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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07. 2020

자연은,, 속으로 봄을 맞는다

아이들이 놀던 솔가지와 솔방울들이 정겹다.(사진:이종숙)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이다. 이곳 날씨는 개구리가 밖을 보다가 다시 잠자리로 들어갈 정도로 춥다. 영하 8도의 쌀쌀한 날이다. 아침에 손주들을 등교시키기 위해 학교로 가서  시작종이 울리기 10분 전에 학교 운동장에서 기다리는데 너무나도 추웠다. 모자도 쓰고  장갑도 끼고 목도리도 둘둘 말았는데 체감온도는 아마도 영하 십도 이하인 듯 엄청 추웠다. 그래도 아이들은 신나게 논다. 소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 솔가지와 솔방울을 주어다 쌓아놓고 불을 지피는 시늉을 하며 논다. 아이들은 정말 순수하여 아무것도 아닌 작은 것 그야말로 별것 아닌 것들을 가지고 진지하게 논다. 멀리서 친구를 부르며 반갑게 달려온다. 매일 보고 만나도 여전히 좋기만 한 표정이다. 몇 명이 함께 놀더니 멀리서 가만히 서 있는 친구를 불러서 함께 놀자 한다.

시작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학교로 달려간다. 손주들의 가방을 건네주고 산책을 함께 하기로 한 친구 부부를 만나러 갔다. 스키장 옆에 있는 '스노 밸리 ' 에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한번 산책길로 접어들면 화장실이 없으니 가기 전에 건물에 있는 화장실을 갔다. 건물에는 스키를 타기 위해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머리가 하얀 노인들이 스키를 타려고 한참 준비 중이다. 겨울이 긴 이곳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 중에 하나가 스키다. 오래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 데리고 스키를 타러 자주 왔지만 어디라도 다치면 일을 못하게 되면 큰일이기 때문에 결국 배우지 못한 채 청춘이 갔다. 지금은 스키를 타다가도 그만 해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 스키장 옆을 지나칠 때마다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스키하고의 인연이 없다 생각이 들지만 아직 미련은 있다. 스키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산책길로 접어들었다.

계곡이 봄을 맞아 눈을 녹인다.(사진:이종숙)

시내에 있는 곳이라 여러 번 왔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한번 왔다 간 뒤로 처음 왔는데 입구부터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커다란 트랙터와 장비들을 세워놓고 땅을 파고, 땅을 밀고, 고르게 펴기도 하며 정신이 없다. 아침에 그토록 춥던 날씨는 조금씩 풀려 걷기에 좋은 날씨가 되었다. 공사 관계로 땅은 울퉁불퉁하여 걷기가  많이 힘들었지만 눈길이 나올 때까지 열심히 걸었다. 하늘은 높고 파랗다. 나무들은 여전히 서로를 지키며 나란히 서 있고 새로운 하루를 말없이 받아들인다. 며칠 전 그토록 심한 바람이 불었는데 굳건하게 자리를 지킨다. 나무 하나가 굵은 나무 사이에 힘없이 쓰러져 기대고 있다. 얼마를 그렇게 서 있었는지 모른다. 쓰러지는 이웃을 보듬어 안고 있는 나무가 옛날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민 생활은 이민 배의 희생으로 다져진다. 먼저 개척하신 이민의 길로 이민 후배들의 길잡이가 된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의 힘든 생활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두렵고 무서운 나날의 연속으로 쓰러 질 것 같은 시간을 옆에서 보듬고 용기를 주신다. 전화도 자주 못하던 옛날에 고국의 식구들이 보고 싶고 그리울 때 그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정성으로 힘과 용기가 생겨 다시 버틸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게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주시고, 틈틈이 우리를 불러서 맛있는 음식을 해 주시며 향수병을 위로해 주시던 분들이 있어 살아갈 수 있었다. 서로서로 어우러져 서 있는 정겨운 나무들을 보며 이웃들의 따뜻한 배려가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새삼 느낀다.


눈이 녹아가는 산책길이 다람쥐들의 놀이터가 된다. 어느새 나무 기둥에는 눈이 녹아 마른땅이 보인다.  다람쥐들은 나무를 오르내리며 봄소식을 전하기 바쁘다. 사람들이 놓아둔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며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신경도 안 쓴다. 추운 겨울 동안 배가 무척 고팠었나 보다. 햇살이 내리쬐는 숲 속은 이제 찬란한 봄을 맞는다. 작은 다리를 건너본다. 계곡물이 녹아서 흐른다. 머지않아 수달도 나와서 수영을 하며 놀을 것이다. 지난여름에 왔을 때는 수달이 나무집을 지어놓고 왔다 갔다 하며 놀고 있었다. 아침에 추워서 개구리가 다시 들어갈 것 같았는데 숲 속에 와서 보니 경칩이 온 것 같다. 새소리도 들리고 학생들이 스키를 타며 숲 속의 정적을 깨뜨린다.

계곡 옆으로 눈이 많이 쌓여 있다. 계곡 입구에 커다란 돌이 놓여 있는데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한 돌이다. 이름과 태어나서 죽은 날짜를 돌에 새겨 놓았다.  계곡과 숲을 보며 죽은 이와 그를 그리워하는 산이를 위해 잠깐 묵념을 해 본다. 봄여름에는 산에 피는 꽃을 보고 가을에는 단풍을 보며 겨울에는 하얀 눈 속에서 지나가는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 살아 있는 동안 그리워하며 만나지 못했던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다 생각이 든다. 그 옆으로 돌아서 보니  엄청 긴 파이프가 높은 계곡을 가로지르며 놓여 있다. 사람이 걸어갈 수 없고 그 옛날에 오일을 옮겼던 긴 파이프 같다. 양쪽에 손잡이까지 있는데 기회가 되면 언제고 한번 가까이 보고 싶다.

이제 조금만 걸어가면 화장실 건물이 나온다. 화장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고급이다. 넓고 쾌적하여 감탄사가 절로 난다. 역시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이다 보니 모든 것이 다 풍족하다. 이 화장실 건물을 기점으로 여러 갈래의 산책길이 있다. 강 쪽으로 난 길이 있고 계곡으로 난 길이 있다. 한쪽은 수백 개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동네길로 나간다. 주중에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책을 하지만 주말에는 주차장이 꽉 찬다. 어디서 몰려오는지  사람들이 모여든다. 여름에는 바비큐도 하고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 오고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온다. 심심해서 걷고 할 일 없어 돌아다닌다.

돌아서 가는 길은 같은 거리도 시간이 짧게 걸린다. 집에 가는 길은 마음이 가벼워서 그런가 보다. 오랜만에 친구와 함께 한 산책길이 기쁨이 넘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서 손주들 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친구들과의 만남이 뒤쳐지는 느낌이지만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음에 다행이다. 오며 가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오랜만에 즐겁게 산책을 했다. 입구에 보수공사로 인해 약간 힘들었지만 공사가 다 끝난 뒤에 한번 더 오기로 약속하며 헤어졌다. 개구리를 만나지 못한 경칩이지만 맘에 맞는 친구와 함께 한 산책길에 포근한 봄바람이 스쳐간다. 천천히 속으로 오는 봄을 만난다.

속으로 속으로 봄을 맞는 자연의 모습은 아름답다.(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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