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나의 징크스

by 초무으야우

나에겐 인정하고 싶지 않는, 그러나 인정하는 믿음이 하나 있는데, 바로 누군가를 싫어하면 원치 않을 때에 무조건 마주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 깊이 상대에 대한 악감정이 쏟아오를 때에도 어딘가에서 마주칠까 봐 애써 감정을 안 느끼려, 혹은 지우려 한다. 왜냐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데, 내 감정 제어가 안돼서 이 사람을 또 보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싫어하는 상대 앞에서는 나의 자아 중에서 가장 차갑고도 이성적인 자아를 꺼내서 사용하는데, 철저히 미래의 나를 위한 현재의 내가 보내는 예방책 같은 것이다.


왜 이런 믿음이 있냐고 묻는다면, 실제 믿기지 않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제일 기억나는 것 하나를 공유하자면 고등학교 때, 반 전체와 사이가 틀어져 우리 반 전체와 손절한 친구 S가 있었는데, 나는 S를 꽤나 미워했다. 그 친구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상대와 자신을 비교해서 우위를 얻어야 자존감을 챙길 수 있는 아이였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친구는 본인이 우위가 될 수 있다면, 어떤 비교도 서슴지 않았다. 살아온 배경, 성적, 연애 등등.. 나는 그 친구와 중학교도 동창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는 유난히 나와 본인을 비교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 친구와 있으면 있던 기력도 다 빨리는 기분이었다. 3년 같은 반을 거치고, S와 나는 서로 타 지역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는 볼일이 없게 되었다. 그렇게 잊히던 도중 나에게 울산에 가게 될 일이 생겼는데, 울산으로 갈 준비를 하던 도중 엄마가 뜬금없게 그 친구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왜 엄마는 느닷없이 S의 안부가 궁금했을까. 순간 S에 대한 미운 감정들이 이상하게 날것 그대로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다시 볼일이 없을 거라 믿고 올라오는 미운 감정을 주체하지 않고 느꼈다. 감정을 그냥 봇물 터지게 두고 그 친구를 완전히 미워해서 그런지, 그렇게 나는 울산을 가다 들린 김해휴게소 편의점에서 S와 마주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 만에 보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도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내가 늘 피하고 싶었던 지도교수님을 서촌에 있는 어떤 식당에서 잠깐 언급해서 인상을 찌뿌리는 순간 거짓말 같게도 가게 통유리창 옆으로 지도교수님이 지나갔다. 그리고 교수님과 3초간의 눈 마주침. 학교가 있었던 신촌을 떠나 마음 편히 그에 대해 뒷담을 하자마자, 그가 등장해 버리다니. 난 그때 내가 진정 트루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아, 이 세상에서 맘껏 미워하면 만나게 되니 망했다고 생각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나는 이 속담이 그저 나온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하나의 징크스이다. 악의의 감정은 결국 사람에게 어떤 표식을 새기는지, 나는 이상하게 싫어하는 사람을 피하려고 돌아간 길에서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 물론 우연에 우연이 겹쳐 나의 악연들을 마주치는 것이겠다만.


난 이 징크스를 깨기 위해 어떠한 악연도 만들지 않으면, 누구도 꺼려하지 않을 것이고, 당황스러운 상황도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며 역발상도 해보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냥 외나무다리에서 강해지는 방법을 익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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