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통의 삶

노바디와 썸바디

아무것도 아닌 자와 특별한 존재

by 쉴만한 물가


여행 중 우리는 때로 노바디가 되어 현지인 사이에 숨으려 하고 섬바디로 확연히 구별되고자 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스스로 확인하는 것 맛으로는 부족하며 타인의 인정을 통해 비로소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여행의 이유 중 p.174

나의 20대 시절은 '지방대 여자 공대생'이라는 프레임으로 스스로를 규명할 수 있었다.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프리미어 리그에 들어가 뛰는 것이라면, 나의 지방대 입학은 아마추어 구단에서 혹은 동호회에서 주말야구를 하는 정도의 것이랄까. 게다가 남성이 주를 이루는 공대에서 철저히 소수자였던 나는 스스로를 내세울 것 없는 아무것도 아닌 노바디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언니들의 연이은 대입을 지원한 터라 더 이상 총알도 남아있지 않았다. 부모의 사정을 뻔히 아는 나는 첫 등록금을 어찌어찌 마련해 주신 것 그 이상은 바랄 수 없었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알바인 도서관 근로장학생도 매번 했지만 거기에서 얻는 수익은 생활비를 보태는 수준이었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방법이라곤 장학금이 유일했다. 고3 때도 제대로 하지 않던 공부를 상황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감사하게도 노력은 결실로 이어졌고 과에서 상위권 순위를 유지하며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그제야 나는 노바디(아무것도 아닌)의 삶에서 썸바디(누군가)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노바디의 삶에는 인정이나 자존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성취를 이루며 스스로를 썸바디로 인식하기 시작하자 타인에게도 조금씩 인정받게 되었다. 나를 썸바디로 만들어준 것은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게 된 것에서부터였다.


이영하 작가에게도 무명시절이 존재했다. 무명이던 시절 한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한 그저 방 안에 틀어박혀 밥이나 축내는 노바디의 삶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떠난 낯선 여행지에서 썸바디가 되는 경험을 했다. 여행자이자 외국인의 모습을 한 자신에게 쏟아진 관심 덕분이었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받지 못한 인정과 관심을 여행지에서 느끼며 썸바디가 되었고 이것은 타인의 인정이 우리의 정체성에 영향을 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몇 년 후 작가는 국내에서도 유명작가가 되었고 대학교수로도 라디오 진행자로도 활발히 활동하게 되었다. 그 시기즈음 강연초청이나 연설 등의 이유로 해외에 나갈 때면 자국에서 누리던 본인의 유명세, 지지, 인정은 온데간데없이 오히려 노바디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토록 여행은 우리를 누군가를 노바디로 만들기도 썸바디로 데려가기도 한다.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여행지에서 여행자의 모습으로 비칠 수도 현지인처럼 비칠 수도 있겠다.


삶이라는 짧은 여정에서는 나는 노바디가 되길 원하는가? 썸바디가 되길 원하는가?

우리는 누구나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내가 밟는 이 땅에서 누리는 지위나 명예를 전 세계 어디에서나 누리기를 간절히 바라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유한 썸바디를 가진 자의 모습은 누가보기에도 그럴듯해 선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바디와 썸바디를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내 이름 석자로 살아가고 있느냐의 유무 일까? 무명과 유명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커다란 세상 속 우리는 누구나 일개의 인간인 노바디이다. 내 아무리 썸바디라 주장해 봐야 타인이 인정하지 않는 썸바디가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썸바디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이 공동체에서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그들과의 연대 가운데에서 비로소 나는 썸바디가 될 수 있다. 오늘도 내가 부르는 이름은 나로 인해 썸바디가 될 것이다.

오늘도 내가 썸바디가 되게 해주는 이들, 나와 동행해 주는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The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