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보통의 삶

50대 초반이세요? 중반이세요?

by 쉴만한 물가

혜진은 특수학교 돌봄 교실 종일반 교사다.

겨울 방학 특강으로 혜진이 근무하는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혜진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교실에서 만났다.

첫 수업은 언제나 긴장감이 감돈다. 게다가 특수학교 수업은 처음이라 아이들 성향 파악하랴 교실 분위기 살피랴 눈과 마음이 바빴다. 혜진과 공익요원 종원은 착석이 안 되는 아이들을 각각 맡아 수업 진행을 원활하게 도와주었다. 도와주시는 선생님들 덕에 비교적 수월하게 첫 수업을 진행했다.


“언제부터 이 일을 하셨어요? 전공은 뭐 하셨길래 이 수업을 하시는 거예요? 아... 전공자가 아니세요?? 그럼 어떤 자격으로 이 일을 하시게 된 거죠? 학교는 어디 어디 나가세요? 시간당 페이가 얼마죠? 한 달 수입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네요? 그럼 오후에 잠깐씩 일하고 오전에는 주로 뭐 하셔요? 아... 오전에도 일을 하시는군요? 그 일은 페이가 오후랑 같아요? “

첫 수업날, 한 시간 후 쉬는 시간 동안 혜진이 나에게 쏟아낸 질문이다. 미주알고주알 질문을 쏟아내는 그녀가 부담스러웠지만 계속 봐야 할 사이였기에, 어쩌면 나에 대한 평가를 할 수도 있는 위치였기에 얼굴을 붉혀봐야 좋을 게 없었다. 자판 몇 번 두들기면 나올 그깟 단순한 정보들, 꽁꽁 숨길 이유도 없어 묻는 말에 고분고분 답했다. 수업도 정신없이, 쉬는 시간은 더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다.


첫 수업을 마치면 짐을 챙겨 서둘러 교실을 빠져나오고 이내 차에 올라타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쉰다. 그제야 안도감이 밀물처럼 몰려온다. 이 아이들과 앞으로 어떤 수업을 하면 좋을지 머릿속에 그려본다. 이제야 조금씩 수업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안도감 사이사이에 다른 감정이 비집고 올라온다. 거친 파도가 바닷속 이름 모를 해조류를 데려오듯 알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을 헤엄친다.


첫 수업 후 나에게는 투명해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가림막 같은 벽이 생겨났다. 일로 만난 첫 시간 지극히 개인적인 신상들이 모조리 까발려진 것 같아 썩 유쾌하진 않았다.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인 건 혜진도 강사 생활을 막 시작하려던 시기에 종일반 교사에 합격해 종일반 교사를 선택했기에 강사일에 미련이 남아 이쪽 돌아가는 게 궁금해서 라는 얘기를 언젠가 했다. 그럴 수 있겠구나 싶어 혜진에 대한 방어막을 30센티쯤 내려두었다. 방학 중 텅 빈 학교에 종일반을 맡아 꼬박 출근하는 혜진이 딱하기도 했다. 그렇게 두어 번 수업 만에 그녀와 나 사이엔 사적인 이야기가 제법 오갔다. 그렇다고 혜진과 나 사이가 가까워진 걸 의미하진 않는다. 그녀가 쏟아낸 질문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내가 가진 '직업'에 대한 호기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혜진과 나는 방학 특강으로 5회만 만나면 그만이기에 두 번째 시간부터는 적절한 선을 유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행히도 한주 한 주 무난하게 흘러가 드디어 마지막 수업날이다.

가장 고난도의 스킬을 요하는 학생인 선우가 결석했다. 혜진도 나도 교실이 너무 조용해서 적응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다 이야기의 물꼬가 터졌다. 쉬는 시간 가까이 마주 앉게 된 혜진과 나.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엔 투명 가림막이 가만히 올라왔다.

" 아이들이 몇 살이라 그랬죠? 애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공부를 잘하겠네요?"

" 아니요~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공부하라고 말해서 하는 나이가 지나서요."

혜진은 둘째인 아들은 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읽어주지 않아도 책을 스스로 펴서 읽는데, 한창 사춘기가 시작된 큰 딸이 책을 싫어해서 고민이 많다는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다행히도 우리 집 두 딸들은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아니라 내가 시도했던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혜진이 물었다.


“ 선생님은 50대 초반이세요? 중반이세요?"


혜진이 나보다 네 살이 많다는 건 혜진의 말실수 덕분에 나이를 공개하면서부터다.

혜진은 내 나이를 듣더니 난처하고 미안해한다. 아이들이 중, 고등이라길래 그 정도 나이로 짐작했다는 말로 나를 위로하려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났다. 가만히 올라온 마음속 가리막도 제 역할을 못한다.

며칠째 혜진이 던진 질문이 가라앉을 줄 모르고 머릿속을 헤엄쳐 다닌다. 혜진에겐 파도를 일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며칠째 멀미가 이어진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혜진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다. 혜진이 요상스럽고 밉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 같다고 사회생활이 쉽지 않겠다는 말로 혜진을 단정 지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쯤 했으면 후련해야 하는데 개운치가 않다. 며칠이 지나니 ‘혜진’은 온 데 간데없고 텅 빈 마음에 ‘50대 초반이세요? 중반이세요?’ 문장만 남아있다. 문장이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말 한마디가 그렇게 너를 사로잡더냐고. 머리빨이며 화장빨 다 포기했다던 사람이 뭘 더 붙들고 있었던 거냐고.


겨울의 막바지. 기온이 제법 올랐다. 통유리로 통과해 전해지는 햇볕이 덥게 느껴진다.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절로 펴지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러 밖으로 나선다.

햇살은 여전하지만 바람은 겨울과 함께 떠나긴 아직 이르다며 소란스럽게 아우성친다.

바람은 노크하고 오는 법이 없다. 이 녀석은 아침 내 드라이와 빗질로 정리한 내 머리카락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았다. 추운 겨울을 오롯이 견뎌 온 나뭇가지의 잎사귀에게도 팔랑팔랑 꽃무늬 쉬폰 스커트 차림으로 첫 데이트 나온 언니에게도 찾아와 휑하니 훼방을 놓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바람이 지난 자리는 스스로 다독이고 정돈하며 제갈길을 가면 그만이다.


혜진의 말은 불현듯 찾아와 나를 들여다보게 했다.

나는 바람에 흔들린 것이 아니다. 나는 혜진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가만히만 있어도 겨울은 가고 봄은 찾아올 테지. 내 시린 마음에도 봄은 찾아올 테지.

까만 하늘에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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