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수없이 말한다

by Chong Sook Lee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세상은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하지 못한다. 우르르르 쾅쾅 번쩍 하며 천둥 번개가 친다. 후드득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금방 온 천지가 다 젖는다. 바람은 정신 놓고 서있는 나무들을 흔들어 대고 나무들은 휘청거린다. 이 무서운 바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화가 많이 난 천둥과 번개는 세상을 때리듯 마구 친다. 조금 전 까지도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서 커튼으로 가렸는데 해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디에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구름은 하늘을 까맣게 덮고 천연덕스럽게 능청을 떨고 비바람을 뿌린다. 갑자기 내리는 비로 목마른 대지는 본연의 냄새를 풍긴다. 흙냄새가 진동한다. 메말랐던 대지가 꿈틀거리며 닫았던 문을 열고 물을 마신다. 오랜만에 시원한 비가 내린다. 대지가 샤워를 하며 온갖 더러운 것을 씻고 다시 살아나고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와 오염된 도시를 닦아준다. 비가 끝이면 눈부신 햇살과 함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지금처럼 비바람이 치면 35년 전 이곳에 토네이도가 와서 동네가 쑥대밭이 되었던 날이 생각난다. 영어학교가 끝나서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고 버스가 왔다. 혼자 앉는 자리에 앉아 영어책을 꺼내놓고 이어폰을 끼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시험을 보고 다시 예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책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에 전기불이 켜졌다. 깜짝 놀라서 밖을 내다보니 세상은 칠흑같이 어둡고 버스 바퀴가 잠길만큼 비가 엄청 와 있었다.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이 토네이도가 왔다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려 급하게 아이들 어린이집에 도착하였는데 토네이도가 와서 주먹만 한 우박이 여기저기 뒹굴어 다녔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는데 정전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전화도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깜깜한 부엌에서 빵 한 조각씩 먹이고 한참 뒤에 전깃불이 들어왔다. 어둡던 세상은 다시 밝아지고 광명을 찾아 걱정하던 남편과도 통화를 하며 텔레비전을 틀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토네이도가 지나가서 동네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을 보고 아연실색하였다. 집이고 나무고 싹 쓸어버려 초토화된 처참한 현장 모습을 보며 기가 막혔다.


한순간에 불어온 회오리바람은 인정사정없이 동네 전체를 집어삼켰다. 역대급의 토네이도가 급습한 것이다. 1987년 7월 31일 금요일 날 토네이도로 인해 27여 명이 죽고 300여 명이 다쳤고 342억 불이 넘는 엄청난 재산피해가 있었다. 해마다 7월 달이면 한두 번씩 찾아오는 토네이도가 강타를 한 것이다. 그때 마침 영어 학교에서 토네이도에 대해 배워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뉴스로 비참하게 쓰러지고 뽑힌 나무와 집들을 보니 바람의 무서움을 보고 놀랐다. 집은 종이조각처럼 납작하게 땅에 쓰러져 있고 굵은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서 뒹굴고 멋도 모르고 자고 있던 사람들은 바람 따라 가버렸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토네이도는 한바탕 동네를 심하게 지나가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던 일이 있고 나서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순식간에 불어오는 바람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고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아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슬픔을 안고 산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블랙 프라이데이' 라 하여 그날의 아픔을 위로하고 기리는 행사를 한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어디에 토네이도가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아직도 밖은 깜깜하고 비가 쏟아지며 바람이 불어대고 천둥번개는 여기저기를 폭파하기라도 하는 듯이 요란하다. 세상의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것은 고마운데 특별한 일 없이 잘 지나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심한 비바람이 불고 난 뒤에 동네나 숲에는 심한 비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뿌리가 뽑혀서 쓰러진 나무들이 보인다. 자연이 하는 일을 알 수 없다. 마치 우리네 인생 같아 보인다. 잘 나가던 사람이 파산을 하고 죽지 못해 살던 사람이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일어서는 것을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나 자연이 하는 일이나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는 말이 맞다. 조금 전까지 난리 법석을 부리던 비바람은 어디론가 가버렸는지 하늘이 갠다.


인생도 자연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궂은일도 겪으며 살아가는 게 삶이듯이 비 온 뒤에 땅이 굳고 고난 속에 인생의 꽃도 핀다. 젊어서 모르던 것들을 나이 들며 깨닫고 받아들이고 순응하며 산다. 반항하고 거부하며 살던 날들이 순종하는 삶으로 바뀌어 간다. 이렇게 한바탕 쏟아진 비로 대지는 다시 힘을 얻고 푸르게 살아나듯이 고난 뒤에 지쳐있는 영혼도 눈부신 햇살로 새로 태어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지구가 자연을 통해 말한다. 폭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고, 폭설이 내리고, 지진이 발생하고, 화산이 터지며 오늘도 인간에게 말을 한다. 인간은 비와 눈이 너무 온다고,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분다고 불평을 한다. 몸으로 이야기하는 지구의 말을 듣지 않는 인간은 오늘도 잘못을 모르고 산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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