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그리려다 달나라를 그렸다

by Chong Sook Lee



오랜만에 하얀 캔버스를 보니 무언가 그려보고 싶다.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고 머릿속으로 상상한 그림을

그리려고 바탕색을 먼저 칠한다. 연한 색으로

칠하면서 머리로 구상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가을을 생각하고 그려 나간다. 맑고 높은 파란 하늘에

구름 한두 점을 그려 넣고 산봉우리를 그린다.

그럴싸한 산이 그려졌다. 산아래에 나무들을 그려 놓고

가운데에 호수를 그린다. 파란 하늘이 호수로 내려앉아

호수 물이 파랗다. 호수 주위에 크고 작은 나무를

몇 그루 그려 본다. 전나무 몇 개와 예쁘게 단풍 진

활엽수를 그린다. 나름대로 캔버스의 그림이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했는데 산이 너무 크게 그려져서

하늘을 더 많이 그렸더니 산이 작아져서 멀리 보인다.

앞에서 있는 나무를 크게 그리고 산 아래에 있는 나무는

아주 작게 그려 균형을 맞춘다. 단풍색이 잘 나오지

않는다. 노란색과 빨간색을 섞어서 자연스러운 가을을

표현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이런저런 색을 칠하다 보니

엉뚱한 그림이 그려졌다. 마음에 안 들어서 배경색을

바꾸어 보았다. 먼저 그린 그림을 가리기에는 검은색이

제일 간단하다. 하얀 캔버스는 검정 캔버스가 되었다.

페인트가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며 검정 캔버스에

무슨 그림을 그릴까 생각해 본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 하얀 페인트로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며

생각한다. 몇 겹의 하얀색의 동그라미를 그리니

가운데는 여전히 검은색 바탕이 보인다. 무엇을 안에

그릴까 하다가 하얀색으로 나무들을 그려본다.

하얀 동그라미에 노랗고 빨간색을 섞어서 칠한다.

붓으로 굵은 선을 노랗게 그려 주었더니 가운데에

있는 나무가 더 뚜렷하게 보인다. 달 속에 나무가

서 있는 것 같은 그림이다. 나무 중간에 선을 넣어

약간의 변화를 주었더니 보기 좋다. 가장자리는

검은색으로 어둠을 표현하고 은근한 노란색으로

달을 표현하고 달 안 에는 나무들이 달빛을 받아

밝게 서 있는 모습의 그림이 되었다. 생각지 않은

그림이 하나 완성되었다. 산과 호수와 나무를

그리려다 달 속에 있는 나무를 그렸다. 상상 속에

그림이 그럴싸하게 그려졌다.

가을을 그리려다 달나라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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