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큰 위로를 얻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내가 겪은 이 일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리고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혼자 고립되지 않고 인터넷에서라도 작은 유대가 생겼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생각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 본질을 알지 못했고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이들조차 공감하지 못했다. 사실 가해자의 갑질보다도 공감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 나를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었다. 갑질은 가해자뿐만 아니라 조직이라는 시스템과 그 안에서 방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복합적인 문제였다. 단순히 폭언을 했다, 안 했다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방관했던 사람들은 이 문제에 공감하는 순간 이 조직의 곪은 상처를 마주해야 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았다. 조직이 곧 나이며 내가 조직인 사람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그 상실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공감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도 그저 추측일 뿐이다.
'당신이 힘든 건 힘든 거지만 나는 내 조직이 더 중요해.'
매 순간마다 그들은 이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 것 같았다. 공감능력은 이 조직에서 일을 하려면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하는 것이었다.
퇴사하고 나오면서 이 문제에 공감하고 행동했던 공무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왔다.
꼭 버텨서 쭉쭉 승진하시라고.
분명 힘들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짊어져야 할 그 무게도 더 늘어나는 것이다. 그저 모른 척하면 아무도 모를 일에 나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다. 타인의 감정에 에너지를 쏟는다는 건 꽤 힘든 육체노동의 강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감능력 없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가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뻔히 알 수 있지 않은가.
타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는 일. 굉장히 단순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하고 단순해서 없어도 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굳이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공감은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에서 분명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가 되는 건 순식간에 벌어질 수도 있고 바로 내 옆의 사람이 고통에 몸부림쳐도 모를 수가 있는 것이다.
나의 이 어두운 이야기에 공감을 얻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놀라운 경험이었고 눈물겨웠다. 그리고 공감은 정말 소중하고 고귀한 능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