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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아오 Mar 16. 2023

자소서에 자기를 소개하는 방법

재능마켓 플랫폼에서 자소서를 첨삭한 지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한 달에 10~20건을 첨삭하고 있다. 초기에는 이 서비스를 일시정지 하기도 했다. 남의 글을 읽고 그 사람에 맞게끔 수정하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었다.


지금은 다르다. 자소서의 질문이 어떤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이 사람을 어떻게 담아내야 할지 척척 알 수 있다. 네 문항 자소서에 투자하는 시간은 단 몇 시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의 성격을 재빠르게 파악해 그 대신 어필할 수 있다.




의뢰받은 대부분의 자소서는 공통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성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내용이 윗 문장으로 귀결된다. 성실하다의 기준은 뭘까? 얼마나 일을 잘해야 책임을 다하는 걸까? 몽땅 두리뭉실한 표현이다. 자신이 성실하고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주변에 있는 친구는 어떤가? 저 문장을 누구에게나 갖다 붙일 수 있다면 자소서에 결코 쓰면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갖다 붙이지 못하는 문장을 나에게 써야 한다.


그래서 자소서를 첨삭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원자의 성격 파악이다.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일 수록 좋다. 이를 테면 '생일 축하 카톡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내성적이지만 협동할 때는 의견을 확실히 내세운다.'라든지 '한 달에 한 번 나가서 놀 정도로 집돌이에 내성적이지만 일할 때는 말을 잘 붙여 영업 수완이 좋다'라든지 말이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자신의 성격을 짚어내야 한다. 자소서는 말 그대로 자신을 소개하는 서류. 나를 세밀하게 알지 못하면 남에게 소개하긴 글렀다고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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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다들 '문장력이 부족하다'라고 착각한다는 점이다. 요즘 TV광고에 문해력 수업이 등장할 정도로 글쓰기와 읽기 수준이 많이 저하된 걸 실감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부족한 건 이야기를 서술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했던 일을 서술하시오'라는 문항이 있다. 대부분의 지원자는 "알람소리에 일어나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씻은 다음에 출근했습니다."라고 작성한다. 자소서는 이렇게 쓰면 안 된다. 읽는 사람이 지원자의 일상을 영상처럼 떠올릴 수 있도록 써야 한다.


한 번 예시를 들겠다.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탓에 아주 시끄러운 일렉트로닉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납니다. 잠이 덜 깨 몽롱한 상태로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찬물로 세수를 합니다. 그러다 눈이 좀 떠지면 미지근한 물로 샤워까지 합니다. 화장품은 스킨과 로션을 손에 펴 바르는데, 날씨가 건조하거나 얼굴에 푸석한 감이 있으면 크림까지 덧바릅니다. 옷장 앞에서는 의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상의와 하의가 어울리는지 옷을 몇 개나 입어보며 거울로 살피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상하의 밸런스가 잘 맞으며, 다른 날에 겹치지 않는 옷이 발견되면 급하게 양말과 신발을 신고 후다닥 집을 나섭니다. 옷을 입다가 지각을 할 뻔했으니까요."


자소서에 담기는 모든 에피소드는 한 번 이렇게 자세히 써 볼 필요가 있다. 그다음에 정리를 한다면 보다 멀끔하게 이야기를 서술할 수 있다. 마지막에 이 경험으로 느낀 점을 덧붙이자. "아침잠이 많아 하루의 시작은 느릿하지만 마지막에 최대한의 속력을 내기 때문에 복장의 완벽함과 출근 시간을 무조건 지킬 수 있었다."처럼 말이다.




마감에 임박해 벼락치기를 하지 말자. 채용 공고가 뜨기를 기다리지 말자. 취준생이라면, 이직준비생이라면 한가로운 주말에 자신의 경험담을 에세이처럼 써보자. 에세이가 거창해 보인다면 일기를 써보자. 아니지, 일기라기보다는 연기를 써보자.


20~30년을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들을 추억할 겸 시간순으로 작성해 보자.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계기라든지, 아침을 거르게 된 이유라든지, 유난히 좋았던 카페의 데이트라든지 추억거리가 될만한 이야기들을 한껏 풀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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