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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갱 Dec 02. 2018

낡은 취미



필름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한번 둘러보려고 했는데 남아있는 게 몇 장 없다.
백업해 놓지 않아서 고장 난 노트북이나 모두 CD 안에 있으려나..
필름 카메라로 찍는 사진은 핸드폰이나 디카랑은 다르게 한 장 한 장 공들여 찍었기 때문에 좀 더 의미 있는 사진들인데
왜 이렇게 대책 없이 보관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이다. CD 안에 있는 사진들은 어떻게 백업한담.

좋아하는 세 가지를 나열하자면 커피, 그림 그리고 사진. 세 가지 중에 수익활동을 한 적이 없는 유일한 일이 사진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참 좋아했다.
엄마가 일본에서 산 쪼매난 똑딱이 디카로 싸이월드에 사진폴더를 만들어서 올리곤 했었다.
20살 때 처음 필름 카메라를 사서 찍었다. 그땐 스캔을 몰라 인화를 했었고 이후에 CD로도 구워준 다는 걸 알게 되어
CD로 요청했다. 당시에 동네 사진관 몇 군데에선 필름 현상을 해주는 곳이 있기도 했는데 가던 사진관에서 더 이상 현상을 받지 않는다고 했던 때가 2012,3년쯤 되는 것 같다.(이렇게 적으니까 굉장히 나이 든 사람 같군..)
사진을 한창 많이 찍을 땐 10롤씩 꽤 자주 주문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10롤을 주문하면 다 쓰는데 일년은 걸리는 듯 하다.

얼마 전 지인이 해외취업을 하게 돼서 출국 전날 약속을 잡았다.
매력 있는 얼굴의 친구라 예전부터 자주 사진 찍자고 얘기 하곤 했는데 한국에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니 그때서야 사진기를 챙겨 나갔다.
아주 오랜만에 수동 필카를 챙겼다. 똑딱이 카메라에 익숙해져 수동으로 찍는 것이 어색해 필름 감는 걸 계속 깜박했다.
그럴 때마다 '그러고 있어!'라고 외치고 재빨리 필름을 감고 다시 셔터를 눌렀다.
어색했던 첫 롤을 다 찍고 필름 교체를 하기 위해 들어가 있는 필름을 감고 빼 냈더니 필름이 다 망가져 있었다.
황당해서 '카메라가 맛이 갔나 봐.' 했는데 알고 보니 필름 감기 전 눌러야 하는 버튼을 누르지 않아서 필름이 망가진 거였다.

예쁜데서 찍은거 많았는데..

사진을 찍을 땐, 가로보단 세로 구도. 자연광에서 그림자를 활용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실내에서 어둑어둑한 조명 아래에서 찍는 것도 좋아한다. 플래시를 터트리는 건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풍경보다는 특정 피사체를 찍는 게 좋다.
사진을 찍고, 귀찮아하며 현상하지 않다가 먼지 쌓인 필름 통을 한참 뒤에 발견해 그때야 현상을 맡긴다.
촬영한지 오래되어 가물가물한 기억을 스캔 한 사진들을 보며 추억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 몇 장을 SNS에 게시한다.
이 소소한 과정들이 나는 꽤 재미있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며, 잘 할 필요 없고 하고 싶을 때는 얼마든 즐길 수 있는.
내 낡은 싸구려 카메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취미를 즐길 수 있다.  

친구를 촬영하는 내내 셔터가 안 닫혀 사진이 찍히지 않을 때가 많아 애를 많이 먹었다.
맛이 가긴 갔구나. 자주 안 찍으니 고장 날 만도 하지.
갖고 있는 카메라들 중에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다.
조만간 새 필카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괜찮은 걸로.

아. 사진 찍고 싶다. 잘생긴 남자를 찍고 싶다 생각했는데 사실 누구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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