습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자리를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고요히 명상 수업을 하러 온 이들에게 방해가 되고 불쾌함을 끼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불편했다.
집에 돌아와 옷장을 열어보니 어느 옷이라고 할 것 없이 전체적으로 냄새가 났다. 서랍장 옷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입을 것은 세탁하고, 겨울옷은 꺼내서 걸어놓고, 제습제와 탈취제를 주문하고, 이 상황을 손해사정사에게 알렸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내가 주장하는 피해가 눈으로 확인되느냐였다.
“그 의류가 육안상으로도 문제가 확인되나요?”
”육안상은 아니죠. 냄새죠. 냄새가 쿰쿰해서 일단 탈취제를 넣었다고요 “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6일이 지난 후, 1박 2일로 취재를 다녀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공기가 너무 이상했다. 마치 동굴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랄까. 살에 닿는 공기는 서늘함을 넘어섰고, 또 축축했다. 책상 위에 책을 만졌을 때 추운 날 돌을 만진 것처럼 차가웠다. 이번에는 다른 손해사정사와 통화가 됐다.
”지금 집이 동굴 같아요 “
”예, 어떤 상태인지 충분히 알 것 같네요. “
손해사정사는 간단한 명절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금요일 오후가 그렇게 지나고, 추석 연휴에 들어섰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실내 습도는 더 높아졌다. 이불도 차가워져서 몸에 댈 수가 없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2천5백여 권의 책이었다. 윗집 화재 원인이 나오지 않고 날짜가 속절없이 흐를 때 나는 두 명의 손해사정사에게 책을 먼저 안전한 곳에 옮겨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보관료가 너무 비싸다, 기다렸다가 윗집 공사가 시작될 때 옮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등의 답변을 들었었다.
추석 연휴라 관리실에도 당직자뿐이었고, 기댈 수 있는 곳은 당일 배송하는 쇼핑몰뿐이었다. 젤리형 제습제를 다량 구매해서 책장에 잔뜩 넣었다. 공부하면서, 일하면서 한 권씩 사서 보고 꽂아둔 책들이다. 몇 년 전 대학 교재부터 이제는 손대지 않는 책들을 정리하며,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일할 수 있도록 분야별로 기초가 되는 책들은 남겼는데 2천5백 권쯤 됐다. 이미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책들이 많아서 버리게 되면 보상이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습도는 높아졌고, 물구덩이 속에 들어앉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표현해야 전달이 될는지. 추석 연휴 동안 젤리형 제습제를 세 번 바꿨고, 제습기를 구매해 40리터의 물을 제습했다. 혹시 대처 방안을 알려줄까 싶어 두 명의 손해사정사에게 중계방송하듯 문자로 상황을 알렸으나 연휴라 그런지 답은 없었다.
‘잊지 못할 추석 연휴네’
이틀 정도 지나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갰다. 제습기를 돌리고 날씨까지 맑으니, 집안에 습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연휴가 끝나고 관리실에서 사람이 나왔을 때 심지어 다른 집보다 뽀송하다고 말했다.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며 연휴 동안 잠도 잘 못 자고 40리터의 물을 제습했다고 말했다.
이 시기를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쿵쿵거린다. 차라리 책이 젖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고 집을 비웠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몸도 상하지 않고, 책이며 옷이며 가구며 피해가 확실해서 보상 협상을 하기 더 쉽지 않았을까?
“차라리 다 젖게 내버려 둘 걸 그랬나 봐요"
불에 의해 손상을 입었거나, 물이 한 방울이라도 떨어진 것을 피해로 본다는 손해사정사에게 내가 말했다. 이 말에 돌아온 대답은 '구제할 수 있는 물건을 구제하지 않으면 책임을 물어 보상하지 않는다'였다. 예를 들어 천장에서 물이 떨어질 때 치웠으면 젖지 않을 것을 그냥 방치했거나 일부러 꺼내서 물을 맞히면 보상을 안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구제 노력을 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 비용은 보상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 집에서는 이전과는 다르게 매캐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눈과 코가 따끔거리고 손등과 발등, 겨드랑이가 아팠다. 가구, 의류, 헝겊 제품, 종이류에서 냄새가 심했고 , 가죽 제품은 구역질이 날만큼 독한 냄새가 났다. 가장 심한 건 털이 달린 가죽 신발이었다. 왜 이런 일이 있는 것인지 원인을 몰랐지만, 전에 없던 현상이었기 때문에 화재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냄새가 나네, 안 나네 씨름하며 몇 개월 시달리다 12월 말에서야 몇 가지 이유를 알았다. 냄새가 나는 원인을 몰랐던 넉 달 동안, 물에 젖지도 불에 타지도 않았기 때문에 보상이 안 된다는 보험사 입장과 다 버려야만 하는 가재도구 사이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한테 이걸 다 버리고 다시 살 돈이 있나?
내가 이걸 다 버리고 내 돈으로 다시 사야 하나?
내가 이번 화재에 무슨 책임이라도 있나?
내가 받은 피해는, 누군가 인정해 줘야 비로소 피해가 된다는 건가?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본 글은 개인의 경험을 정리한 기록입니다. 관련 서류와 자료(증빙)는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분들이 빠르게 대응하는 데 참고가 되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포함된 의학적, 과학적 내용은 개인의 경험과 참고 자료 및 제삼자의 의견을 종합한 개인적 판단이며, 전문적 검증이나 수치화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본 게시물은 고의적 비방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실 관계의 오류가 발견될 경우 정정하겠습니다. 현재 이 사안은 금융감독원에 정식 접수되어 조정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접수번호: 202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