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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08. 2020

말은,,,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보기만 해도 좋은 노란색 해바라기(사진:이종숙)


총칼보다 무서운 것이 사람의 말이다. 무심코 한말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된다. 고운 말과 친절하고 따뜻한 말이 있는가 하면 냉정하고 직설적인 말이 있다. 빙빙 돌려서 하는 말이 있고 비비 꼬며 비아냥거리는 말이 있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을 말해준다. 신경질적으로 허탈한 말을 하거나 화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무언가 힘든 문제가 있다. 어쩔 수 없이 웃는 얼굴로 대하더라도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면  은연중에 하는 말로 힘든 상황이 드러난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는 말이 어쩌면 진실에 가까울 수 있음을 배운다. 평소에 특별한 감정이 없이 무심코 하는 말은 어쩌면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주는 줄도 모르며 하는 대화도 있다.

사람들은 보고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솔직한 표현을 하면 싫어한다. 아무리 상대를 위한 진심 어린 말이라 해도 그 말로 인하여 상처를 받고 기가 죽는다. 진실한 충고란 상대의 기를 죽이고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싫다 나쁘다 잘못했다 를 표현하는 것도 표현방식에 따라 다르고 결과가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충고도 그 한 사람의 의견일 뿐 완벽한 길은 아니다. 꽃 한 송이 나무 한그루를 보아도 느낌이 다른데 사물을 보는 사람의 사고방식은 차이가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데 한 면만 보고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며 말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총칼과 다름이 없다. 좋은 날에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궂은날에 삶의 희열을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과의 교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게 사람이 다. 특히 교류의 종류가 많고 넓어진 요즘엔 여러 가지로 소통을 한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이 내가 한 말로 둔갑하기도 하고 그 자리에 없던  내가 그곳에 있던 사람이 되기도 한다. 무심한 듯 뱉은 말의 힘은 천리를 돌아다니다 내게 다시 돌아오는 기가 막힌 상황이 생긴다. 그것이 비록 훈훈한 이야기가 된다 하더라도 기분이 별로인데 나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면 멀쩡한 대낮에 죽임을 당한 것이 된다. 크고 작은 공동체에 많은 사람들이 산다. 좋은 일, 안 좋은 일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재미로 하는 이야기는 한마디로 살인행위와 다름이 없다.

편한 세상이 되다 보니 심심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넘쳐나는 시간을 어찌할 수 없어 끼리끼리 만난다. 만나서 수다 떨고 식사하며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은 결국 험담이 된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모두가 힘든 세상이다. 하다못해 유치원생도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이니 어른들은 오죽하겠는가 마는 도마에 놓고 자근자근 다져야 하는 고기도 아니고 뚝뚝 잘라야 하는 생선도 아니니 사람 가지고 요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공평한데 적게 가졌다고 조금 배웠다고 남보다 낮은 자리에 있다고 무시하면 안 되지 않은가? 어쩌면 그것을 바꿀 수 없기에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유행어까지 생겼나 보다.

누구나 살면서 말로 실수하며 살아가지만 눈 한번 질끈 감고 침 한번 삼키다 보면 그 순간에 나쁜 생각과 말이 약간은 정화되어 나올지 모른다. 조심해서 되지 않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좋은 말이 나쁜 말에 밀리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로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방향을 틀게 될지도 모른다. 말을 많이 한다고 잘난것도 유식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남을 헐뜯고 해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아름다운 일들이 너무 많다. 가까워졌다고 실없는 농담을 하다 보면 기분이 상하게 되고 급기야는 돌아서는 상황이 생긴다. 친할수록 더 조심하고 예의를 지켜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음을 안다. 친한 사이에 그런 말도 못 하느냐고 하겠지만 상대는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해'에서 '삼해'를 빼면 '이해'가 된단다.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고 하기 쉬운 말이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듯한 '삼해'의 의미는 크다. 너무 깊은 상처로 쉽사리 빠지지 않고 한없이 더 깊어질 수 있다. 살면서 오해 안 한 사람도 없고 오해받지 않은 사람도 없다. 이해하려고 애써보지 않은 사람도 없고 삼해를 뺄 수 없어 괴로워한 사람도 많다. 작은 일에도 두려워하고 의심하며 혐오하게 되는 요즘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아픔 인지도 모른다. 간사한 인간의 약한 모습이다. 쉽지 않지만 조금 물러서고 조금 다가서면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매사를 서로의 책임으로 돌리고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됨이 애석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도 서로를 미워하고 눈 흘기며 언성을 높이는 사례가 자꾸 많아져감에 실로 마음이 아파 몇 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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