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무척 덥다.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한 게 없다. 더운데 국수나 말아먹어야겠다. 만만한 것이 국수다. 시간이 없을 때도, 마땅한 게 없을 때도 국수를 생각한다. 반찬이 없어도 국수가 생각나고 이렇게 더운 날도 국수가 생각난다. 추운 날도 , 날이 흐 린 날도 국수가 먹고 싶다. 친정아버지가 국수를 엄청 좋아하셔서 어릴 적 국수를 많이 먹었다. 여덟 식구를 먹이기 위해 엄마는 커다란 냄비에 물을 팔팔 끓으면 국수를 집어넣어 끓여서 익으면 깨끗하게 씻어 건져서 커다란 소쿠리에 물을 빼고 양푼에 국수를 놓고 갖은양념을 하신다. 하얀 국수가 빨갛게 물이 들고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면 침을 꼴깍 삼킨다. 갖자의 그릇에 먹을 만큼 먹기도 하고 한자리에 앉아서 앞접시 하나씩 놓고 덜어먹기도 하던 생각이 난다.
만들기 간단하고 먹어서 맛있는 국수를 사람들은 좋아한다. 국수를 생각하니 짜장면과 짬뽕이 먹고 싶기도 하고 잔치국수가 먹고 싶기도 하지만 오늘은 비빔국수를 먹어야겠다. 갓김치를 넣고 고추장 한 숟갈에 참기름 한 방울 넣어 쓱쓱 비벼 먹어야겠다. 더운 날은 비빔국수가 최고다. 특별히 만들 것도 없고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깨끗이 헹구어 건져 놓아 다가 물이 어지간히 빠지면 먹을 만큼 그릇에 넣고 비비면 된다. 라면이 없을 때는 국수를 자주 먹었는데 라면이 생긴 후로는 간단하게 라면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아져서 이젠 국수가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국수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상관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국민음식이다. 시대에 따라 국수도 여러 가지로 만들어 먹게 되어 간다. 골뱅이 무침에 국수를 넣어 먹기도 하고 곰탕과 설렁탕 같은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기도 한다. 더운 여름에는 비빔국수로 더위를 식히고 추운 겨울에는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국수를 넣어 잔치 국수를 해서 먹으면 따뜻하고 시원하다. 우리는 조상들의 지혜로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세계 음식을 다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는 음식이 한국 음식이다. 양식도 맛있는 것이 많이 있지만 우리 음식처럼 입안에 착착 달라붙지 않는다.
한국인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래도록 질리지 않는 음식이 한국 음식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밥을 주식으로 해서 하루 세끼를 먹으면 질릴 만도 한데 여전히 밥 냄새가 구수하고 먹고 싶게 만든다. 국수 역시 먹어도 먹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음식이다. 요즘에는 인스턴트 음식이 많이 나와 손쉽게 취향대로 사서 먹을 수 있다. 간단하게 데워서 먹을 수 있어 편리하긴 한데 국수를 끓여서 만드는 게 습관이 되어서 인지 쉽고 간단해도 인스턴트는 안 사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며 여러 가지로 응용을 잘한다. 코로나 장기화로 손님을 초대하지 않게 되어 외식문화가 발달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옛날 식으로 사는 게 좋다.
(사진:이종숙)
반찬이 별로 없던 시절에 국수는 손님 접대로 안성맞춤이었다. 특별한 잔치가 아니면 집에 누구라도 오면 간단하게 국수를 끓여서 배부르게 대접하던 풍성한 시절이었다. 갑자기 놀러 온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중간한 시간이 된다. 손님은 미안한 생각에 가려하고 주인은 서운한 생각에 밥을 먹고 가라고 붙잡지만 반찬거리가 만만치 않을 때가 많다. 그러면 국수를 대접한다. 일단 물을 끓이고 국수를 삶는 동안 멸치를 넣고 국물을 만든다. 국물에 양파와 호박과 감자를 넣고 간을 하면 그럴싸한 국물이 완성된다. 삶은 국수를 그릇에 담고 국물과 건더기를 부어 파를 위에 뿌리고 고춧가루 조금 넣어 섞어서 먹으면 진수성찬이 필요 없다. 국수 한 그릇 맛있게 먹으며 정을 나누던 부모님 시대가 간다.
가까운 사람들과 국수 한 그릇씩이나 비빔밥 한 그릇씩 만들어 먹고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식당에서 만나서 밥 한 그릇씩 후다닥 먹고 헤어지면 너무 서운해서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가도 역시 집처럼 안락하지 않다. 딱딱한 의자에 앉아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불편하다. 사람들은 오락가락하고 집중이 안되어 헤어지고 나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생각도 안 나지만 그렇게 사는 거지 하면서 적응하고 산다. 물론 집에서 손님을 치르려면 집안 청소도 해야 하고 국수나 비빔밥을 달랑해놓고 손님을 부르기는 안 된다. 반찬을 여러 가지 해놓고 초대해서 먹어야 하는데 힘들고 신경 쓰이기 때문에 식당에서 만나 간단하게 외식을 하는 것이 편하기는 하다.
어쨌든 세상 모든 일이 장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간단하게 집에서 해 먹으며 정을 나누는 게 따뜻하다. 부담 없는 사람들끼리 오다가다 들려서 얼굴도 보고 이야기하다 끼니때가 되면 밥이나 국수를 삶아서 있는 반찬 꺼내놓고 비빔밥을 해 먹던지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던 옛날식이 좋은데 시대가 바뀌어서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아 괜히 아쉽다. 여럿이 만나 음식을 나눠먹고 푸짐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시간들은 이제추억이 되어간다.
더운 날씨에 시원하게 먹을 생각에 손이 바쁘다. 오이와 토마토를 썰어놓고 삶은 국수를 찬물에 깨끗이 헹구어 물을 빼고 그릇에 놓는다. 국수 위에 썰어놓은 오이와 토마토 그리고 알맞게 익은 갓김치와 오이김치와 무생채를 넣는다. 삶은 계란을 고명으로 올려놓고 고추장 한 숟갈 간장 한 숟갈 참기름 한 방울과 깨소금을 뿌리면 멋진 비빔국수가 완성된다. 쉽고도 맛있는 비빔국수는 영원한 고향의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