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김치는...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by Chong Sook Lee



입추도 처서도 다 지나서인지 채소들의 성장은 멈춘 것 같다. 볼 때마다 자라 있던 깻잎이 잎은 키우지 않고 키만 큰다. 오이도 놀랄 정도로 쑥쑥 자라더니 이젠 허리 굽은 노인처럼 구부리고 매달려 있다. 여름의 태양은 가기 전에 마지막 정렬로 불타고 있는데 채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깻잎을 더 놔두면 억세지고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대충 추수를 했다. 작년에 깻잎 농사가 잘되어 깻잎 김치를 담았는데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지금도 생각난다. 특별한 레시피가 아닌데도 유난히 잘 담가져서 올해도 그렇게 담그려고 한다. 아직은 파릇파릇 색도 고와서 잘만하면 한동안 맛있게 먹을 것 같다.


깻잎 김치는 그야말로 막 김치와 다름이 없다. 깻잎을 하나하나 일일이 뗄 필요 없이 아무렇게나 뜯어서 깨끗이 씻어서 물을 빼고 썰어서 갖은 양념해서 담그면 된다. 해마다 남쪽을 향한 땅에 깻잎을 심어서 잘 먹었는데 올해는 사과나무 옆에다 심었는데 의외로 잘 자라 고맙다. 비료도 주지 않았는데 잘 자라는 채소들에게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들여다보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하찮은 식물이라도 마음을 전하니 알아듣는 모양이다. 여름 내내 뜯어먹고, 쌈도 싸 먹고, 장아찌도 몇 번 만들었는데 마지막으로 깻잎 김치까지 만들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다.


깻잎을 보면 친정엄마의 깻잎 장아찌가 생각난다. 얌전한 엄마는 무엇이든지 대충이 없고 매사를 철저하고 완벽하게 하셨다. 크고 작은 깻잎을 차례로 놓고 일일이 하나씩 양념을 바른 다음 그릇에 넣어 두었다가 익으면 식탁에 올려놓으신다. 우리 육 남매는 맛있는 깻잎장아찌를 하나하나 떼어서 밥 위에 올려 먹으며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먹으면 엄마는 웃으시며 "깻잎이 그렇게도 맛있니?" 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손재주가 좋으신 엄마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만들어 주셨다. 옷을 만들어 주시고 털실로 여러 가지를 떠서 만들어 주셨는데 엄마를 닮아서인지 나 역시 무언가를 손으로 만들기를 좋아한다.


옛날에는 재료값이 저렴해서 만들었지만 요즘엔 재료값보다 사는 게 더 싼 경우가 많다. 특히 이곳은 모든 재료를 수입하기 때문에 어찌나 비싼지 재료를 사기가 겁이 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스타일로 만드는 재미는 있지만 막상 계산을 하다 보면 멈칫할 때가 있다. 그래도 만들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물건을 사기 전에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딸이 나를 닮았다. 나는 눈대중으로 대충 만드는데 딸은 만들고 싶은 것을 그림을 그리고, 자로 재고, 계산을 한다. 꼼꼼하게 차근차근 만드는 딸을 보면 무엇이든지 정확하게 하시던 친정 엄마가 생각난다.


깻잎 김치를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남편이 떼어온 깻잎이 축 늘어져 있어서 얼른 찬물에 담가서 깨끗이 씻어서 소쿠리에 담아 물을 빼고 채로 썰어 놓았다. 파, 마늘, 간장, 고춧가루, 멸치 액젓과 매실청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채 썰어 놓은 깻잎을 버무리면 끝이다. 만들기도 쉽고 한번 만들어 놓으면 오래도록 밑반찬으로 먹을 수 있어 좋다. 밥맛이 없을 때, 밥을 물에 말아서 깻잎김치를 조금씩 얹어서 먹으면 식욕이 돌아온다. 매일 식탁에 올라오는 김치, 깍두기와 깻잎 김치가 있으면 찌개나 국하나만 더 만들면 근사한 밥상이 된다.


해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는 채소들이 성장을 멈춘다. 언제 갑자기 온도가 내려가 서리라도 내리면 그나마 도 못쓰게 된다. 햇살 좋은 오늘은 텃밭을 정리하기에 딱 좋은 날이다. 작년에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깻잎을 모조리 따서 오늘처럼 깻잎 감치를 담가 놓았다. 마침 친정에 온 딸이 집에 갈 때 깻잎 김치를 작은 병에 꼭꼭 눌러서 보냈는데 겨우내 너무나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밑반찬의 매력은 조금씩 먹기 때문에 오래 두고 먹는 것이다. 국이나 찌개는 끼니때마다 다시 끓여 먹어야 하지만 밑반찬은 유통기한이 길어서 좋다. 밑반찬을 먹을 때마다 조상님들의 지혜와 슬기에 감사한다.


깻잎 요리는 참으로 여러 가지다. 깻잎 장아찌, 깻잎쌈, 깻잎찜 외에도 된장에 깻잎을 넣어 두었다가 간이 배면 맛있게 먹기도 한다. 몇 년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깻잎찜을 해 놓으셨다. 깻잎찜은 깻잎을 잘게 썰고 양파와 마늘을 넣고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약한 불로 은근하게 끓이면 된다. 한번 끓여 놓은 깻잎찜을 식힌 다음 유리병에 넣어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꺼내먹는다. 깻잎장아찌가 최고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깻잎찜은 정말 획기적인 맛이었다. 새로 지은 따끈따끈한 밥에 한 젓갈씩 얹어서 먹으면 그야말로 꿀맛이다. 깻잎을 보면 자꾸만 옛날 생각이 난다.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을 내가 만들고 아이들은 맛있게 먹으며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담백한 반찬만 있으면 내게는 진수성찬이다. 아이들이 올 때 특식으로 내어 놓으면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 된다. 고기반찬도 좋지만 틈틈이 만들어놓은 밑반찬이 몇 가지 있으면 갑자기 손님이 와도 맛있는 식사를 대접할 수 있어 좋다. 깻잎김치를 담가 놓으니 왠지 부자가 된 것 같다. 깻잎김치는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선선한 가을이 오면 여름을 생각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깻잎김치 안에 행복이 넘친다. 깻잎김치는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사진:이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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