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다. 어디서 이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아침 일찍부터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의 행렬로 공항은 발 디딜 틈이 없도록 바쁘다. 코로나가 끝나가고 모든 제재가 없어져서 어딘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토록 많을 줄 몰랐다. 한가하고 조용하게 사는 나의 삶과는 너무나 다르다. 가방 한 개씩 들고 차례를 기다린다.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모습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무척 설레 보인다. 여러 명의 가족이 함께 가는 사람이 있고 혼자 가는 사람도 많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여행은 즐거운 것인지 모두 행복해 보인다. 줄을 서서 모든 절차를 끝내고 비행기 탈 시간을 기다린다. 책을 읽는 사람이 있고 전화기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보이고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카페 앞에는 커피와 아침을 사 먹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간단하게 토스트와 우유를 먹고 나왔더니 배는 고프지 않다.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의자에 앉아서 조금씩 밝아오는 공항 밖을 쳐다본다. 직원들이 바쁘게 다닌다. 우리가 탈 비행기가 보인다. 비행기 타고 한두 시간만 가면 보고 싶은 딸을 만난다. 부모 자식의 인연이란 무엇일까? 보고 또 봐도 보고 싶고 그리운 게 자식들인데 나는 평생 불효만 하고 살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살아남기 위해 부모님의 마음은 챙기지 못하고 자주 가서 뵙지 못하고 살아왔다. 시간이 되면 찾아뵙지, 돈을 많이 벌면 가야지, 하면서 미루고 살아왔다.
몇 년에 한 번씩 가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친구들과 형제들 만나느라 정신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후회가 된다. 부모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오래도록 계실 거라 생각했다. 부모는 자식이 철들기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다. 아이들이 크고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서야 철이 들었는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모든 것이 부족한 딸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변명을 하며 산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비행기 탑승 안내 방송이 들린다.
비행기가 뜨고 집들이 성냥갑같이 작아지며 높이 올라간다. 하늘과 땅 사이에 구름이 있고 비행기는 구름 위로 날아간다. 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오직 구름과 비행기만이 있는 것 같다. 구름이 폭신한 명주솜 같이 보인다. 두꺼운 솜이불 위로 매끈하게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가 보이고 구름이 조금씩 걷히면서 드넓은 록키 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기가 막힌 전경이다. 천년설이 하얗게 쌓인 곳이 멀리 보이고 우뚝 솟은 산봉우리들이 우람하게 서 있다.
수많은 산들이 산맥을 이루고 있고 사이사이에 강물이 흐르고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산맥을 지나고 커다란 바다가 보인다. 배와 빌딩과 집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아름답다. 이제는 목적지인 밴쿠버 아일랜드로 간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가는 것 같은데 어느새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에드먼턴에서 빅토리아까지 1시간 20분이 걸린다. 지루할 시간 없이 짧은 거리다. 만추의 계절이다. 울긋불긋한 나무들이 공항 주위에 서서 어서 오라고 환영한다. 지난번, 4월에 왔을 때는 꽃이 만개하여 세상을 즐기더니 지금은 단풍으로 환하다. 우리를 마중 나온 딸이 달려와 안긴다. 참 반갑다. 거의 매일매일 영상 통화를 하는데도 보고 싶은 딸이다. 마흔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내 눈에는 지금도 어린애로 보인다.
가을이 깔린 거리를 지나간다. 금요일이라 거리가 복잡한 다. 딸이 살고 있어 여러 번 와본 거리가 눈에 익어 정겹다. 지난번 왔을 때 꽃샘추위로 많이 추웠는데 오늘은 여름처럼 날씨가 좋다.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도 없다. 매일매일이 오늘 같은 날이면 좋겠다. 사람 사는 게 날마다 좋지는 않겠지만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좋다. 딸과 생활하는 시간은 언제나 짧다. 며칠이지만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쉽게 올 수 없기 때문에 더 아쉽다. 먹고 싶은 음식을 해주면 더없이 행복해하는 딸을 보며 내 마음도 행복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