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비가 와서 날씨가 쌀쌀하다. 자연은 이제 옷을 벗고 겨울을 맞는다. 추운 겨울에 옷을 입고 있다가 봄에 벗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걷는다. 며칠 사이에 숲이 휑하다. 나뭇잎들이 너무 많아 숲 속의 오솔길을 들어가지 못했는데 그 많던 나뭇잎들이 다 떨어졌다. 바람이 심하게 분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급하게 지나간다. 땅 위를 덮은 낙엽들이 바람 따라 덩달아 춤을 춘다.
어디로 갈지 몰라 망설이다가 들썩이며 굴러간다.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몰라도 바람 따라간다. 수많은 낙엽들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더러는 계곡에 떨어져 계곡물을 따라가고, 더러는 골짜기에 웅크리고 있다. 산책길에 누워 있던 낙엽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으스러지고 찢어져 있다. 어떤 것은 나무 아래에 쭈그리고 앉아 추위를 피하고 어떤 것은 푹 들어 간 구덩이에 들어가 앉아 있기도 한다.
심술궂은 바람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뒤집고 부수고 사라진다. 해마다 태풍이 가져다주는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바람을 막을 수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자연재해로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연자실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기상청의 예보로 미리 대비를 한다고 해도 결국엔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모른 체하고 가버리는 바람이 야속하다.
낙엽이 힘없이 굴러다니는 산책길에 다람쥐는 겨울준비를 하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닌다. 구멍 뚫린 나무에 누군가가 인형을 놓았던 나무 옆을 지나간다. 인형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해바라기가 통째로 놓여있다.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내리며 해바라기 씨를 물고 쏜살같이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가 다람쥐나 새들을 위해 가져다 놓은 것 같다.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 사진을 한 장 찍는다. 바라보기만 해도 귀여워서 웃음이 나고 괜히 기분이 좋다.
숲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새가 날아다니고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하루를 살아간다. 까치들이 나뭇가지에 앉아서 무언가를 쪼아 먹고, 힘없이 매달려있던 낡은 이파리는 땅으로 곤두박질한다. 아무런 미련이 없어 보인다. 세상에 나온 만물은 가는 날이 있고 시간이 오면 돌아보지 않고 가야만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바람을 따라온 낙엽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살이가 하루를 신나게 살고 가듯이 우리네도 하루하루 신나게 살다 가면 된다. 숲이 깊어서 가까운 곳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숲이 한눈에 보인다. 건너편 쪽에 있는 다리와 계곡도 보이고 양지쪽에서 짝을 부르는 새들도 보인다. 앙상한 가지는 뿌리 깊은 땅속에서 멀리 오는 봄을 준비하고 있는데 인간은 겨울이 온다고 걱정만 한다.
한파가 오기 전인데 경제 한파가 왔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 하찮은 미물도 자연을 받아들이며 사는데 인간은 매사를 거부하고 산다. 물건값이 오르면 소비심리로 더 사게 되고 값을 올려도 사람들이 사기 때문에 값은 한없이 올라간다.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서 정부에서 온갖 정책을 내놓아도 내려가지 않던 집값이 사람들이 사지 않아 판매가 없으니까 자연히 내려가는 현상이 생긴다.
물건 값이 오른다고 사람들이 자꾸 사면 물건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택시를 잡기 힘들다고 심야 금액을 정해놓는다. 가격은 오르고 여전히 택시를 잡기 힘들지만 한번 올라간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밤에 외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밤문화가 변하면 택시값은 자연히 안정된다. 밤에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에 따라가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소비자는 국가를 만든다. 사재기를 하고 빈부차가 커지는 현상이 오래가면 미래가 없다. 남녀 성 구분이 없어지고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간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편한 옷을 입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며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때 더 많이 보이고 더 많이 들린다. 마음을 열면 사랑의 마음도 열린다.
숲 속을 걸으면 인생을 만난다. 봄에는 희망을 배우고 여름에는 뜨거운 사랑과 정렬을 본다. 가을에는 삶의 아름다움과 허무함을 깨닫고 겨울에는 비우고 체념하며 잠시 쉬어가는 마음을 갖게 된다. 자연처럼 말없이 순종하고 받아들일 때 평화를 만난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잠시 지나가는 바람일 뿐 영원하지 않다. 가진 것 없어도 마음이 편하면 천국에서 사는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것도, 넘치도록 많은 것도 바랄 필요 없다. 오늘 웃고 기쁘게 살면 된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삶이다.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음을 절실히 느낀다. 어려운 시기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고 욕심을 내려놓으면 감사할 것 천지다. 높이 올라가면 떨어질 때 더 많이 아프고 상처도 오래간다. 적당히 올라가면 위아래를 볼 수 있어 좋고 떨어질 염려도 없다.
나뭇가지 꼭대기에 앉아서 따뜻한 햇살을 친구 삼아 목청 높여 노래를 하는 새가 부러운 날이다. 걱정 없이 사는 세상은 없지만 숲 속에 사는 평화를 만나며 하루를 보낸다. 말없이 안아주고 언제나 환영하는 숲이 좋다. 왜 어제 안 왔느냐고 묻지 않고, 내일 올 거냐고 묻지 않아도 안다. 내 마음을 드러내도 다 받아주는 숲이 있어 행복하다.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나와 함께하는 남편과 평화로운 숲에서 행복을 만난다.