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비빔밥... 나갔던 입맛이 돌아왔다

by Chong Sook Lee



여름이라 그런지 왠지 식욕이 없다. 낮이 길고 밤이 짧아서 피곤하고 밥맛이 없어서 때마다 건성 먹는다. 그래서인지 기운이 없고 자꾸 소파에 눕게 된다. 뭐 맛있는 것 없을까? 생각해봐도 뚜렷한 게 없다. 누군가가 맛있는 것을 해주면 괜찮을까 해서 식당에 가서 먹어도 영 맛이 없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물어간다는데 감기 기운으로 며칠 빌빌대며 앓았다. 재채기와 콧물이 나서 처음에는 환절기 알레르기로 생각하며 알레르기 약을 먹었다. 그러더니 으슬으슬 춥고 열도 나고 해서 코로나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자가 진단 키트로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었다.


다행이지만 여전히 감기 기운이 계속되어 진료를 받았는데 아무런 염증이 없다고 약도 처방해주지 않고 집에서 쉬라며 보낸다. 매일 놀고먹는 사람한테 쉬라는 말을 듣고 웃음이 난다. 너무 놀아서 감기에 걸렸나 보다. 감기도 아니고 알레르기도 아닌데 몸을 움직이기도 싫고 만사가 귀찮다. 정신없이 나오는 재채기와 코가 뚫린 것처럼 흐르는 콧물을 막기 위해 감기약을 먹었더니 조금 덜해서 감기라고 생각하며 계속 약을 먹었다. 조금 덜하기는 하지만 밤에는 온몸이 땀으로 젖고 아침에는 온몸이 축 늘어져 기운이 하나도 없어 자꾸만 깔아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눈과 코와 목구멍이 가렵고 목이 따끔거리는 증상은 점점 심해져서 진통제를 먹었더니 증상이 좋아졌는데 기운이 너무 없다. 먹을 것 열심히 먹는데도 여전히 기운이 없고 증상은 나아지지 않고 여전히 괴롭다. 한 가지 약을 계속 먹으면 내성이 생길 것 같아 감기약과 알레르기 약을 번갈아 먹었는데 낫지 않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의사를 만났다. 의사는 기관지 소리가 좋지 않다며 항생제를 5일 치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약을 먹으니 증상이 씻은 듯이 나아지기 했는데 밤에는 식은땀으로 옷이 젖고 낮에는 기운이 달려 자꾸만 자리에 눕고 싶다.




이제는 아픈데도 없고 알레르기 증상도 없어졌지만 며칠 동안 나름대로 몸이 힘들었는지 의욕도, 식욕도 없다. 무언가를 먹고 기운을 차리려고 이것저것 찾아 먹는데 식욕이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기운이 안 난다. 매운탕을 얼큰하게 끓여먹으면 기운이 날까? 아니면 담백한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면 좋을까? 맛난 음식 생각을 하다 보니 비빔밥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돌아가신 시어머니 생각이 난다. 남편을 먼저 보낸 시어머니는 무엇이 그리 급하신지 때마다 밥을 잘 비벼 드셨다. 나물 몇 개 집어넣고 고추장 한 숟갈 넣고 쓱쓱 비벼서 비빔밥을 후다닥 드셨던 생각이 난다. 남편 없이 혼자서 칠 남매를 키우려고 몸과 마음이 바쁘셨을 것이다. 비빔밥을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지 옆에서 보는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신혼에 새댁이 얌전 떠느라고 비벼먹지 못했다.


이민 온 뒤에 연년생으로 아이들 셋을 낳고 기르다 보니 밥이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식사 때는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 챙기느라 따뜻한 밥은 엄두도 못 냈다. 그러다 보니 비빔밥이 제일 간단하고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김치 비빔밥도 맛있고 나물 비빔밥도 맛있어서 그때부터 입맛이 있고 없고를 막론하고 비빔밥을 먹는 버릇이 생겼다. 식당에 가서도 마땅하게 시킬 음식이 없을 때는 만만한 돌솥 비빔밥을 시켜먹는다. 밥을 비벼 먹다 보면 없던 밥맛이 생기기도 하고 안 먹는 야채도 핑계 김에 먹게 되는 장점이 있다. 식구들이 모일 때도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넣어 기호에 맞게 먹으면 일일이 손이 가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어 좋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만히 누워서 무얼 먹을까 생각을 하는데 콩나물 비빔밥이 먹고 싶어졌다. 콩나물 비빔밥은 콩나물과 맛있는 양념간장만 있어도 맛있다. 콩나물을 삶아서 건져놓고 양념간장을 맛있게 만들었는데 영양을 생각해서 냉장고에 있는 송이버섯에 소금을 넣고 살짝 볶아 놓고 오이와 당근과 노란색 피망을 가늘게 채 썰어 놓는다. 밥을 담고 준비한 재료를 차례로 넣고 계란 프라이를 얹은 다음 양념간장을 입맛에 맞게 넣어 섞는다. 모든 재료가 입안으로 들어가 천상의 맛을 낸다. 아삭 거리는 콩나물과 야채가 양념간장과 어우러져서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게 한다.




별것 아닌 콩나물 비빔밥을 한 그릇 먹고 났더니 기운이 나고 눈이 떠진다. 흔한 고기반찬보다 담백한 콩나물 비빔밥이 좋은 이유를 모르겠다. 어릴 적 여름 방학 때 충청도 공주에 있는 작은집에 놀러 갔던 적이 있다. 작은 엄마가 귀한 조카딸이 왔다고 맛있는 반찬을 잔뜩 만들어 주셨는데 나는 깨소금 동동 띄운 조선간장에 밥을 비벼먹으며 물에 담근 짠지를 하나씩 건져먹었다. 작은 엄마가 깜짝 놀라 왜 그것만 먹느냐고 맛있는 반찬을 내 앞으로 당겨주셨지만 나는 며칠 동안 간장과 짠지를 열심히 먹고 왔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입맛이 없을 때는 어릴 적에 맛있게 먹던 음식으로 집 나간 입맛을 데려오곤 한다.


비빔밥 한 그릇에 추억이 넘친다. 한국 사람은 누구나 비빔밥에 대한 기억이 많다. 커다란 양푼에 이것저것 넣어 비벼놓고 여럿이 떠먹던 시절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이제는 찌개나 비빔밥을 한 그릇에 여럿이 같이 먹지는 못하지만 입맛이 없을 때, 앓고 나서 식욕이 없고 기운이 떨어질 때는 있는 반찬 몇 가지와 고추장 한 숟갈로 밥을 비벼먹으면 좋다. 비빔밥을 먹으니 식사 때마다 밥을 비벼 드시던 시어머니가 그리워진다. 그야말로 비빔밥은 그리움이고 사랑이고 추억이다. 오랜만에 추억의 비빔밥을 먹고 나니 기운이 난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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