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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의 삶

이젠 노후준비

마녀체력, 이영미 작가와의 만남

by 쉴만한 물가

2025년.
전 세계 평균 수명은 약 73세, 대한민국은 83세를 웃돈다.
세계적인 통계로 보나, 우리나라의 통계로 보나—나는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다.

20대 때, 40을 넘긴 어른들의 삶은 꽤나 그럴듯해 보였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웬만한 일은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 그런 걸 가진 사람들 같았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 하나에 매달려 방황하던 시기였고, 그때 내 눈에 어른들은 모두 그 과정을 ‘무사히’ 지나온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생의 중턱을 넘어선 지금의 나는 여전히 묻는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이 길이 맞는 걸까?”


그림책 수업을 하고, 독서모임을 이어오다 보니 도서관은 이제 거의 생활 공간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도서관에 들렀다가 입구의 행사 포스터에 눈길이 멈췄다.
2년 전 함께 책을 읽었던 ‘마녀체력’의 저자, 이영미 작가님이 강연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웠지만 주제가 살짝 마음에 걸렸다.
‘노후 대비’.
뻔한 얘기일까 봐, 경제서 몇 권 더 읽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뵙고 싶다는 마음에 결국 신청했다.


강연 당일.
딱히 기대도 없고, 아침부터 몸도 무겁다.
강연 시간 10분이 지나서야 도착했는데, 앞자리 세 칸만 남기고는 만석이었다.
샛노란 카디건을 입은 나는 앞까지 총총 뛰어갔다. 작가님의 손동작까지 보일 만큼 가까운 자리였다.

강연은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시작되었다.




1.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취미 모임을 만들어라.
작가님은 삶의 여유와 활기를 주는 ‘취미 커뮤니티’를 가장 중요한 노후 자산 중 하나로 꼽았다.
지속 가능한 우정, 나누는 이야기,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
내가 참여하는 독서모임, 그리고 요즘 다니는 원어민 영어 수업에서 만나는 연배 높은 분들—그들이 떠올랐다. 은퇴 이후의 삶을 멈추지 않고, 배움을 놓지 않는 그 분들의 태도를 존경한다.


2.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라.
70대 노인들끼리 모이면 ‘고여버린 시간’이 흐를 수도 있지만,
그 안에 한두 명의 젊은 사람이 섞이면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오히려 젊은 사람들 앞에서 더 ‘검열’하는 나를 본다.
"꼰대처럼 보이면 안 돼."
"내가 더 어른이니 어른답게 행동해야 해."
이런 생각들이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든다.
작가님의 말을 들으며, 어쩌면 내가 더 ‘편한 사람들’만 찾으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3. 노년의 최대의 적은 외로움, 사회적 고립이다.
이영미 작가님의 어머니는 요즘 외로움을 자주 말하신다고 했다.
“이젠 전화할 사람이 없어.” 웬만한 사람은 이미 다 가고 없다는 거였따.
관계는 꾸준히 가꾸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과의 교류’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노년의 외로움이라는 감정의 해독제일 수 있다는 걸 배웠다.


4. 장례식을 스스로 준비하라.
이 부분은 충격이었다.
작가님은 유서를 매년 갱신하고, 자신의 장례 방식까지 계획해 두었다고 했다.
죽기 전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식사 한 끼 하는 것으로 장례식을 대신하고, 시신은 기증하며 조용히 떠나는 방식.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무겁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삶을 더욱 단단히 살아가기 위한 다짐일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



기대 없이 갔던 한 강연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조금은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았지만, 여전히 삶은 질문투성이이고, 그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내게 누군가는 가만히 손을 내밀어 이야기해준다. 늦지 않았다.

아직도 배울 게 많고, 함께 웃을 사람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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