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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Mar 09. 2020

3월에는,,, 봄 내음이 난다


봄을 숨겨버린 뒷뜰에 쌓인 눈(사진:이종숙)



늘 아침 기온이 영하 17도 체감온도 21도다. 3월 순의 날씨로는 참으로 추운 날씨다. 거의 매일 눈이 내려서 마치도 겨울로 되돌아간 듯하다. 결코 오지 않을 듯이 게으름 피우는 이곳 3월의 날씨는 해마다 이렇다. 오라는 봄은 뒷걸음치고 가라는 겨울은 꼼짝 않는다.  어젯밤부터 내린 눈이 오늘 하루 종일 계속 내린다. 뒤뜰은 완벽한 겨울이다. 사과나무와 앵두나무에 눈이 소복이 쌓여있다. 꺽다리 마가목 나무도 쭈글쭈글한 빨간 열매를 매달고 달달 떨고 있다. 사막의 모래처럼 눈이 고랑을 만들어서 더욱 겨울스럽다. 바람은 매몰차게 봄을 거부하며 불어대고 길을 걸어가는 노인의 발걸음은 자꾸만 빨라진다.


노인은 급하게 걸어가서  우리 집 앞에 있는 빨간색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간다. 편지가 없는 세상에 편지를 부치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만의 특별한 행위가 되었다. 그리도 기다려지던 편지는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길거리는 눈발이 날려 쓸쓸해 보이지만 내 마음은 봄을 품고 살아서 그런지 그까짓 눈 오려면 실컷 와봐라 하는 뱃장이 생긴다. 이젠 가기 싫어도 떠나가야 할 겨울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싫든 좋든 겨울은 가고 봄은 온다. 모습은 아직 겨울의 모습이지만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는 봄 내음이 실려온다. 해는 조금씩 길어지고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아무리 눈이 쌓여 있지만 완연한 봄이다. 양지쪽에는 눈이 녹아 무언가라도 땅을 밀고 나올 것 같다.


쭈글쭈글한 빨간 열매를 달고 떨고있는 마가목 나무(사진:이종숙)


늘은 높고 푸르며 나무들도 겨울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은은하게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참으로 오래 기다려온 봄인데 이미 와 있는 봄 인지도 모르며 마냥 기다리고 있다. 새들은 나뭇가지를 바쁘게 날아다니며 봄을 맞이한 지 오래다. 눈이 와서 길거리는 미끄럽고 날씨가 추우니 아직도 한겨울 코트를 입고 다니지만 우리들 마음은 어느새 봄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간다. 삐쭉삐쭉 자란 나무들은 가지를 쳐 주기를 기다리고, 여기저기 겨울이 남겨 놓은 잡동사니들도 치워주고 정리해주기를 기다리는 눈치다. 자연이 눈을 벗으면 할 일이 많다. 겨울이 가을을 제치고 와서 미처  떨어지지  못한  마른 잎들이 봄이 되면 새싹들이 밀쳐버린다. 마른 잎들은 힘없이 땅에 떨어져 잔디 위에 뒹굴어 다닌다. 낙엽도 긁어주고 잔디에 구멍을 뚫어주어야  잔디 속 공기 순환에 도움이 된다. 이맘때 눈이 오는 것이 싫다고 투덜대기는 하지만 이렇게  눈이 오고 추우면 병충해를 없애고 가뭄에도 좋다.


눈이 오는 밖을 내다보며 상상으로 봄맞이를 준비한다. 작년에 고추와 깻잎 그리고 상추 농사가 풍년이었다. 올해도 밭농사를 지어야 할 텐데 무엇을 할까? 뒤뜰에 눈은 하얗게 쌓여 있는데 마음은 벌써 오지 않은 봄 속에서 농사도 짓고 꽃을 심는다. 차고 옆에 조그만 텃밭에는 해마다 달래가 자란다. 꽤 오래전 몇 뿌리를 옮겨 심었는데 지금은 달래 밭이 되었다. 봄이 와서 눈이 녹자마자 파랗게 자라는 달래로 여러 가지 음식을 즐긴다. 빈대떡도 해 먹고  달래무침도 해 먹고  달래 된장국도 끓여 먹는 것을 생각만 해도 즐겁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봄의 날씨가 변덕스러워 5월 말에 모종을 밭에 심는다. 그래도 작년 봄에는 6월 초에 또다시 추위가 와서 고추 모종과 깻잎 모종이 다 얼어버려서 모종을 다시 사다 심었는데 그 이후로는 다행히 날씨가 좋아 풍작이었다.


겨울이 가기 싫다해도 가야합니다.(사진:이종숙)


이처럼 이곳의 봄은 늑장을 부리며 얼굴만 살짝 보이고 여름한테 자리를 내어 준다. 그렇게 왔다가는 봄이련만 사람들은 가을이 시작되면서부터 봄을 기다린다. 기나긴 겨울 동안 그 짧은 봄을 기다리다 보면 정신적으로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긴 겨울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간다. 겨울과 봄 중간인 1월에 보름 정도 따뜻한 곳에 휴가를 다녀오면 겨울이 그리 지루하지 않다. 우리도 일주일간의 멕시코 여행으로 조금은 덕을 보았다. 어쨌든 봄이나 겨울이나 때가 되면 다녀가는 계절이지만 힘겹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봄이  추운 겨울 보다야 훨씬 낫다는 것을 나이가 들을수록 실감한다. 겨울이 가기 전에 한번 더 벽난로에 장작을 때우며 겨울의 낭만의 시간도 가져본다.


벽난로의 장작이 불꽃을 피운다.사진:이종숙)


감기 때문에 기침으로 고생을 했지만  겨울은 잘 넘겼다. 몇 년 전 겨울에 허리도 삐끗했고 빙판에 넘어져 한 동안 엉거주춤하며 힘들게 보낸 겨울에 비하면 아주 양호했던 겨울이다. 봄은 인간들에게 아니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생물들에게 희망의 계절이다. 옛날보다 살기 좋아진 세상이라도 추운 겨울보다는 따스한 봄이 기다려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금씩 날씨가 좋아지면 마당의 눈도 다 녹을 것이고, 천지는 푸르름을 자랑하며 당당하게 서 있을 것이다. 기다림 속에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르는  봄타령을 하며 창밖을 보니 블루제이 한 쌍이 눈 쌓인 사과나무 가지에서  노래를 하며 봄을 전한다.


성당 옆뜰에서  기도하시는 성모님(사진:이종숙)

고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아픔에 고통스러워하시는 분들이 하루빨리 회복하시기를 바란다. 말로 할 수 없이 고생하시는 모든 의료진과 봉사원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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