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왔다. 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다시 스키를 꺼내서 스키장으로 간다. 긴 겨울에 눈이라면 보기도 싫을 텐데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았는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 많은 눈이 어디서 왔을지 궁금하다. 겨울에 내려야 할 눈이 여름에 내리고 우박이 와서 집과 차를 파손시킨다.
자연의 모습을 본다.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만물의 모습을 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자연을 바라보며 움직이는 모든 것은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죽은 것 마저 변화한다. 죽은 뒤에도 흙과 섞여서 땅 아래로 흘러가고 같은 유전자를 찾아가서 유전자를 만나고 다시 생명을 이어간다. 지금 보이고 들리고 만나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인연 또한 소중하다.
바람이 분다. 잔잔하고 고요하고, 요란하고 사나운 바람이 불고 스치듯 지나간다. 흔적이 없는 바람이 있고 흔적을 남기고 가는 바람이 있다. 토네이도가 땅에 닿지 않았도 바람은 흔적을 남긴다. 캘거리 남쪽에 엄청난 비바람이 불어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모습을 뉴스를 통해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농장에 수확한 곡물은 넣어두는 곡물창고가 비바람에 날아가 막심한 손해를 가져다주었다.
집 뜰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던 한 가족이 심한 돌풍을 동반한 시커먼 구름이 갑자기 몰려와 는 것을 보고 아이들과 집 지하실로 내려가 피했다. 천둥번개와 비바람이 요란하게 10여분 내리친 뒤에 비가 멈추어서 밖에 나온 그들은 아연실색하였다. 앞마당에 있던 굵은 나무는 뿌리째 뽑혀서 담으로 넘어졌고 차고 지붕은 날아가버린 모습을 보여주며 인터뷰를 하는데 정말 기가 막힌다. 보험이 적용되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당한 일에 황당한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사람이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천재지변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황망한 마음으로 슬퍼한다.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맞는지 여기저기 장맛비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도 매일 한차례씩 비가 퍼부어 여름이 되었는데도 덥지 않아 이대로 가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 동안 눈이 많이 와서 봄에 농부들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눈이 녹고 나서 오랫동안 비가 안 왔다.
가물어서 걱정을 하던 차에 비가 와서 좋아했는데 매일 비가 오니 기온이 떨어져 아침저녁으로는 춥기도 하다. 기상변화로 폭우와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여름에 때늦은 눈이 오는 곳도 있다. 며칠 전에는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4시간 떨어진 곳에 록키산에 있는 밴프에 엄청난 눈이 왔다.
겨울에 왔던 눈 위에 눈이 쌓여서 마치 한 겨울이 온 것 같다. 사람들은 때아닌 6월에 많은 눈이 내렸다며 스키장이 다시 열리고 반팔을 입고 스키를 타는 뉴스를 본다. 기후 변화로 별 일이 다 생기는데 앞으로는 어떤 일이 생길지 의문이다. 겨울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겨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겨울에 꽃이 피고 여름에 단풍이 들면 계절의 이름도 달라질 것이다. 아침에 한국 뉴스를 보니 한국도 장마철이라 수해가 많다. 빨리 복구되었으면 좋을 텐데 걱정이다. 멀리 살아도 고국 소식은 늘 궁금하고 나쁜 일이 있으면 안타깝고 좋은 일이 있으면 기쁘다. 한국은 나의 고국이기에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옛날에는 인터넷이 없기 때문에 고국 소식을 몰라서 걱정을 덜했는데 요즘엔 실시간 뉴스를 보다 보니 좋은 점도 있지만 걱정도 많아졌다. 사람 사는 것이 좋은 점이 있으면 반듯이 나쁜 점도 있다. 세상이 편해졌다고 좋아할 것만은 아니다. 모르는 게 병이고 아는 게 힘이지만 그 반대 일수도 있다.너무 많이 발전했는데 여전히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이 많다. 6월 말에 눈이 와서 스키를 타고 코로나와 함께 산다고 여행을 가며 새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있는 사람은 맘껏 즐기고, 없는 사람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사는 세상이다. 한쪽은 웃고 한쪽은 울고 신음하여도 세상은 돌아간다. 세상은 공평한지 불공평한지 답은 없어도 자연을 따라서 움직이며 따라간다.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르지만 삶을 느끼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인생사이다. 6월에 내린 눈이 금방 녹을 것을 알기에 사람들의 얼굴엔 웃음이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