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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ng Sook Lee Jun 23. 2022

어둡지 않은 이곳의 밤



아침 5시에 눈이 떴다. 겨울 같으면 한밤중일 이 시간이 한낮처럼 밝다. 다시 잠을 자기 미안할 정도로 환하다. 오늘 이곳의 해 뜨는 시간은 5시 5분이고 해 지는 시간은 10시 7분이다. 백야현상으로 밤이 깊어지지 않는다. 어두워진다 하면 먼동이 트고 다시 밝아진다. 그래도 밤이다. 어둠 속에서도 세상은 움직인다. 비가 지붕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시계가 가는 소리가 들린다. 새들이 잠꼬대하는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응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한시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세상이다.


이 밤에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몸이 아픈 사람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외로운 사람들은 고독을 달래느라 음악을 들으며 시름을 달랠 것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은 절망하며 삶을 끝내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그리운 이에게 편지를 쓰고 새날을 기다릴 것이다. 어제는 어제가 되었고 내일은 오지 않아 괴로워도 사람들은 지금을 산다.


이곳은 11시가 되어야 어둠이 내려앉는다. 밤이 길지 않아 몇 시간 자고 나면 아침이다. 해가 뜨는 시간이 너무 일러서 벌써 밖이 훤하다. 깨어보면 5시인데 밖은 대낮처럼 밝다. 백야현상이다. 하지가 지나 밤이 길어지면 서서히 낮도 짧아지는데 여전히 여름에는 낮이 길어 늦게까지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생긴다. 자다가 깨어 일어나 시계를 보면 3 시정도 되었는데도 밖은 깜깜하지 않아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


이민 온 첫해에 안 그래도 향수병으로 잠을 못 자는데 밤이 되어도 밖이 훤하니까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해가 늦게 지고 밤에는 유난히 달이 밝아 침대에서 달빛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보고 있노라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부모형제들과 친구들 생각이 나고 한국에서 살던 여러 가지가 떠 올라 그리워하다 보면 아침이 된다. 밤에 잠을 설쳐서 아침을 먹고 나면 노곤해진다. 태어난 지 한 달이던 큰아들에게 젖을 먹이고 아들이랑 같이 낮잠을 자며 모자란 수면을 보충했다.


아기 백일이 되어 백일잔치를 하는데 해가 지지를 않아 손님들이 집에 갈 생각을 안 하고 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면 햇볕이 몇 시간 없는 겨울이 시작이 된다. 겨울에는 일출이 늦고 일몰이 빨라서 일을 하다 보면 해를 구경하기 힘들다. 깜깜할 때 출근하고 어두울 때 퇴근하는 날이 거의 다반사로 해가 짧기 때문에 겨울에는 저녁식사도 일찍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5시가 되면 칠흑 같이 깜깜하고 사람들은 귀가를 서두른다. 아침에는 해가 늦게 뜨기 때문에 한밤중 같아서 출근시간을 놓치는 경우도 있어 알람을 맞추어 놓는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현상이기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비바람이 불고 폭설이 와도 일을 해야 하듯이 백야현상이든, 극야 현상이든 적응하며 살아야 한다. 다행히 이곳은 반구가까이에 사는 사람들보다는 덜 불편하여 그런가 보다 하고 살면 된다.


밤에 자다가 깨어도 굳이 자려고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다시 잠이 온다. 아무래도 일 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들겠지만 자는 동안 눈을 가리거나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면 된다. 시간상으로는 엄연한 밤인데 깊은 밤이 아니라 이상했는데 반찬 없어도 배고프면 먹는 것처럼 피곤하면 자게 된다. 여름에 못 잔 잠을 겨울에 더 자면 된다. 해가 오래 떠 있어서 대낮 같은 밤도 하지가 지나면 길어지고 겨울이 와서 동지가 될 때까지는 짧은 낮과 함께 하며 생활한다.


인간은 각자 맞는 시간에 따라 생활하고 밤과 낮에 맞추어 먹고 자고 활동한다. 아침잠이 없는 나는 아무리 어두워도 아침 6시면 영락없이 일어나고 늦어도 저녁 11시에는 잠을 잔다. 사람의 몸은 자연의 시계와는 차이가 있다. 습관과 버릇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는 현실을 무시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늦잠을 자보지 않은 나는 밖이 어둡던 밝던 관계없이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난다. 어릴 때 제사가 많았던 친정부모님은 늦은 시간에 제사를 드렸다. 맏딸인 나는 제삿날에 부엌에서  엄마를 도와 드려야 하는데 초저녁 잠이 많은 나는 늦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잔다. 제사가 끝나고 식구들이 식사를 하며 왁자지껄  할 때 일어나 밥을 먹던 생각이 난다.


어쩌다 밤에 잠이 안 와서 불면증으로 고생을 하는 밤도 간혹 있지만 잠은 잘 자는 편이다. 아무래도 낮에 활동량이 줄어든 탓도 있겠지만 잠이 안 오면 억지로 자려고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잠이 온다. 어둠이 사람을 자게 하는 것이 아니고 피곤하언제든지 자게 된다. 밤에 잠을 설치면 낮잠으로 보충하고 낮에 잠을 자면 아무리 어두워도 잠이 안 온다. 낮잠을 자고 나면 피로가 풀리고 치매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말도 하는데 아직은 낮잠 자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자고 나면 더 피곤해서 웬만하면 낮잠을 자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세상은 밤낮없이 돌아가고 세상 만물은 필요한 잠을 자야만 살 수 있기에  각자의 생활에 맞는 밤을 찾아서 자며 살아야 한다. 밤이 짧아서 피곤할 수도 있지만 낮시간이 길어서 전기불을 늦게까지 켜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인 이익도 있다. 세상만사 다 좋을 수도 없고 다 나쁘지만도 않기 때문에 절충하며 살면 된다. 밤이 깊지 않아도 밤이고 해가 늦게 넘어가도 밤은 밤이다.

해 넘어간 밤 10시 40분에 찍은 대낮같은 사진(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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