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있는데 아파트 관리실에서 안내방송을 흘려보냈다. 영하 10도 이하의 한파로 인한 동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몇 가지 당부 사항을 전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도, 안전 안내 문자로도 누차 추위를 예고하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아침 온도 영하 9도, 체감온도 영하 15도. 바람소리가 묵직한 단열창을 뚫고 가늘게 들려왔다. 창문이 열린 데가 있나, 부엌에 난 작은 창을 열었다 다시 꼭 닫아보았다. 집 안 온기를 가르고 찬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야지, 하고 있는데 구립 도서관에 상호이음을 신청하고 기다리던 책이 가까운 도서관에 도착했다는 문자가 왔다. 아이 학교 방학 숙제로 읽어야 하는 책이 온 것이다.
추운데 책을 찾으러 나갈 것인가, 내일로 미룰 것인가를 두고 잠시 망설였다. 오전 하루 종일 집에 있었으니 나가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안방 옷장에서 모자 달린 두꺼운 패딩을 꺼내 걸쳤다. 언제부턴가 찬 바람에 정수리가 시큰거리고 귀가 아파 유독 추운 날 찾게 되는 패딩이다.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를 야무지게 동여 메고 기모를 안감으로 덧 댄 바지를 입고는 집을 나섰다.
아파트 현관 자동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콧구멍 속으로 훅 들어왔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린 마른 이파리들이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내일 방학을 앞두고 사물함에 든 개인 물건을 손가방에 가득 담은 아이가 짐을 양손 가득 들고 끙차 하며 옆으로 지나갔다.
날이 차서인지 하늘이 맑았다. 하얀 구름이 푸른 하늘에 흩어져 있었다. 해가 고층 아파트에 가려져 더욱 쌀쌀한 느낌이었다. 군데군데 아파트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 있었는데 양지도 춥기는 매한가지였다.
걸어서 십 분 거리의 도서관에 도착해 사서에게 폰으로 도서관 회원증 바코드를 열어 건넸고, 사서는 예약도서를 책꽂이에서 찾기 시작했다. 사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왜 책이 없지, 왜 없지, 하는 새 제가 같이 찾아볼까요? 하며 거들었다. 예약도서는 '나야, 예약책'하며 노란색 빛을 띠며 내 눈에 한 번에 들어왔다. 가끔 눈앞에 둔 사물이 안 보일 때가 있지, 속으로 생각했다.
빌린 책은 <오늘의 사랑스런 옛 물건>, 이감각, 책밥 출판.
옛 물건이란 제목을 달고 있어 예스러운 책 디자인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작은 판형에 분홍색 표지가 예상을 뒤엎었다. '사랑스런'에 걸맞은 옛 물건이 책 가득 소개되어 있었다. 소개된 물건 중 가죽 시계집이 딸린 앙증맞은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계가 귀했던 시절이라 시계만큼이나 제대로 된 시계집이 있었을 것이라는데 나는 티브이가 귀했던 시절 티브이집이 딸린 티브이가 연상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삭고 닳은 시계집은 작고 귀여운 시계를 보호하기 위해 태어나 여전히 시계를 늠름하게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탁상시계가 흔해 시계집이 필요 없어졌지만, 디자인 소품으로 손색없어 보였다.
이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두 작가가 합심해 책을 펴냈다. 작가 소개글에서 두 작가가 예술을 매개로 끈끈히 묶여 긍정적 영향을 서로 주고받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들은 북유럽 디자인, 자포니즘, 아메리칸 스타일이 있지만 '한국 디자인'은 없는 게 아쉬워 책을 쓰게 되었다 말했다. 옛 물건의 심미성과 사용법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 읽고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대의 물건과는 판이하게 다른 아름다움이 옛 물건에 녹아 있다. 그 시대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했을 모습, 올려두었을 공간을 혼자 떠올려 보았다.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선물/구매된 것일까. 그 물건이 어떤 장소들, 혹은 어떤 손에 거쳐 지금 박물관에 당도하게 되었을지도 궁금하다.
아이 덕분에 오늘도 보지 못할 것을 보았고 알지 못할 것을 배우게 되었다. 아이를 통해 좁은 세계가 확장되고 사물을 세세하게 보게 되는 경험을 한다.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