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의 <밤의 밀렵>

인간의 야만성과 묵인되는 폭력에 대해

by 핑크리본

하성란의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재미있는 소설 하면 내게 우선순위로 떠오르는 책이다. 이년 전인가. 일반 독자 관점으로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소설의 전개와 장치와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책장에 꽂힌 책기둥을 더듬어 책을 찾아냈다.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에 실린 모든 소설이 재밌게 읽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엇을 다시 읽을까, 목차를 눈으로 읽어 내려가던 중 <밤의 밀렵>에서 잠깐 멈추었다. 어떤 이야기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와중에 재밌었던 느낌이 남아 첫 번째 재독 소설로 낙점되었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알았다. 왜 이 단편이 읽고 싶었는지. 처음부터 소설의 배경인 시골이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줄줄이 늘어선 보양식집과 그곳에서 내뿜는 김이 선연하게 그려졌다. 보양식집에서 풍기는 냄새까지 나는 듯했다. 언젠가 본 적 있는 산 아래 풍경. 순환수렵장이라는 장소가 신선했다. 그곳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으므로.


박기철이 죽었고, 전임자는 조사 도중 사건을 '나'에게 이관했다. 전임자는 왜 중도포기했을까. '나'가 박기철의 사망 사건을 이어 밝히는 상황이라 궁금증이 더해졌다.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 나의 주관적 견해지만, 나는 여러 해 책을 읽으며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이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아닌가 한다. 재미가 없으면 읽는 게 곤혹이고 결국 완독하지 못하게 된다. 사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읽는 도중 포기했고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다시 도전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고통이 쌓여가는 이야기. 그렇기에 노벨상을 탄 것이겠지. 제주 4.3의 고통을 독자가 온전히 경험하게 만드는 문장의 힘에 경의를 표하지만 흥미롭게 책장을 넘기지는 못했다.


소설 곳곳에서 소재가 포착되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밀렵 : 이 순환수렵장에서 밀렵이 자행되는 이야기겠군, 이라 짐작했으나 책은 동물 사냥을 넘어 인간 사냥을 암시한다. '숲을 헤매면서 제일 두려운 것은 멧돼지도 곰도 호랑이도 아닌 인간'이라는 것. 김진성은 술에 취해 박기철을 사냥했고, '나' 역시 죽을 뻔하게 된다. 나 역시 세상에서 가장 난해하고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어둠과 숲 : 밤은 선생일 수도 있지만, 내 맘 속 깊은 어두운 면이 드러나는 시간일 수도 있다. <밤의 밀렵>에서 숲 속 어둠은(밤은) 무법 지대이며 그곳에서 인간의 잔혹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송이버섯 : '나'가 김진성에게 쫓기며 비로소 발견하게 된 송이버섯. '나'가 송이버섯을 찾기까지 '나'는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진흙밭을 건너고 둔덕을 오르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고 총성이 울리고 있었다. 더 많은 돈과 이익을 얻기 위해 진흙탕 싸움도 마다 않는 인간의 탐욕을 보여주는 듯하다. 인간의 탐욕을 송이버섯으로 보여주다니.


시골사회 : 김진성의 잔혹함을 김씨 종갓집 사람들과 모두는 묵인한다. 두려워서. 김씨 종갓집 사람들을 노루와 닮은 것으로 묘사한 것도, 박기철을 노루에 비유한 것도 모두 소설 속 장치. 폐쇄적 시골 사회는 폭력이 일어나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침묵의 공간이다. 현대의 도시가 아닌 작은 시골을 배경으로 설정한 것이 신선했다. 사실 작든 크든간에 인간 사는 곳이면 어디든 묵인은 일어날 수 있다.


하성란은 인간의 잔혹함과 수월한 침묵을 꼬집기 위해 어떻게 밀렵과 시골과 송이버섯 등을 떠올렸을까. 인간의 잔혹함과 수월한 침묵은 떠올리기 쉬운 주제이지만 그만큼 신선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하성란을 소설가들의 선생님이라 칭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나'는 서울로 돌아가 김진성에게 죄를 물을까. 그 역시도 보고 경험한 것을 은폐할까. 나 역시도 자유롭지 못한 질문이다. 노루처럼 겁이 많고 목소리가 작은 나도 이 질문에는 말을 아끼게 된다.


[책 속 발췌]

종갓집 김씨도 지나가는 말로 여러 번 밤에 나다니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노루 박기철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총구가 불길을 내뿜었다. 총에 빗맞은 자갈이 튀어 올랐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총은 허가가 나지 않은 총이 분명했다. (p.138)


아무튼 그날 숲을 헤매면서 내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멧돼지도 곰도 호랑이도 아니었다. 나는 숲 한가운데에서 인간과 맞닥뜨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중략) 전임자는 다 알고 있었다. 위험을 느끼고 중간에 일을 그만둔 것이 확실했다. 비 오는 겨울밤 인적인 드문 숲에서 무슨 일들이 자행되는지. 개새끼. 전임자 그 새끼는 정작 가장 중요한 그 사실을 내게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p.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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