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 (道東書院)

서산서원, 무진정, 함안향교, 입곡저수지, 빅트리 (Big Tree)

by 강동회

만추지절에 단풍과 노랗게 물들었을 은행나무를 찾아다녔습니다


거의 매년 보는 풍경이지만 도동서원의 진가는 딱 지금 이 시기이죠


2년 전의 모습을 링크해 볼까요!


도동서원 링크 ; https://story.kakao.com/_eTZCf4/0LC2pOaoS60



해가 뜨기 전에 도착했는데도 진사분들이 장사진입디다


거대한 삼각대에 최고급 카메라를 펼쳐 놓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데 마치 해가 올라오면 쏘아서 없애버리기라도 할 기세입니다


나무 가까이에서 폰카로 사진을 찍어 보겠노라 얼쩡대기라도 하면 나가 달라고 얼마나 타박을 하던지


싸워서 이길 수는 없고

[이 은행나무가 니끼가?]

중얼중얼하며 못 들은 척하고 목적달성을 했지라


결과물이 고 퀄리티이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일 텐데요

찍어서

팔아먹을 거라면 어차피 뽀샵을 할 것이고

개인 소장용이라면 사람도 풍경인데 뭐가 그리 못마땅할까?


딸랑 한 장 올려서 SNS에 과시하려고 찍는 거라면

그 비싼 카메라가

단출한 폰카에 비해

그림의 변별력이 탁월할까요?



도동서원 은행잎의 노랑 물결은 야들야들하여 초 절정을 이루었으나 정말 보기 좋은 풍경이 되려면 며칠 더 익어서 18일이 되면 환상의 모습이 되지 않을까 짐작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잎이 30%쯤은 떨어져서 바닥을 채우고

70퍼는 하늘을 물들이며 새까만 줄기가 듬성듬성 보일 때, 가장 보기 좋은 모습이라 간주합니다


여기에 햇살이 은행잎을 파고들면 반짝반짝 빛나는 그야말로 황금빛깔이 되죠



도동서원은

성리학의

도(道)가

동(東)쪽으로 와서 머문 곳이라는 의미이고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멘토로 삼았죠


도동서원의 상세 설명은 아래 링크로 갈음합니다

https://story.kakao.com/_eTZCf4/F5R4Onj2Rv0



#서산서원 (西山書院)


자리를 옮겨 생육신을 제향한 서산서원에 당도했습니다


생6신은

이맹전

조려

원호

김시습

성담수

남효은입니다


서산서원이 하필 이곳에 있는 이유는

바로 옆에는 [채미정]이 있고

7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어계 고택이 있는데요

조려 선생이 머물던 곳이어서 그렇습니다


즉, 생육신을 모시긴 했으나 조려 선생이 최대지분인 거죠


조카 단종을 죽인 세조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낙향,

냇가(溪)에서

고기(漁)나 잡으며

채미정을 짓고 학문에 증진했던 조려 선생의 서산서원은

김굉필 선생의 도동서원 보다도 년배가 훨씬 윗세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동서원보다 건물이 더 젊고 서원 고유의 건물 배치에 따른 것은 조려 선생의 후손들이 서산서원을 복원했기 때문이네요


대부분 서원 건물의 배치는 함양에 있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남계서원 Lay-out을 본뜬 것이죠


물론

도동서원도 남계서원의 건물 배치를 그대로 밴치마킹한 겁니다


채미정의 압권은

백세(百歲)와 청풍(淸風)의 현판인데요

백세동안 부는 맑은 바람이란 소리죠


한 세대를 30년으로 보니까

100세면 3천년이군요


오랜 세월의 맑은 바람이란

곧, 절개가 굳은 선비를 상징합니다


절개를 표방하는 선비의 1세대는 중국 최고의 역사서 사기(史記)에 나오는 백이와 숙제인데요

연유가 뭔지 아래 링크를 참조해 보십시오


백이숙제 링크 ;

https://story.kakao.com/_eTZCf4/gVWLXpcDi60




#무진정 (無盡亭)


조선시대의 문신,

무진(無盡) 조삼(趙參) 선생이 후진 양성과 여생을 보내기 위해 이곳에 터를 잡았군요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웠네요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 했답니다


다함이 없다는 기풍이 참 호연(浩然)하네요


서산서원

채미정

어계고택에서 15km쯤 떨어진 곳인데요


무진 조삼 선생은

어계 조려 선생의 손자였습니다


어겨 선생의 할아버지는 금은(琴隱) 조열 선생이군요

호에 숨을 은(隱) 자가 들어 있네요


이성계가 고려를 엎어버리고 조선을 세우자 이에 항거하여 두문동 72현이 되었고

함안으로 낙향하여 명문 함안조씨의 일가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의 손자 조려 선생은

세조의 계유정난에 반대하고 단종을 추종하다가 실패하자 함안으로 낙향하여 채미정을 지어서 학문에 증진했고요


조려의 손자

조삼 선생은 뭘 했길래 낙향했을까요?


연산군 시절에

무오사화와

갑자사화가 일어났죠

사화란 선비가 화를 입었다는 뜻인데 많은 선비들이 죽거나 유배 가거나 파직되었죠


사화에 유자광이 깊숙이 관여하였는데 조삼은 이 유자광을 엄벌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올렸고

양대 사화를 보면서

벼슬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낙향했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이 집안은 백세청풍을 실천한 것 같습니다


조열은 태조에 항거했고

조려는 세조에 반대했으며

조삼은 연산군에게 반기를 들었네요


이곳에는

매년 4월 초파일에 [함안 낙화놀이]가 열린다고 합니다


참나무 숯가루를 매달아 불을 붙이면 불이 꽃가루처럼 물 위에 날리는데 조선 선조 때 함안군수로 부임한 정구 선생이 군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하는군요(?)


정구 선생은 도동서원에 있는 은행나무를 심었던 분이죠

좀 전에 보았던 바로 그 은행나무입니다


내년에는 함안 낙화놀이를 참관해 봐야 되겠습니다



#함안향교 (咸安鄕校)


향교는 조선 시대의 초, 중, 고의 국립학교입니다

함안 지역에 있으니까

함안향교이고요


성리학

즉, 유교를 교육하는 곳인데요


그렇습니다

공자 왈

맹자 가라사대를 가르치는 것이 목표인데

조선의 구석구석에 좋은 선생님을 배치 할 만큼의 명망 있는 선생도 드물고 재정적 여력도 부족하여 점점 퇴락해 갈 때 서원이 등장한 것이죠


서원은 다분히 사립학교의 성격이며 모시는 멘토가 당대 최고의 학자였으니 향교보다는 서원으로의 쏠림현상이 심해졌고


조선 후기에는 급기야 서원이 사회악의 온상이 돼 버렸죠


이를 철폐해 버린 사람이 흥선 대원군 아닙니까


하여간

서원 때문에 향교가 물을 먹었지만 어엿한 교육기관이었고 공자 맹자를 지향하는 학교였습니다


향교 건물에는 대체로

명륜당과

대성전이 있죠


함안향교도 정구 선생이 등장하네요

파수리(?)에 있던 것을 159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온 분이라고 합니다


은행나무가 6그루나 있던데 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입곡저수지


귀가하는 길목이어서 둘러보았습니다만 차량과 탐방객의 인파가 장난이 아니더군요


단풍과 저수지의 물이 만나는 곳인 만큼 찾는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겠죠


가족단위가 많다는 건

참 편하다는 느낌 때문일 겁니다


입곡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데 한 사간쯤 걸렸습니다

운치도 있고

걷기도 좋고

잘 꾸며 놓았던데요



#빅트리


여러 곳을 답사했는데도 집 근처에 오니 오후 4시 20분이데요


아!

이참에

새로 생긴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창원의 랜드마크 [빅트리]에 올라가 보자


실은 집에서 걸어가더라도 2km 남짓입니다


빅트리가 있는 자리는 얕은 야산이지만

창원시에서 동서남북으로 거의 중앙에 위치합니다


그러니

어디서나 잘 보이겠죠

위치로 봐서는 창원의 랜드마크를 세워도 좋을 만큼의 입지적 조건은 충분했을 겁니다


자연 녹지를 허물고 민간업자에게 아파트를 분양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대신에 창원시민을 위해 걸출한 구조물을 하나 세워서 창원시에 기부하라는 조건부 허가(?)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344억 원짜리 빅트리라는 것이죠


저는 저녁에 운동삼아 6km 정도 거리를 배회합니다

운동장을 돌다가 지루해서 조용하고 한적한 거리로 나선 것이죠


빅트리가 잘 보입니다


장막을 벗고 나타난 건물을 보고는

기절초풍

파안대소를 넘어

요절복통을 했습니다


대체 창원시민을 뭘로 보고!

기획자의 실력이 저 정돈가!


컴컴한 야산의 정상에 시커먼 물체는 추한 정도가 아니라 괴기스럽더군요


참 이상도 하다


라고 느끼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창원을 넘어 서울에 있는 방송에서도 난리가 났다데요


흉물이라고 뜯어 내라는 원성이 빗발치는가 봅디다


그래서

가 보았죠


여러 부분이 연동보다는 개별적인 느낌이었고

불협화음과 같다고나 할까

불편함과 가성비가 사뭇 떨어지는 부조화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전망대의

인조 나무는 16그루였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나무들의 짝퉁인데

소나무

향나무

매화나무

팽나무였습니다


심지어는 이미 죽고 없는 왕소나무도 표현해 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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